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과 한반도 평화통일을 심도 있게 논의했다.” 지난해 9월이었나. 박근혜 대통령이 서방국가 지도자로서는 홀로 시진핑, 푸틴과 함께 나란히 천안문망루에 올랐던 것이. 사변(事變)으로까지 불린 그 ‘망루외교’ 이후 박대통령의 첫 발언이었다.
중국 짝사랑의 소망사고(所望思考)가 넘쳐 장밋빛 기대가 만발했었다. 박 대통령의 발언은 그 압축판이었다. 북한은 전략적 자산이 아닌 부담이다. 골칫거리인 그 북한을 버릴 때가 됐다. 중국은 한국 주도의 통일시나리오를 지지할 것이다. 그런 확신에 차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거기다가 시진핑은 주변국 외교의 4대 키워드로 친(親), 성(誠), 혜(惠), 용(容), 네 글자를 내걸었다. 이웃과 친하게 지내고 성실하게 대하며 혜택을 주고 포용하겠다는 말이다. 그 말을 곧이곧대로 믿었는지 모른다.
그래서였나. 윤병세 외교부장관은 한국이 미국과 중국, 양 대국으로부터 동시에 러브콜을 받는 ‘축복’을 받고 있다고 우쭐거리기까지 했다. 사드미사일방어체계 도입에 대해서는 전략적 모호성을 지킬 필요가 있다는 극히 모호한 발언과 함께.
그리고 1년도 채 못 된 2016년 7월의 마지막 주의 한 시점. 무대는 라오스 아세안지역 안보포럼. 중국의 외교부장은 지극히 비외교적인 언어로 한국외교장관 면전에서 한국을 노골적으로 비난하고 나섰다.
이유는 사드배치다. 안보를 위해 한국정부가 취한 주권적 조치다. 그게 마음에 안 든다고 시비를 건 것이다. 외교장관회의에서 얼마든지 상대국에 대한 불만을 제기할 수 있다. 그러나 어디까지나 외교적 예의를 갖춘 상황에서다. 그런 프로토콜도 무시한 것이다.
무례와 오만의 극치라고 할 수밖에 없다. 그 중국외교부장의 행태를 그러면 도대체 어떻게 보아야 하나. 사드배치에 대한 항의 표출을 지나 한국에 대한 중국의 근본적 인식을 드러낸 것이란 해석이 가능하지 않을까.
그러니까 친(親), 성(誠), 혜(惠),용(容). 이 네 글자는 그저 립 서비스 일뿐 속된 말로 한국을 장기판의 ‘졸’ 정도로 보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또 하나. 미군이 있는 통일한국을 결코 용인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6.25때도 그랬던 것처럼.
“중국은 큰 나라다. 다른 나라들은 작은 나라들이다. 그것은 엄연한 사실이다.” 왕제치 전 중국 외교부장이 일찍이 아세안국가 외교장관들 면전에서 한 말이다. 다른 말이 아니다. 강한 나라는 무엇이든 하고 싶은 대로 할 수 있다. 반면 약한 나라는 그들이 할 바를 받아들여야만 한다는 거다.
대국병(大國病)이 들어도 단단히 들었다. 그게 중국외교, 특히 시진핑 시대의 중국외교인 것이다. 그 중국의 해외정책은 국내정치의 관점에서 바라볼 때 가장 정확한 해석이 가능하다는 것이 내셔널 인터레스트지의 분석이다.
민주적 절차는 결여돼 있다. 경제적 성공으로 통치의 정당성을 부여받던 시대도 지났다. 강조되는 것은 ‘수치의 세기’를 잊지 말자는 것이다. 공산당이야말로 그 수치의 세기를 끝낸 장본세력임을 주지시키고 또 주지시킨다. 일종의 ‘피해자 마인드’의 저항적 내셔널리즘 고양이 시진핑 체제의 통치기제가 되고 있는 것이다.
이런 체제의 외교정책은 경직될 수밖에 없다. 때문에 외교문제에 있어 양보란 있을 수가 없다. 작은 양보도 체제불안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두려움에 사로잡혀 있어서다.
중국의 국내 정치는 권위주의 형으로 수직적 관계만 중시되는 가치관이 지배하고 있다. 제1인자(老大)는 자신의 이익을 위해 멋대로 법을 바꿀 수 있다. 법위에 군림하는 것이다. 국제사회를 바라보는 시각도 다르지 않다. 양제치의 발언도 바로 그 멘탈리티의 소산이다.
이웃나라를 결코 동등한 존재로 인정하지 않는다. 그저 관리대상일 뿐이다. 달콤한 말로 달래다가 여의치 않으면 근육을 내보이며 윽박지른다. 구시대의 화이(華夷)사상에서 좀처럼 벗어나지 못한 것이 중국 공산당의 해외정책이다.
한 마디로 폭압체제의 국내적 압제의 연장선에 있는 것이 중국의 완력외교라는 진단이다.
그 중국 외교가 사면초가의 상황을 맞고 있다. 남중국해 영유권을 둘러싼 분쟁에서는 필리핀에게 일격을 당했다. 헤이그상설중재재판소(PCA)가 중국이 멋대로 설정한 구단선은 불법이란 판결과 함께 필리핀의 손을 들어주었다.
동중국해에서의 도발은 미일동맹 업그레이드와 함께 아베의 정치적 입지만 강화시켰다. 중국의 완력외교는 동남아 국가들은 물론 호주, 인도까지 미국편으로 끌어들였다. 미국의 아시아 회귀정책의 최대 원군은 다름 아닌 시진핑이란 말이 나오고 있을 정도다.
문제는 한국이란 생각이다. 사드배치는 자위를 위한 당연한 주권행사다. 그런데도 여전히 눈치 보기에 급급하다. 그리고 국론이 갈리고 있다. 중국공산당정권의 이간책에 놀아나고 있는 모양새를 연출하고 있는 것이다.
이제는 정말이지 중국 짝사랑 미몽(迷夢)에서 깨어날 때가 된 것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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옥세철 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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