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여행이란 첫사랑의 연인처럼 설레임으로 다가와
▶ 이 세상의 것이 아닌듯한 푸른 물빛과 깍아지른 설산
천국에 온 느낌의 루이스 레이크
북극을 제외하고 가장 큰 빙원을 감상할 수 있는 곳
지구 온난화로 순백의 빙하가 더욱 애틋하게 느껴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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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업적인 여행가 외에는 나만큼 세계여행을 즐긴 사람도 흔치 않으련만 여행이란 첫사랑의 연인들처럼 항상 설레임으로 내게 다가온다. 그 중에서도 이곳에서 그냥 머물며 늙어 죽고 싶다는 생각이 드는 곳은 손가락에 꼽힐 정도인데, 그 중 하나가 캐나다 서부 앨버타(Alberta) 주, 캐나디언 록키(The Canadian Rockies)에 자리 잡은 밴프 국립공원(Banff National Park)이다.
하늘까지 솟아오른 신비의 설산 갈피마다 숨어있는 에메랄드 호수들, 그 푸른 물빛과 깎아지른 설산과의 조화는 인간의 세계에서 도저히 만날 수 없는 경이로운 아름다움이다.
밴프 국립공원 곳곳에는 보는 순간 내 눈을 의심할 정도로 오묘한 빛깔과 자태를 뽐내는 호수가 여기저기에 있다. 그 중에서도 밴프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이 아마도 루이스 호수(Lake Louise)일 게다.
루이스 호수는 분명 보는 이를 압도하는 아름다움을 지니고 있지만 워낙 유명한 장소인 까닭에 언제 가도 관광객으로 붐빈다는 아쉬움이 있다. 더욱이 나로서는 이번이 두 번째 방문으로, 붐비는 것까진 좋은데 여행객들에게 밟힌 자욱이 나타나 아쉬운 탄식이 나온다. 5년 전엔 그 신비함에 가슴을 모두 내주어 텅 빈 가슴이 되었었는데 이번엔 너무 많은 인파에 호수가 몸살을 앓고 있는 듯하다.
그림 같은 밴프 다운 타운
하지만 여기서 멀지 않은 곳에 루이스 호수에 못지않은 아름다움을 지닌 곳이 있다. 게다가 찾는 이들이 덜해 조금 더 여유롭게 대자연의 신비를 만끽할 수 있는 곳, 모레인 호수(Moraine Lake)가 바로 그곳이다. 루이스 호수에서 10개의 웅대한 산봉우리가 솟아있는 계곡(Valley of the Ten Peaks)을 따라 8마일 정도 산길을 오르면 모레인 호수가 나타난다.
모레인 호수는 마치 이 세상의 것이 아닌 것처럼 신비한 푸른 물빛을 내뿜는다. 이는 빙하가 녹아 호수로 흘러들면서 함께 섞여 들어온 암석가루가 가시광선의 푸른색만 그대로 반사하기 때문이라 한다. 게다가 호수 자체의 규모도 웅장하고 여름철에도 눈으로 덮인 신비한 산봉우리가 병풍처럼 둘러싸고 있어 마치 반지의 제왕에 등장하는 장소 같은 느낌이 든다.
흔히들 캐나디언 록키라고 부르는 지역에는 국립공원이 4개가 인접해 있는데 록키산맥 서쪽 사면으로는 쿠트니(Kootenay NP) 국립공원과 요호(Yoho NP) 국립공원이 자리 잡고 있고, 동쪽으로는 밴프(Banff NP)와 재스퍼(Jasper NP)가 자리 잡고 있지만 설산의 분위기는 비슷하다.
캐나다 록키의 특징은 산의 크기가 미국보다 훨씬 더 웅장하고, 이 웅장한 산이 수도 없이 끝도 없이 이어져 캐나다 록키가 더 아름답다는 얘기들을 많이 하는 듯…밴프를 출발해 루이스 호수를 거쳐, 재스퍼 국립공원까지 남북으로 이어지는 아이스필드 파크웨이(Icefield Parkway) 약 200마일이 캐나다 록키 여행의 백미, 때로는 설산으로, 때로는 바위산으로, 빙원이 나타나기도 하고, 에메랄드 빛 호수가 수줍게 모습을 드러내는가 하면, 때로는 우렁차게 떨어지는 폭포 소리가 들리기도 하여 운전을 하면서도 지루할 틈이 없다.
아이스필드 파크웨이 주변으로, 빙하가 만들어낸 패트리샤 호수(Patricia Lake)나 피라미드 호수(Pyramid Lake), 세컨드 호수(Second Lake) 등 저마다 특색을 발하는 호수들이 많이 있는데 한곳을 추천하라면 멀린 호수(Lake Maligne)를 추천하고 싶다.
멀린 호수는 세계에서 두 번째로 큰 빙하호이고 캐나디언 로키 지역에선 가장 크다. 워낙 맑은 물 덕분에 민물 송어의 주요 서식지로 유명하고 호수 동쪽 끝에는 스피릿 아일랜드(Spirit Island)라는 섬이 있는데, 호수 투어의 하이라이트, 재스퍼의 대표 사진 촬영지로, 캐나다 로키의 엽서나 달력의 사진에 언제나 제일 먼저 등장하는 곳이기도 하다.
밴프에서 재스퍼에 이르는 아이스필드 파크웨이 93번 도로의 정확히 중간에 위치한 컬럼비아 아이스필드(Columbia Icefield)라 불리는 빙하를 빼고는 캐나다 로키를 논할 수가 없다.
컬럼비아 아이스필드는 북극을 제외하고 지구상에서 가장 큰 빙원을 감상할 수 있는 곳으로 맨하튼의 다섯 배에 달하는 빙원이 밴프 공원과 재스퍼공원에 걸쳐있다. 설상차를 타고 빙하 위를 질주하는 체험은 남녀노소 누구라도 탄성을 지르게 만들며, 만년설과 빙하가 우리에게 전하는 시간의 공백은 낯설지만 모든 이에게 매력적으로 다가온다.
지구 온난화 현상으로 100여 년 후에는 사라져 버릴지도 모른다는 가이드의 말은 보는 이의 탄성을 아쉬움으로 바꿔놓는다. 지금 발 딛고 서 있는 지구의 어느 곳도 다시 돌아왔을 때 똑 같은 모습으로 남아 있지 않을 것이기에 순백의 빙하가 전하는 애틋함이 더 간절하게 다가온다. 천상을 거닐다 문득 이 세상으로 들어온 듯, 저녁이 되어 캠핑 그라운드로 들어오니 옆 텐트 캠트 사이트에서 낙엽 태우는 냄새가 우릴 반긴다.
이효석의 수필 '낙엽을 태우면서'가 문득 생각난다 – 낙엽 타는 냄새 같이 좋은 것이 있을까. 갓 볶아낸 코오피의 냄새가 난다. 향기로운 냄새를 맡고 있노라면 별안간 맹렬한 생활의 의욕을 느끼게 된다...
Flat Head Lake
- 장금자
가슴 모두어 안으로만 싸안은 이야기
아침 햇살에 물안개로 피어오르네
나 차마 떠나지 못하고
호수 되어 기다림은
물안개로 떠난 당신
구름으로 떠돌다 다시 내게 오리니
온 가슴 열어 밤새 품었다가
눈 시린 날 함께 피어올라
그대 따라 구름으로 떠돌고 저 함이네
<
성기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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