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적재량 늘린 SUV 판매 돌풍 혼다 ‘HR-V’ 2열 좌석 수직 세워 공간 확대, 기아‘니로’는 배터리 위치 바꿔 적재량 늘려
▶ 세단 ·다목적차량도 심혈 르노삼성 LPG 차에 납작 개스통‘도넛 탱크’, 완성차업체들 기획 단계부터 트렁크 확대
매직시트를 설치해 2열 좌석 공간의 혁신을 보여준 소형 SUV HR-V.
자동차는 사람의 이동 ‘수단’이면서 이동 ‘공간’이다. 빨리 달리고 정확히 멈추는 주행성능 못지않게 자동차 실내공간의 쾌적함과 효율성도 매우 중요하다. 전 세계적인 SUV 열풍은 그만큼 공간의 중요성이 커졌다는 의미다. 운전자들이 차의 실내공간을 중시하는 추세에 맞춰 완성차 업체들은 차 안에 숨어 있는 작은 공간이라도 찾아내 늘리기 위해 치열하게 경쟁하고 있다.
■ SUV는 공간의 대결
최근 한국에 나온 차들 중 공간적인 혁신을 보여주는 건 단연 혼다의 소형 SUV ‘HR-V’다. 요즘 SUV들은 거의 다 끝 좌석을 앞뒤로 접어 적재공간을 늘릴 수 있지만 HR-V는 여기서 한걸음 더 나아가 2열 좌석의 엉덩이가 닿는 바닥 부분을 수직으로 세울 수 있게 했다.
혼다는 마법 같은 공간이 생긴다는 의미에서 이 좌석을 ‘매직시트’라고 부른다.
사람의 자리로만 여겨졌던 2열 공간의 변신은 기대 이상이다. 트렁크에 눕힐 수 없는 큰 화분이나 유모차가 똑바로 세워진 상태에서 그대로 들어간다. 높이가 126㎝인 화물까지 실을 수 있다. HR-V 트렁크 기본 적재용량은 688ℓ인데 매직시트를 앞으로 접으면 최대 1,665ℓ까지 늘어난다. 혼다코리아 관계자는 “시트가 더러워질 일이 없어 애완동물을 차에 태워 다닐 때도 효율적”이라고 설명했다.
매직시트는 혼다의 특허인 ‘센터 탱크 레이아웃’ 기술이 적용돼 가능해졌다. 이 기술은 일반적으로 차 2열 좌석 아래에 들어가는 연료탱크를 1열 좌석 밑으로 옮긴 게 핵심이다. 덕분에 매직시트뿐 아니라 2열 공간 자체가 넓어졌고, 키가 큰 사람도 머리가 천장에 닿는 불편이 없어졌다.
같은 시스템을 사용하는 하이브리드 차인데도 기아자동차의 소형 SUV ‘니로’ 판매량이 현대자동차의 ‘아이오닉 하이브리드’를 압도하는 것은 공간의 힘이다. 하이브리드차는 대용량 배터리가 트렁크 쪽에 자리잡아 태생적으로 공간 활용성이 낮을 수밖에 없는데 기아차는 니로 개발 과정에서 배터리 위치를 2열 좌석 아래로 변경해 SUV에 어울리는 트렁크 공간을 확보했다. 니로의 트렁크 기본 적재용량은 427ℓ로, 이전까지 동급 최대 트렁크(423ℓ)를 자랑한 쌍용자동차 ‘티볼리’보다도 크다.
이에 맞서 쌍용차는 사륜구동을 기본적용하고 트렁크 적재용량을 720ℓ까지 늘린 ‘티볼리 에어’를 올해 3월 출시해 판매 돌풍을 이어가고 있다.
최근 고객 인도가 시작된 재규어의 첫 SUV ‘F-페이스’는 주행성능을 중시하는 차량이면서도 실용적인 트렁크를 함께 갖췄다. 기본 적재용량은 508ℓ이고, 트렁크 높이가 낮아 물건을 실을 때 편하다. 트렁크 바닥재는 한쪽이 천, 한쪽은 고무라 화물 특성에 따라 활용할 수 있다. 재규어 랜드로버 코리아측은 “F-페이스는 다른 재규어나 랜드로버 차들처럼 알루미늄으로 제작됐다”며 “알루미늄은 중량과 외형 변형 없이 원하는 강도를 확보할 수 있어 트렁크와 탑승 공간을 늘리는 데 효과적”이라고 말했다.
■ 숨은 공간을 찾아라
넓고 효율적인 공간은 SUV뿐 아니라 세단이나 다목적차량(MPV) 등에도 중요한 가치다. 한국산 차 중에서는 르노삼성 자동차가 일찌감치 세단의 트렁크 공간 활용성에 주목해 소비자들로부터 좋은 반응을 얻고 있다.
LPG 세단 트렁크에 들어가는 실린더형 가스통을 고리 모양으로 납작하게 만들어 트렁크 아래로 숨긴 ‘도넛 탱크’가 대표적이다. 시각적으로도 안전해 보이고 트렁크 적재용량이 가솔린 엔진 차와 같다는 게 장점이다.
르노삼성은 ‘SM5’와 지난해 말 출시한 장애인용 ‘SM7 LPe’에 이 기술을 적용했다. 올해 상반기 SM7은 지난해 같은 기간에 비해 72%나 늘어난 3,480대가 팔렸는데 이중 절반가량이 LPe 모델이다. 시장의 반응이 뜨거워 이달 초에는 택시용 SM7 LPe도 나왔다.
르노삼성은 올해 초 출시한 인기 중형세단 ‘SM6’의 트렁크에도 추가 적재공간을 만들었다. 예비 타이어를 빼내고 신발이나 야외활동용 물건을 넣을 수 있도록 공간을 구분한 ‘트렁크 인 트렁크’이다.
도요타의 원조 하이브리드차 ‘프리우스’도 설계 변경을 통해 부족한 트렁크 공간의 약점을 극복했다. 올해 한국에 들여온 4세대 프리우스는 트렁크에 있던 배터리가 2열 좌석 아래로 이동해 무게중심이 낮아졌고, 적재 공간은 늘어났다. 혼다도 8인승 미니밴 ‘오딧세이’의 트렁크 아래에 있던 예비 타이어를 2열 좌석 밑으로 옮겨 트렁크 활용성을 높였다.
트렁크의 위상 변화는 차량 개발에도 영향을 미치고 있다. 과거에는 신차 개발이 어느 정도 이뤄진 뒤 트렁크 공간을 설정했지만, 이제는 기획 단계부터 트렁크 용량을 늘리기 위한 최적화 설계가 진행된다. 현대기아차 관계자는 “조금이라도 공간을 넓히기 위해 같은 기능의 부품이라도 어떻게든 크기를 줄이고, 부품들의 모듈화와 통합 배치에 심혈을 기울이고 있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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