점입가경으로 치닫는 도널드 트럼프의 끊임없는 막말 논란에 속 끓이는 공화당 지도부가 가장 우려하는 것은 대선 패배가 아니다. 대선후보 트럼프가 참패하면서 연방의회 공화당 후보들까지 줄줄이 낙선시킬 가능성이다. 수직 강하하는 트럼프의 ‘코트자락’에 이들까지 묶여 상원의 주도권이 넘어가고 자칫 하원마저 위험해질까 비상이 걸렸다.
트럼프보다 10%포인트나 앞선 민주당 대선후보 힐러리 클린턴의 지지율 상승세는 일시적 거품효과일 수도 있다. 민주당 전당대회 성공과 트럼프의 잇단 헛발질이 맞물리면서 시너지 효과가 발생했을 테니까. 그러나 요즘 판세가 심상치는 않다. 공화당의 두려움이 현실화 될 조짐이 여기저기서 어른거리고 있다.
매 4년마다 미국 선거뉴스의 조명은 대선결과를 좌우할 소수의 경합주에 집중된다. 매 2년마다 선거분석가들은 상원의 주도권을 좌우할 가장 치열한 상원선거 격전지의 지도를 작성한다. 2016년엔 이 2개의 선거지도가 거의 일치한다. 오하이오, 펜실베이니아, 뉴햄프셔, 네바다, 플로리다 등 올해 상원의 격전지 대부분이 대선의 경합주다.
현재 상원은 공화 54명과 민주 46명의 구도다. 민주당은 힐러리가 당선될 경우(부통령이 상원의장을 겸직하므로)엔 4석, 패할 경우엔 5석을 추가하면 다수당이 된다. 금년 투표에 회부되는 의석은 34석인데 이중 24석이 현 공화당 의석이며 현재로선 승패를 장담하기 힘든 격전지 10개 역시 네바다를 제외하곤 모두 공화당 의석이다.
본선개막과 함께 경합주의 힐러리 상승세가 이어지면서 벌써 정치 옵서버들이 “힐러리는 대선에서 승리할 경우 내년 1월 민주당 상원과 함께 서약할 수 있을 것”이라는 예상을 내놓기 시작했다.
공화당 상원선거에 비상이 걸리면서 자주 등장하는 용어가 코트테일(coattail)이다. 대선후보 등 인기 있는 당의 리더가 연방의회·주지사·주의회 선거의 같은 당 후보들을 동반 당선되도록 하는 정치적 영향력을 뜻한다.
로널드 레이건이나 버락 오바마의 코트자락은 자당의 의석을 늘리는 효과를 발휘했었지만 동반 낙선을 초래하는 ‘역 코트테일’ 효과의 사례도 없지 않다. 1964년 배리 골드워터 공화당 대선후보의 참패가 대표적으로 동반 추락한 공화당은 연방의석 38석을 잃었다.
지난 주말 월스트릿저널이 발표한 여론조사에 의하면 유권자들은 연방의회 주도권의 변화를 선호한다. 47%가 민주당이 다수당이 되는 것을 원했다. 공화당 선호는 43%에 그쳤다. 한달전만 해도 46% 대 46%였다. “트럼프가 너무 싫어서” 민주당에 기회를 주고 싶다고 했다.
공화당의 상원 수성(守成)이 절망적인 것은 아니다. 아직은 정치예측마켓의 상원 주도권 승률도 55% 대 44%로 공화당이 민주당보다 높고 앞으로 판세를 다질 시간도 충분하다. 힐러리의 상승세를 꺾고 트럼프를 최소한 제 궤도에 올려놓는 게 급선무다. 그러려면 이미 철저한 검증으로 수 없이 얻어맞고도 앞서가는 힐러리를 다시 주저앉힐 모멘텀이 필요한데 “공화당이 그런 비밀병기를 가졌는지는 확실치 않다”고 내셔널 포스트의 켈리 맥팔랜드는 지적한다.
이민개혁에서 총기규제강화까지 공화당이 오바마의 어젠다를 좌절시키는데 주효했던 파워인 의회주도권 상실은 공화당 입지의 대 재앙을 의미한다. 온갖 마이너리티에 대한 차별과 비하 발언에서 상대후보 암살시사 의심까지 공화당의 가치관 훼손이라는 추상적 피해를 넘어 동반 낙선으로 상원 주도권 상실이라는 가시적 피해를 끼칠 트럼프에 대해 이젠 공화당이 결단을 내려야 하는 때가 온 것이다.
일부 공화당 인사들이 반트럼프 공개선언에 나서고 있지만 현 지도부와 격전지 후보들에겐 그게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니다. 트럼프 지지층이 등 돌리는 역풍이 두려워서다. 그들이 상원 선거에도 핵심 표밭이기 때문이다.
힐러리가 트럼프를 15포인트나 앞서고 있는 뉴햄프셔에서 고전 중인 공화당 초선상원의원 켈리 에이요트가 “공화당 대선후보를 지지하지만 트럼프지지 공개선언은 안하겠다”는 애매한 입장표명으로 민주당에서 “무슨 헛소리냐”는 공격을 감수하는 것도 이런 이유다. 에이요트는 민주당 후보에게 50% 대 40%로 밀리고 있다.
공화당 지도부도 트럼프를 공개적으로 거부하지는 않고 있다. 상원 후보들에게 대선과 거리 두고 독자적 캠페인을 하라고 비공개 조언을 하고 있을 뿐이다. 트럼프는 안 찍어도 상원선거에선 공화당 후보를 찍어주는 유권자의 선택을 기대하는 것이다. 그것도 정도의 문제다. 트럼프가 참패할 경우 현재 10포인트 이상 리드 중인 플로리다의 마르코 루비오도 재선을 보장하기 힘들다는 것이 분석가들의 경고다.
민주당의 전략은 단순하게 정리되었다 - “모든 공화 후보들을 트럼프와 한데 묶어라!”
트럼프를 버려야 하나? 어느 정도 거리를 두어야 하나? 답답한 격전지 공화당 후보들의 심정을 어제 워싱턴포스트가 기도문으로 작성했다 : “제가 변화시킬 수 없는 것을 받아들이는 평온을 제게 허락하소서. 할 수 있는 것은 변화시키는 용기도 허락하소서. 무엇보다 이 두 가지의 차이를 알 수 있는 지혜를 허락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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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 록 주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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