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대통령은 50개주와 워싱턴 DC에 사는 미 유권자들이 뽑는다. 그러나 실제로 선거를 결정하는 것은 소위 ‘경합주’(swing state)라 불리는 10개 주다. 나머지 40개주는 누가 민주 공화 양당 후보로 나오든 결과가 이미 정해져 있다. 따라서 두 당의 대선 후보들은 이들 40개 주에는 거의 가지도 않고 광고도 하지 않는다. 시간과 돈의 낭비이기 때문이다.
네바다, 뉴멕시코, 콜로라도, 아이오와, 뉴햄프셔, 노스캐롤라이나, 버지니아, 플로리다, 오하이오, 펜실베니아 등 이들 10개 주 가운데서도 특히 중요한 것은 플로리다와 오하이오, 펜실베니아다. 이들 3개 주는 인구가 다른 주보다 많고 따라서 선거인단 수도 많기 때문이다. 특히 연령과 소득, 인종 분포에 있어 미국의 축소판이라 불리는 오하이오는 여기서 진 공화당 후보는 한 번도 대통령이 된 적이 없을 정도로 대선에 결정적 역할을 한다.
공화당의 큰 문제는 시간이 가면 갈수록 이들 경합주에서 전세가 불리하게 돌아간다는 점이다. 공화당의 주 지지 기반인 보수적인 백인 노인 인구는 계속 줄고 민주당 지지층인 젊은 소수계와 이민자는 점점 늘고 있다. 1988년 아버지 부시가 승리한 이래 미 대선에서 공화당이 제대로 이긴 것은 2004년 단 한 번뿐인 것은 그 때문이다.
2000년 대선 결과를 좌우한 플로리다 선거는 랠프 네이더가 민주당 표를 깎아 먹은 데다 일부 민주당 지지자들이 투표용지에 붙은 ‘차드’를 제대로 떼어내지 않는 바람에 무효표 처리 됐고 연방 대법원이 재검표를 중단시킨 덕에 아들 부시가 대통령이 됐다. 2004년에도 실현 가능성이 전혀 없는 동성연애자 결혼 금지 헌법 개정안을 공약으로 내걸고 보수 기독교인 표를 긁어모아서야 겨우 이겼다.
민주당은 경합주 뿐 아니라 선거 전 사실상 결과가 정해진 40개 주에서도 우세하다. 민주당 후보는 당선에 필요한 선거인단 270명 가운데 240명 이상을 그냥 먹고 들어간다. 공화당은 그 절반 수준이다. 공화당은 3대 경합주를 모두 이겨야 겨우 당선이 가능하지만 민주당은 하나면 이겨도 된다. 원래부터 불리한 싸움인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공화당이 승리하기 위해서는 공화당은 물론 중도파와 민주당원 일부를 끌어올 수 있는 특출 난 인물이 대선 후보가 돼야 한다. 그러나 올 대선에서 공화당은 이런 능력이 가장 부족한 도널드 트럼프를 후보로 택했다.
공화당 전당 대회 후 반짝 했던 트럼프의 인기가 급속히 추락하고 있다. 민주당 전당대회 직후 실시된 CBS 여론 조사에 따르면 힐러리 클린턴은 46대 39로 트럼프에 앞선 것으로 나타났다. 공화당 전당 대회 직후 동률이던 두 사람 지지도가 7% 포인트 벌어진 것이다.
일부 언론에서 트럼프가 힐러리를 앞섰다는 여론 조사 결과가 나오기도 했지만 모든 여론 조사 결과를 평균 낸 ‘리얼클리어폴리틱스’ 결과에 따르면 올 들어 트럼프가 힐러리를 앞선 것은 트럼프가 공화당 후보로 확정된 때와 공화당 전당대회 직후 두 번 뿐이다. 그 극히 짧은 기간을 제외하고는 힐러리는 늘 상당한 차이로 트럼프를 앞서 왔다. 2008년 존 매케인과 버락 오바마 때와 패턴이 거의 같다.
이번 조사는 트럼프가 미국을 위해 싸우다 죽은 아들을 둔 키즈르 칸 일가를 모욕하기 전에 실시된 것인데 이번 논란은 가뜩이나 추락하고 있는 그의 지지도에 부정적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아무리 회교도 이민자라 해도 나라를 위해 가장 큰 희생을 치른 가족을 비하하는 것에 대다수 미국인들은 동의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트럼프가 이 사실을 몰랐거나 알고도 그런 발언을 했다면 정치적 백치거나 정신이상자라 볼 수밖에 없다.
공화당 창립 멤버의 하나인 에이브러험 링컨은 ‘게티스버그 연설’에서 미국이 자유와 평등이라는 이념에 기초해 세워진 나라임을 천명하고 그 나라를 지키기 위해 ‘모든 것을 바친’(the last full measure of devotion) 이들을 추모하면서 이들이 못 다한 과업을 우리가 완수하는 것만이 이들의 죽음을 헛되이 하지 않는 길이라고 강조했다. 올 11월 대선에서 트럼프를 정치적으로 매장하는 것만이 게티스버그 전사들과 링컨과 칸의 죽음을 헛되이 하지 않는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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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경훈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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