뉴욕타임스는 대선전을 치르고 있는 민주당 힐러리 클런턴과 공화당 도널드 트럼프가 미국의 빈곤층에 관해서는 거의 아무런 언급을 하지 않고 있다는 내용의 머리기사를 지난 11일자 인터넷 판에 올렸다. 그러면서 빈곤문제에 대한 두 후보의 이런 침묵은 놀랄만한 일이라는 반응을 나타냈다. 대선전에서조차 빈곤 퇴치를 위한 공약을 거의 찾아 볼 수 없다는 것은 빈곤층이 미국사회에서 얼마나 정치적으로 외면당하고 있는지를 그대로 보여준다.
미국은 아주 잘 살지만 동시에 빈곤층이 가장 많은 선진국이기도 하다. 미국의 빈곤율은 유럽은 말할 것도 없고 같은 문화권이라 할 수 있는 영국, 캐나다와 비교해서도 훨씬 높다. 역설적이라 할 수 있는 이런 극단적 불평등은 잘못된 정치가 낳은 기형적 현상이다.
뉴욕타임스는 특히 빈곤층 주거문제에 주목한다. 보도에 따르면 최저임금 풀타임 근로자가 수입 중 30% 이하로 시장시세의 원 베드룸을 구할 수 있는 곳은 전체 50개주 가운데 단 한곳도 없으며 1,100만 이상 근로자가 수입의 절반 이상을 렌트로 지출하고 있다.
그렇다면 빈곤층의 고통은 그들이 자초한 결과일까. 이 질문과 관련해 가난은 전적으로 개개인의 책임이라는 주장과, 사회의 구조적 문제가 만든 결과물이라는 관점이 항상 맞서왔다. 개인 책임론자들은 빈곤을 스스로가 잘못된 결정을 내리고 불성실해서 초래한 자업자득이라고 본다. 주로 보수적인 사람들이 많이 갖고 있는 생각이다.
반면 사회구조적인 문제라는 입장을 갖고 있는 사람들은 개인이 통제할 수 없는 원인과 요소들에 의해 빈곤이 발생하고 악화되는 만큼 이런 구조를 바꾸는 게 빈곤퇴치의 해법이라고 말한다. 주로 진보적인 사람들의 인식이다.
빈곤에는 물론 당사자의 책임이 있다. 하지만 이런 주장이 전적인 타당성을 가지기 위해서는 성실하게 노력하기만 하면 빈곤을 벗어나는 일이 누구에게나 가능해야 한다. 그러나 최저임금 근로자들의 주거실태에서 보듯 실상은 전혀 그렇지 못하다. 뿐만 아니라 그런 일은 갈수록 어려워지고 있다. 간혹 맨주먹으로 시작해 성공한 사람들의 스토리는 “열심히 노력하면 당신도 이처럼 될 수 있다”는 ‘아메리칸 드림’의 신화를 키워준다.
그러나 비슷한 노력을 기울인다고 해서 비슷한 결과를 얻을 수 없다는 것 또한 차가운 현실이다. 그래서 노벨상 경제학자인 조지프 스티글리츠 교수는 ‘아메리칸 드림’이라는 신화에는 “티끌만큼의 진실이 있을 뿐”이라고 꼬집는다. 아메리칸 드림은 이제 무슨 ‘거창한 성취’가아니라 ‘안정적 생존’을 뜻하는 소박한 단어로 의미가 축소됐다. 하지만 이것조차 근면과 노력만으로는 이루기 힘든 그 무엇이 됐다.
불평등이 당장은 가난한 사람들에게만 고통이 되는 것처럼 보이지만 장기적으로 사회와 경제의 건강, 그리고 구성원들의 육체적 건강에까지 영향을 미친다는 사실이 점차 밝혀지고 있다. 불평등은 본래 시장경제가 가지고 있는 역동성과 효율성, 그리고 생산성을 저해할 뿐만 아니라 사회적 관계를 악화시켜 구성원 모두의(가진 사람들을 포함해) 스트레스 호르몬 수치를 높여준다. 그래서 평등해야 건강하다고 하는 것이다.
우연의 일치일까. LA타임스도 ‘빈곤 프로젝트’라 명명된 특집을 내보내고 있다. 빈곤문제가 더 이상 방치할 수 없는 지경에까지 이르렀다는 언론들의 위기의식이 엿보인다.
설문조사 결과를 소개한 14일자 특집을 보니 트럼프 지지자들과 클린턴 지지자들의 빈곤을 바라보는 시각에 상당한 차이가 있음이 확인된다. 대부분의 트럼프 지지자들은 빈곤을 개인 책임으로 여긴 반면 클린턴 지지자들은 빈곤 퇴치를 위한 정부개입을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결국 정치는 이런 두 가지 관점 사이의 다툼이라 할 수 있다. 빈곤을 다른 누군가의 개인적 문제로만 치부하는 한 불평등은 절대 개선될 수 없다. 그래서 우리 모두는 이 문제에 관심을 가져야 하는 것이다. ‘윤리’와 ‘정의’라는 관점뿐 아니라, 시장 만능론자들이 그토록 신봉하는 ‘효용성’을 위해서라도 그래야 한다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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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윤성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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