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 걷는 길인데도 이슬이 촉촉한 아침 산책길이 싱그럽기만하다. 산새들도 즐거운 듯 나무사이를 분주히 날고, 숲 속 한 귀퉁이에서는 한 무리의 야생화가 목를 길게 뽑고 동쪽을 향해 일동차렷을 하고 있다. 어떤 꽃들일까? 푸르스름한 빛을 띤 것이 달맞이 꽃은 아닌 것 같은데 고개를 모두 같은 방향으로 돌리고 있으니 무언가 이유가 있는 듯 싶다.
서쪽으론 산이 높으니 아마도 떠오르는 (동쪽)보름달을 기운삼아 싹을 티운 꽃들은 아닐까. 기다려도 오지 않는, 누군가를 기다리는 삶… 꽃들은 그렇게 누군가를 기다리다 결국 달빛 속에… 시들어 갈 것이다. 인생의 어둡고 밝음의 공존함은 음과 양이 조화함과 같으니 이 또한 삶의 이치련만, 인생은 왜그리 바람에 흔들리는 야생화처럼 아련하고 애처럽게만 보이는 것일까?
(누군가)보아주는 이 없이, 야생화처럼 피다지는 것이 인생이다. 아무리 화려한 인생이라해도 항상 밝은 빛만 있는 것만은 아니다. 봄날은 잠깐이요, 어언간 어둡고 추운… 겨울은 찾아오게 마련이다. 하이키가 있으면 로우키가 있고, 장조가 있으면 단조가 있는 법, 한무리의 야생화가 문득 달빛 아래서의 인생의 법칙… 어딘가 음산하지만 어둠 속에서 피어나는 夜花처럼 은은한 내면의 정서를 말해주는 모차르트의 피아노 협주곡 20번을 떠오르게 한다.
모차르트가 남긴 27개의 피아노 협주곡 곡중 단조로 작곡된 작품은 단 2 작품 뿐이었다. 그 중 하나인 20번(D단조)이 바로 영화 ‘아마데우스’의 마지막을 장식하는, (아름다운)안단테가 들어있는 작품이다. 베토벤이 그토록 사랑하여 장중한 카덴자를 남겼다는 작품… 어딘가 그늘져 있지만 용기를 주고, 수채화처럼 부담없이 다가오는 작품. 서양에서는 달빛을 루나틱(lunatic) … 즉 미치광이라는 의미로 표현하기도 한다. 예술은 광기(lunatic)이기에, 예술가란 어차피 처음부터 음산한 비극의 잉태자들인지도 모른다. 달빛없는 시인… 광기없는 예술가를 사랑할 수 있을까? 모차르트가 조울증(정신병) 환자였다는 것은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다만 우리는 모차르트의 밝은 면만 보려한다. 가장 빛나는 천재로서… 천상의 음악을 선사한 모차르트였지만 어쩌면 그의 내면은 본질적으로 그 어떤 범인보다도 일그러진… 고뇌하는 인간이었는지 모른다. 신이 내렸다는 재능… 그런 것이 존재한다면 세상은 너무도 불공평하다. 그러나 또한 그런 것이 존재하지 않는다면, 세상에 범인과 천재의 차이를 구분한다는 것 역시 너무나도 불가사의한 일일 것이다. 그러므로 모차르트는 존재하는 것이며, 불공평한 존재로서, 범인인 너와 나도… 불가사의(?)하게 존재하는 것이다.
그러나 아무리 천재라하더라도 그 수천… 수억개의 음표의 가능성, 그 중에 하나를 선택해야만하는 삶은 고달프고 혹독했을 것이다. 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 천재야말로 어쩌면 인생이 만들어낸 허상… 인류 스스로가 간간히 속아온 가장 큰 함정(희생양)었는지도 모른다. 세상에 쉬운 일… 지름길이란 없다. 다만 이것을 알고 정면으로 맞서는 천재가 있는가 하면, 돌아가려고 하는 범인이 있을 뿐이다.
밝은 작품 보다는 피아노 협주곡 20번이나 레퀴엠같은 작품이 모차르트의 최고의 작품으로 평가받게 된 것도 아이러니였다. 모차르트의 조울증은 (적어도) 그것이 스타였기때문에 생긴장애였는지, 태생적인 장애였는지는 모르지만 아침에 천하를 얻은 것처럼 기뻐 뛰다가도 오후에 갑자기 로우 키로 기분이 다운됐을 때의 절망감은, 일에 시달리고 빚에 쪼들려 피폐해 가기만 했던 그의 삶을 더욱 옥죄이는 족쇄이기도 했다.
화려한 장조로 장식했던 모차르트가 (자신의 내면을 그대로 옮긴) D단조 협주곡을 내놓았을 때 세상은 감동했는데, 마치 달빛아래 (나그네의)그림자처럼 담담하게 표현한 이 D단조가 모차르트의 작품들 중 가장 압권이라는 피아노 협주곡 중에서도 가장 빛나고, 사랑받게된 것 또한 음악사의 수수께끼였다.
음악은 부드러움 속에 흐르는 내면의 용기를 말한다할 것이다. 마치 흐르는 냇물처럼 겉으로는 잔잔해 보여도 그 수심에는 세차게 흐르는 맥박, 바다로 뻗어나가려는 거대한 웅지가 꿈틀거리고 있는 것이다. 소리가 크다고 해서 더 강렬한 것은 아닐 것이다. D단조는 1785년에 작곡되었는데, 장중하면서도 부드럽게 흐르는 리듬의 생명력… 막판에 작렬하는 코다의 크라이막스는… 어둠 속에서도 기필코 피고마는, 인생의 본체… 그 감동이기도 하였다.
<
이정훈 기자>
댓글 안에 당신의 성숙함도 담아 주세요.
'오늘의 한마디'는 기사에 대하여 자신의 생각을 말하고 남의 생각을 들으며 서로 다양한 의견을 나누는 공간입니다. 그러나 간혹 불건전한 내용을 올리시는 분들이 계셔서 건전한 인터넷문화 정착을 위해 아래와 같은 운영원칙을 적용합니다.
자체 모니터링을 통해 아래에 해당하는 내용이 포함된 댓글이 발견되면 예고없이 삭제 조치를 하겠습니다.
불건전한 댓글을 올리거나, 이름에 비속어 및 상대방의 불쾌감을 주는 단어를 사용, 유명인 또는 특정 일반인을 사칭하는 경우 이용에 대한 차단 제재를 받을 수 있습니다. 차단될 경우, 일주일간 댓글을 달수 없게 됩니다.
명예훼손, 개인정보 유출, 욕설 등 법률에 위반되는 댓글은 관계 법령에 의거 민형사상 처벌을 받을 수 있으니 이용에 주의를 부탁드립니다.
Close
x