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교도소 복역 한인 60여명 보살펴…가족에게 사연 전해주려 방한
▶ “자식 교도소 보낸 부모들 연락주시길…힘닿는 데까지 도울 것”
‘미주한인 재소자들의 어머니’로 불리는 정미은씨.
"미국 교도소에 자식을 둔 한국의 부모님들은 제게 연락하세요."
미국 캘리포니아에 사는 정미은(68) 씨는 남편 임정수(69) 씨와 함께 현지 교도소를 찾아다니며 한인 재소자들을 위로하고 아픔을 함께한다. 1999년 사비를 털어 '아둘람 재소자 선교회'를 설립하고는 17년째 이런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억울한 재소자의 무죄 증명을 위해 여기저기 뛰어다니고, 석방을 위한 서명운동도 전개한다.
캘리포니아 한인들 사이에서 정 씨는 '미주 한인 재소자들의 어머니'로 불린다. 한국 정부도 그의 숨은 공로를 인정해 2011년 대통령 표창을 수여했다.
정 씨는 매년 한 차례씩 한국을 찾는다. 일가친척 한 명 없는 미국 교도소에 자식을 보내놓고 가슴을 쓸어내리며 걱정하는 부모를 찾아가 "잘 있으니 걱정하지 말라"는 말 한마디를 전하기 위해서다. 올해도 지난 12일 어김없이 방한했다.
대전에 사는 한 재소자의 부모를 만나 최근 아들이 다른 교도소로 이송한 사실과 대신 면회하고 온 이야기, 건강상태 등 안부를 전달했다. 1996년 샌디에이고에서 발생한 쌍둥이 자매 살인미수 사건의 범인으로 지목돼 26년형(2018년 만기)을 선고받고 교도소에 복역 중인 지나 한의 가족도 만나 근황을 전했다.
미국에 있다가 한국으로 이송돼 복역하다 모범수로 출소한 친구의 얼굴도 보고 싶었지만, 전화 음성만 들었다. 새 삶을 살고 있는데 자신을 만나면 안 좋은 과거를 떠올릴 것 같다는 생각에서다.
고국을 찾아 재소자 가족들을 위로하고, 눈물을 닦아준 정 씨는 출국에 앞서 27일 기자에게 부탁하고 싶은 말이 있다며 만나자고 전화를 걸어왔다. 서울 명동의 한 호텔 커피숍에서 만난 그는 먼저 휴대폰에 저장한 재소자들의 사진, 가족들의 사진을 보여주며 "제가 이 사진을 보여주면서 가족의 끈을 이어주고 있다"며 말을 꺼냈다.
"공부 열심히 해서 성공하라고 없는 돈 탈탈 털어 미국에 자식을 유학 보냈는데 살인죄를 저질러 종신형을 받고 교도소에 복역하고 있다고 생각해 보세요. 얼마나 가슴이 아프겠어요. 그런데 가는 길이 멀어 면회도 못 하니 억장이 무너질 겁니다. 미국에 연고도 없으니 대신 보낼 사람도 없고…. 그래서 제가 면회를 하는 겁니다. 걱정만 하지 말고 이젠 제게 연락해주세요. 제가 연결고리가 돼 드릴게요."
면회를 대신해 줄 테니 방법을 몰랐던 부모가 있다면 꼭 연락해달라는 부탁이었다. 미국에 직접 면회를 오면 숙소를 제공하고, 교도소 가는 길까지 기꺼이 동행하겠다는 약속도 했다.
정 시는 자비를 들여 재소자들을 찾아다니는 데 대해 "함께 기도하고 아픔을 나누면 죄는 미워도 사람은 미워하지 않게 된다"는 알 듯 말 듯한 이유를 들었다.
