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A 다운타운에 살면서 가장 많이 목격하게 되는 것 중 하나는 곳곳에 즐비한 노숙자들의 실태이다. 빌딩 숲으로부터 뻗쳐 나오는 길가 주위에는 미국 최대의 노숙촌이 형성되어 있다. 전 세계에서 백만장자의 비율이 가장 높은 대 도시 중 하나라 해도 과언이 아닌 LA에 노숙을 할 수밖에 없는 극빈 인구가 수만 명이나 있다는 것은 참 아이러니한 현실이 아닐 수 없다. 어쩌면 너무 멀리 와버린 이 시대 미국 자본주의가 나은 부작용의 양상이며, 수년간 빈익빈 부익부의 양극화를 방치한 결과 극대화될 대로 된 빈부의 격차가 낳은 비극이다.
노숙자 인구와 부동산은 반비례한다는 공식을 깨버리듯이 LA의 집값은 쉬지 않고 상승중이다. 하지만 주거비를 감당하지 못해 노숙인구가 급증하는 문제를 단순히 불충분한 수입이나 침체된 경제의 여파 때문이라 할 수는 없다.
노숙자 문제의 구조는 사실 복잡하다. 민영보험 형태의 미국의 의료체계는 다소 불합리하며 복지지원 체계 역시 많이 제한되어 있다는 측면에서는 쌍벽을 이루는 실정인지라, 가정 내 폭력피해자, 신체 결함자, 재향 군인들, 정신분열증 환자 등 홀로서기 하기가 힘든 많은 이들이 정부로부터 합당한 도움을 받지 못하는 경우가 비일비재한 상황이니 말이다.
‘천사의 도시’라고도 불리는 이곳에 부푼 꿈을 가지고 찾아와 이런저런 사연으로 거리에 내몰린 사람들 중에는 약물 남용자들이 헤아릴 수 없이 높은 비율을 차지하고 있다. 놀랍게도 개중에는 전문직에 종사하던 고학력자들이 상당수 있으며, 예술가로서의 탁월한 재능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도 간혹 있다.
한때는 의도적으로 잔돈을 챙겨 다니면서 기회가 될 때마다 노숙자들에게 건네곤 했었다. 101번 고속도로 출구 근처에 시간대별로 점유하고 앉아 구걸을 하는 노숙자들과 가끔씩 서로의 안부를 묻곤 하는 재미가 쏠쏠했었다. 물론 노숙자들의 정신이 반듯해 보일 때의 이야기이다.
도시 곳곳에서 고독하게 중얼대며 허공을 향해 손짓을 하는 사람들을 종종 목격 하는 것에 무덤덤해졌을 무렵의 어느 날, 금융가를 벗어나기 위해 좌회전 신호 대기 중이던 나는 무심히 낯선 한 청년을 보게 되었다. 얼핏 보기에 어깨가 넓고 키가 큰 동양인, 아니, 한쪽 어깨에 가방을 걸치고 야구 모자를 쓴 그는 정확히 가늠할 순 없었지만 20대로 짐작되는 한국사람 같았다.
정말 무심코 지나칠 수도 있었지만 왠지 모를 친숙함에, 그리고 측은함에, 나도 모르게 고개를 돌려 물끄러미 그를 주시하게 되었다. 그리고 나는 직감적으로 그 역시 마약에 혼을 빼앗긴 사람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약물에 심각하게 중독되어 이제는 돌이킬 수 없는 길을 걷고 있는 듯한 인상이었다.
입에 긴 담배를 물고는 내 앞을 지나가기 시작하던 그가 나를 흘깃 바라보았다. 그리고 내가‘그와 눈을 마주치지 말아야겠다’라는 생각을 하던 찰나, 그는 나를 향해 손을 흔들어 보였다. 위협적인 손짓이 아니었다. 눈빛은 자아를 마약에 송두리 채 빼앗긴 듯 했지만, 그의 손짓은 야릇하게도 해맑아 보였다. 그를 향해 애써 입 꼬리를 올려 웃음지어 보았다. 그는 금세 다시 무심한 듯 고개를 돌려 담배에 불을 붙이며 유유히 사라졌고, 나는 그의 뒷모습을 바라보았다. 그는 왜, 어떤 사연으로 거리를 방황하는 사람이 되었을까.
그 잠깐의 순간 만감이 교차했다. 그는 나와 마주치기 아주 오래전 장래가 촉망되는 삶을 살았을 것만 같았다. 한때는 보호자의 기대를 받으며 학교에 입학했을 것이며, 뚜렷한 목표의식을 가지고 목전에 놓인 과제에 열중 했을 것이며, 총기 있는 눈빛으로 사람들과 시선을 교환했을 것이며, 밝게 웃으며 또래와 공감대를 형성했을 것이고, 혼자서가 아니라 동행자와 함께 길을 걸었을 것이다. 사실 그 자리에서 그 사람에게 도움을 주고 싶었다. 하지만 내가 그를 향해 뻗는 손이 그에게 도움이 될지, 아니면 나에게 위해가 될지 알 수 없어 겁이 났다. 결국은 여느 때처럼 도망치듯 피해버리고 말았다.
하지만 나는 그의 뒷모습을 잊지 못한다. 그가 그 험난한 거리에서 구제받는 날이 언젠가는 올까. 그때 그는 어디로 가고 있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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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지연/ 변호사·번역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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