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 한줄기 지나가듯, 흔적 없이 지나갔을 일이 사진으로 찍히면서 ‘사건’이 되었다. SNS에 오른 사진 한 장에 많은 사람들이 감동하고, 감동의 파장이 커지자 폭스TV는 현장을 찾아가 사진 속 인물을 수소문하는 보도를 했다.
소셜미디어 뉴스 웹사이트인 레딧(Reddit)에 지난 2일 사진 한 장이 올랐다. LA 한인타운 한 모퉁이에서 어느 여성이 노숙자의 발을 닦아주는 장면이었다. 사진과 함께 메시지가 있었다. “이 코리안 여성이 오늘 아침 홈리스 남성의 발을 닦아 주고 있었다. 혹시 이 여성을 본 사람이 있는가? 그를 찾아서 뭔가 잘 해주고 싶다. 3가와 킹슬리.”사진에 대한 반응은 감동 일색이었다. “가슴이 따뜻해졌다” “사는 게 아무리 바쁘고 정신없어도 인간에게는 남을 돕는 인간애가 있다” “서로 돌보고 사랑해야 한다는 사실을 일깨워준다” …. 사진에 영감을 받아서 자신도 선행을 베풀었다는 사람들도 있었다.
한마디로 마더 테레사 효과였다. 남을 돕는 선한 일을 직접 하는 것은 물론 선한 행동을 보기만 해도 엔돌핀이 솟아 기분이 좋아지고 면역기능이 강화된다는 효과이다. 하버드대학 연구진이 학생들에게 테레사 수녀가 캘커타의 빈민들 보살피는 모습을 담은 영화를 보여주고 관련 실험을 하면서 테레사 효과라는 이름이 붙여졌다.
사진을 보면 타인종 노숙자는 벽에 비스듬히 기댄 채 스스럼없이 발을 맡기고 있고, 여성은 발을 닦는 데 익숙해 보인다. 그들의 만남이 처음이 아닐 수도 있어 보인다. 여성은 왜 노숙자의 발을 씻어주는 걸까?남의 발을 씻어주는 행위는 우선 종교적 의미를 갖는다. 예수가 최후의 만찬 후 제자들의 발을 씻는 시범을 보인 이래 기독교에서 ‘세족’은 섬김을 상징한다. 가장 낮은 자세로 남을 섬기는 지고의 사랑의 표현이다. 아울러 노숙자의 발을 씻는다는 것은 대단히 실질적인 보살핌의 의미가 있다. 거처 없이 떠도는 생활로 가장 무리가 가는 것은 발과 다리이다. 노숙자의 발은 세상에서 가장 힘든 발이다. 그들의 특별한 고통을 그 여성은 알고 있었던 것 같다. 고통을 보는 눈이 있었던 모양이다.
모든 선행의 시작은 ‘보는 것’이다. 어려움을 겪는 누군가가 어느 순간 눈에 들어오고 그 어려움을 보게 되면 관심이 생기고, 관심이 생기면 도울 방법을 모색하게 된다. 때로는 그것이 성공적인 사업모델이 되기도 한다. 신발업체인 TOMS(Tomorrow's Shoes)가 대표적이다.
연 수익 3억달러 이상의 대기업이 된 톰스는 10년 전 남가주의 한 아파트에서 소박하게 시작되었다. 사업가인 블레이크 마이코스키는 2006년 1월 아르헨티나에 다녀온 후 완전히 새로운 사업을 구상했다. 비즈니스를 수단으로 지구촌 어려운 사람들의 삶을 개선하는 운동을 전개하자는 구상이었다.
부에노스아이레스에서 그가 한 비영리기구 직원을 만난 것이 계기였다. 가난한 시골 지역 어린이들에게 신발을 나눠주는 기구였다. 그 직원과 동행하면서 그는 21세기에 신발이 없어 맨발로 다니는 아이들이 그렇게 많다는 사실, 어린 아이들이 신발이 없어 갖가지 아픔을 겪는 현실을 목도했다. 어느 집에서는 형제가 신발 한 켤레를 번갈아 가며 신다보니 형과 아우가 학교를 하루 씩 빠져야 했다. 그들의 고통을 눈으로 보면서 그는 뭔가를 해야겠다고 결심했다. 신발 한 켤레 팔 때마다 한 켤레를 지구촌 가난한 이웃에게 기부하는 독특한 사업모델은 이렇게 탄생했다.
‘하나 팔면 하나 기부’ 아이디어에 전문가들은 회의적이었다. 기업이 이윤을 남기지 않으면 살아남을 수 없다는 간단한 논리였다. 놀랍게도 톰스는 지난 10년 간 70개 나라 6,000만명에게 신발을 나눠주고도 계속 번창해 판매/기부 사업을 신발에서 안경, 식수, 임산부 지원 등으로 확장했다. 파는 만큼 기부하는 톰스의 사업모델은 사회적 기업정신, 보살핌의 자본주의 등으로 불리며 한 흐름을 만들고 있다. 따라하는 기업이 수십개에 달한다.
톰스의 성공 배경은 무엇일까. 손에 움켜쥐는 대신 내어 주었는데 왜 수익이 더 많아졌을까. 사람들의 마음속에 있는 선한 의지가 답이라고 본다. 물에 빠진 아이를 보면 앞뒤 가리지 않고 달려가 구하는 본능적 선함이 인간에게는 있다. 삶이 각박해 평소에는 의식 뒤편으로 밀쳐져 있지만 어떤 계기로 자극을 받으면 감동과 동참으로 표출된다. 노숙자의 발을 씻는 여성에 감동하고, 톰스의 신발을 사면서 흐뭇해지는 배경이다.
세상이 너무 시끄럽다. 정신의 쉼터를 찾듯 우리는 감동에 목말라 있는 지도 모르겠다. 남을 도우면 하늘을 날듯 행복해진다는 핼퍼스 하이 효과를 각자 실험해보면 좋겠다.
junghkwon@koreatime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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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정희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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