부산에서 태어나 성장한 정 씨는 남편과 씨와 인테리어업을 하다 1남 1녀의 자식 교육을 위해 1995년 8월 도미했다. 로스앤젤레스에 정착한 그는 봉제공장에 다니며 자식 뒷바라지를 했다. 그러면서 틈날 때 마다 남편과 함께 LA 카운티 구치소에 갇힌 한인 수감자들을 찾아다니며 이야기를 들어주고 용기를 주었다.
그는 "부산에서도 남편과 함께 교도소에 있는 재소자들을 방문해 새 삶을 살도록 안내하는 봉사활동을 했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미국에 가서도 구치소를 찾게 됐다"고 설명했다.
억울한 옥살이를 하는 한인의 이야기를 하다 눈물을 참으며 인터뷰에 응하고 있다.
정 씨는 미국에서는 한국처럼 봉사 차원에서 재소자들을 보살필 수가 없다는 것을 알고서 1997년 신학 공부를 시작했고, 2년 뒤 선교 자격을 취득했다. 그리고 다른 선교회가 후원금을 받아 설립한 것과는 달리 순수 자비를 들여 '아둘람 재소자 선교회'를 열었다. 아둘람은 '은신처', '피난처'라는 뜻이다.
그는 1999∼2011년 월∼목요일은 구치소, 금∼토요일은 교도소를 찾아다녔다. 10시간 넘게 운전하면서 캘리포니아주 끝까지 찾아갔고, 오리건주까지 넘나들기도 했다. 길가에 차를 차를 세워놓고 노숙을 하기도 했다.
"복있는 사람은 악인의 꾀를 쫓지 아니하며, 죄인의 길에 서지 아니하며…. 재소자들을 만나면 성경의 시편 1장 1절을 들려줍니다. 그리고 잘 지내는지 안부를 묻고 바깥세상의 이야기를 전하죠. 부모님들이 여전히 사랑하고 있고, 걱정한다는 말도 대신 전달합니다. 누구 말도 들으려 하지 않는 그들은 처음에는 반감을 갖다가도 시간이 흐르면 서서히 제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고 도움을 청합니다."
LA에서 살던 정 씨는 5년 전 필란으로 이주해 여주와 뽕잎을 생산하는 농장을 운영하고 있다. 이사한 후부터는 구치소가 멀어 교도소만 다니고 있다. 토요일마다 남편과 최하 26년형을 받은 60여 명의 재소자를 만나기 위해 곳곳에 있는 감옥에 간다. 그는 출소한 20여 명을 포함해 17년 동안 80여 명을 돌봤다.
"감옥에 갇힌 그들에게는 저마다 사연이 있어요. 살인죄, 성폭행죄가 가장 많아요. 그런데 단지 살인자의 친구라는 이유로 억울하게 잡혀 50년 형을 받은 한인도 있어요. 이 친구는 연고가 없어 면회 오는 이도 없죠. 그들은 저를 기다립니다. 기다리는 그 눈동자를 떠올리면 게을리할 수가 없죠."
감옥에 들어간 사연도 다양하다. 친구가 총을 쏴서 사람을 죽였는데 그의 친구라는 이유로 잡혀 50년 형을 받은 억울한 경우가 있는가 하면 미국 사회에서 적응을 못하고 갱단에 들어가 살인죄를 범한 뒤 종신형을 받은 한국 출신의 혼혈인도 있다. 돈을 받으러 남의 집에 심부름을 갔다가 무단침입자로 잡혀 18년 형을 받은 어이없는 사례도 있다고 한다.
정 씨는 재소자들을 돌보는 생활에서 많은 보람을 느낀다. 아내와 싸워서 7년형을 받고 미국에 수감됐던 한 재소자가 출소한 후 귀국해 사업에서 성공한 사연을 들었을 때가 특히 그랬다. 지난해 방한 당시 그를 만나 한동안 부둥켜안고 눈물을 흘렸다고털어놨다.
"재소자들이 변화하는 모습을 보는 게 가장 감사한 일이죠. 제가 힘닿을 때까지 교도소 찾아가는 일을 계속할 것입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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