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이 아름다운 것은 우리의 마음을 원시의 순수로 돌아가게 하는데 있다할 것이다. 마치 수정같은 맑은 물에 송어 뛰놀듯… 영혼을 선하고 깨끗하게 씻어 준다고나할까. 특히 시벨리우스의 음악이 주는 원시적 감흥은 가장 독보적이라고 할수 있다.
핀란드 특유 향토애가 느껴지면서 동시에 삶의 저쪽… 피안에서 들려오는 듯한 신비감이 전해진다고나할까, 시벨리우스(1865-1957)는 그의 출현에서부터 그가 살아갔던 생애, 교향곡 8번(을 불태워 버린) 미스테리까지 삶 자체가 마치 하나의 전설과 같았다.
핀란드 정부가 주는 연금을 받으면서 편하게 일생을 보냈지만 시벨리우스의 창작은 그리 편하게 이루어진 것은 아니었다. 고품격 예술을 지향했던 시벨리우스는 자신이 속했던 모더니즘(불협화음)의 공세 속에서도 고전 수법을 고수하며 조국 핀란드의 북극적 서정을 음악에 담아내는데 성공했는데, 단순히 서정적인 표현에 그치지 않고 내면의 극적인 요소를 함께 융합하여 대단히 아름다운 관현악 작품을 많이 지어냈다.
특히 그의 음악은 유럽보다는 미국에서 크게 인기를 끌어서 미국의 모든 교향악단이 앞을 다투어 연주했는데, 시벨리우스의 음악은 한때 세계 연주인들 사이에서 가장 사랑받는 작품 1위에 오르기도 하였다.
다만, 교향곡 7번을 마지막으로 무려 27년을 사는 동안 단 한 개의 교향곡도 탄생시키지 못한 것은 지금도 미스테리로서, 이것이야말로 완벽을 향한 피안의 결벽증… 시벨리우스의 예술정신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예라 할 수 있겠다.
음악의 경우처럼, 사람은 자신이 정말로 경험하지 못한 것은 표현할 수 없다. 감히 여기서‘피안’이라는 제목을 달고 글을 쓴다는 것 역시 사뭇 뒤통수가 가려운 일이지만 인생은 누구나 살아 있음이 無常이요, 절망이기에 피안을 노래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사바 (세계)의 저쪽… 결코 아무도 가 보지 않은 순백의 땅… 가고파도 갈 수 없는 곳, 만나고 싶어도 만날 수 없는… 이승이 비록 고해일지라도… 요란한 관념과 거짓 꿈, 나 아닌 것에 대한 매혹, 혼탁한 것에서 벗어나 행필정직… 맑은 정신으로 뚜벅뚜벅 길을 걷는다면, 그 길이 비록 알 수 없는 미지의 길이요, 나락의 끝일지라도 두려움없이 걸어 가는 순간순간이 바로 사바의 저쪽이요, 彼岸인지도 알 수 없는 일이다.
인생이라는 큰 장애… 그 허들을 넘기 위해 지름길만을 넘보던 시기… 온갖 갈래의 혼란한 선택의 길에 서서 한 우물을 파기보단 잔머리만을 굴리고 있을 때… 음악은 너무도 다른 세계를 보여주고 있었다.
저홀로 초연하고, 오직 우직하도록 한 길로 뻗은… 음악은 너무도 아름다운 무지개이자 피안… 절망이기도 했다. 그것은 또한 나의 길이 힘들고, 험난할 것임을 예감했기 때문이 아니라 결국은 (비뚤어진)배신의 상처 속에서… 꿈을 잃고 살아야함을 직감했기 때문이었는지도 모른다.
그러한 자신을 잊기 위해, 나는 정말 미치도록 음악을 들었었다. 심포니 홀의 구석진 자리에 앉아 멍하니 세계를 사색하기도 했고 그늘진 피안을 찾아 스테레오 가게를 찾아다니며 이런 저런 음악들을 구걸하듯 훔쳐듣고 다녔다.
어떤 가게에 들렸더니 최신 기기(器機)라며 시벨리우스의 교향곡(3번)을 틀어 주었다. 그 주인은 마치 ‘너 지금 이런 음악을 찾아 헤매는 것 아니냐’하는 듯 했다. 가난했던, 자신의 아픈 모습이 들킨 듯 싶어 서둘러 가게를 나왔지만 또 가난했기에 가능했던… 그 아련하게 슬픈, 피안의 뒤안길이여…피안의 대용품으로 권하고 싶은 음악이 시벨리우스의 심포니들이 아닐까싶다.
많은 곡을 남긴 것도 아니다. 모두 7개의 교향곡. 그러나 이것은 하이든 베토벤으로 이어지는 단순한 소나타식의 교향곡이 아니었다. 1악장이 4악장같고, 4악장이 1악장처럼… 시작도 끝도 없이 이어지는, 초겨울의 스잔함… 맑고 격정적인 음악에 세계는 도전받았는데, 그것은 긴 겨울을 참고, 인내한 영혼만이 낼 수 있었던 내공의 폭발… 그 신비스럽고 장엄한 화음(의 감동)때문이었다.
민족주의 음악으로서, 시벨리우스는 그의 대표작 ‘핀란디아’로 전세계인들의 자존감을 일깨워 주었지만 전세계인을 홀린 것은 뭐니뭐니해도 7개의 교향곡, …그 중 3, 7번 등은 결코 이 세상의 음악이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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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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