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끼는 왜 그렇게 인기가 있을까, 오래동안 지켜봤다. 인내심으로 찾아 읽고 주윗 사람들에게 그들의 의견을 묻기도 했다. 시공을 넘나드는 그의 소설들은 내게 별 맛없이 약간 말라가기 시작하는, 우유 냄새가 많이 나는 식빵 같다. 그리고 그의 말투는 쿨한 척 안하면서 쿨한 척 하는 젊은 사내같다.
얼마나 매끄럽게 넘어가는지 진한 성애의 장면은 대개 환상이나 꿈으로 그려낸다. 마치 검열에 걸리는 경계선을 본능적으로 느끼고 본능적으로 그걸 피해가는 노련한 세공사 같다. 29살에 첫소설을 써 문학상을 탄 후 탄탄대로를 달리듯 작품을 내고 인정 받는 그도 어느새 칠순이 멀지 않은 나이다.
그런데 그에겐 노인네의 퀴퀴한 냄새가 없다. 아니 노인네는 커녕 이 사람 혹시 피터 팬이 환생한 거 아냐?, 하는 말도 안되는 생각을 떠올리게도 한다. 나이는 물론 동양이니 서양이니 혹은 일본인이니 한국인이니 하는 경계도 보이지 않는다.
젊은 이들이 그에게 열광하는 건 바로 이 두가지 특성 때문이 아닐까, 혼자 추측해 본다. 그런데 소설에선 내게 어필하지 않는 그의 특성이 에세이에선 일품이다. 그는 소설만큼이나 많은 분량의 에세이를 썼는데 그의 에세이를 읽다보면 웃음이 나는 상황을 자주 만나게 된다.
픽 웃을 때도 있고 푸하하 하고 웃을 때도 있다. 최근 ‘직업으로서의 소설가’ 라는 책을 읽었다. 자신에 관한 모든 것이 그의 글감이 되어 그의 에세이를 몇 편 읽다보면 자연스레 그가 마라톤을 뛴다는 것도 알게 되고 굴튀김을 좋아한다는 것도 알게 된다. 지금도 여전히 그런지는 모르지만 젊었을 때 스트레스가 있으면 다림질을 한다는 것도 알고 재즈광이라는 것도 밝혀진다.
그는 소설 쓰는 일을 권투 시합의 오픈 링 으로 표현한다. 한 선수가 링위에 서서 어디 한번 붙어 보고 싶으신 분 안 계세요?, 하고 청중에다 묻는 것 같다고 한다. 피아니스트라던가 무용, 혹은 가수 같은 직종은 아무나 어제까진 세일즈맨이었지만 오늘부턴 피아니스트 할래요, 하고 나섰다간 호되게 혼날텐데 글은 아무나 작정하고 달려들 땐 뭐래도 주절주절 써낼 수 있기 때문이란다.
말이 된다. 그는 누구래도 한권의 소설쯤은 쓸수 있는 거라고 너그럽게 말한다. (진짜? 아무나? 소설쯤?) 자신이 하는 일에 자신만만하면 그런 말을 할수 있을 터이다. 그러나면서 얼마나 오래 링위에서 버틸수 있느냐가 관건이라고 한다. 아무튼 그는 여전히 링위에서 당당한데 그렇게 왕성하게 글을 써내는 작가가 하는 말이 잠깐 걸음을 멈추게 한다.
그는 처음부터 오랜 시간이 지날 때까지 일인칭 소설만을 써왔는데 그 이유가 아무리 상상속의 사람이지만 누군가에게 이름을 지어준다는 게 쑥스럽고 죄송해서였다고 한다. 이름을 부르자 꽃이 되어 내게 왔다는 김춘수의 시를 상기시키는 말. 이렇게 노련한 작가에게 또 이런 감수성이 있구나, 신선했다.
얼마전 한 유명인이 남의 손으로 그려진 그림에다 자신의 사인을 하고 어마어마한 값에 판 일이 있었다. 해명을 요구하는 기자에게 그는 미국의 유명한 화가는 다 조수를 둔다며 관행이라고 했다. 하긴 나 정도의 처지에도 조수까지는 아니라 해도 남의 손을 종종 빌리기는 했다.
그리고 어마어마한 크기의 설치 예술등은 남의 손을 빌리지 않을 도리가 없다. 아니 설치 예술까지 들먹이지 않더라도 리토그래프 같은 판화는 돌위에 이미지를 그려내는 일은 일의 시작도 아니다.
이미지를 그린 후에 수많은 과정을 거쳐야 종이로 옮겨지고 그 과정이 정말 노동도 보통 노동이 아니다. 루이스 니블슨은 미술사에 이름이 있는 사람인데 그가 돌 위에 쓱싹 그림을 그리면 기운이 펄펄 넘치는 젊은 조수들이 달려들어 모든 중간과정을 해결해주고 화가는 싸인만 한다.
그러나 아무리 노동 부분을 남이 다 해주었다해도 이미지만은 자신의 것이다. 캔바스 위의 흔적은 오로지 작가만의 것이어야 한다. 세상엔 자기가 쓰는 소설의 등장인물 이름짓기도 부끄러웠다는 이도 있고 남이 그린 그림에 자신의 이름을 쓰며 그게 사회적으로 문제가 되는 게 이상한 이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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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 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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