찰스 린드버그는 혼자서 처음 대서양을 횡단 비행하는데 성공한 인물이다. 그러나 그를 유명하게 만든 것은 이것만이 아니다. 1932년에는 그의 어린 아들이 납치된 후 살해된 채 발견돼 미국을 충격에 빠뜨렸다.
그는 또 1939년 독일이 폴란드를 침공하면서 2차 세계 대전이 벌어진 뒤 미국 참전에 반대한 ‘미국 먼저’(America First) 운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한 것으로도 잘 알려져 있다. 만약 ‘미국 먼저’가 나치 독일과 일본 제국주의의 본질을 제대로 읽었더라면 유럽은 나치의 참화에서 좀 더 일찍 벗어나고 미국은 진주만 기습이라는 치욕도 면할 수 있었을지 모른다.
그 후 70여 년이 지난 지금 다시 ‘미국 먼저’를 기치로 내건 도널드 트럼프가 전당대회를 거쳐 지난 주 공화당의 대선 후보로 확정됐다. 그는 대통령이 되면 일방적으로 나토와 한미 상호 방위조약과 같은 우방과의 동맹을 깨고 북미 자유무역 협정(NAFTA)과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을 수정하겠다며 미국 일방주의를 천명하고 나섰다.
미국이 유럽과 한국과 일본을 비롯한 아시아 각국과 군사 동맹을 맺고 무역협정을 체결한 것은 미국이 이타주의 국가이기 때문이 아니라 이들이 미국의 안보와 경제적 이익에 긴요하기 때문이다. 공화 민주당을 막론하고 트럼프를 제외한 미 주요 정치인 대부분은 이 사실을 잘 알고 있다. 트럼프가 ‘미국 먼저’를 구호로 내걸었다는 사실 자체가 그가 오리지널 ‘미국 먼저’가 미국 역사에 끼친 해악에 대해 무지함을 말해준다.
트럼프가 무지한 것은 이것만이 아니다. 그는 ‘모든 인간은 평등하게 창조되었으며 창조주로부터 생명과 자유, 행복 추구권을 포함한 양도 불가능한 권리를 창조주로부터 부여받았다’는 미국의 건국이념과 이를 실현하기 위해 제정된 연방 헌법에 대해서도 아는 바가 없다.
그는 자신을 비판하는 언론에 재갈을 물리고 여성과 장애인, 이민자를 차별하고 비하해도 상관없으며 회교도의 입국을 전면 금지하고 멕시코와의 국경에 장벽을 세우고 그 비용을 멕시코에 물리는 것도 가능하다고 믿는 인물이다.
그는 미국을 다시 위대하게 만들겠다고 큰 소리 치고 있으나 그 구체적인 방책으로 내놓은 것은 아무 것도 없거나 허황되기 짝이 없는 것들이다. 만에 하나 그가 공언한 정책들이 현실로 나타난다면 미국은 위대하게 되는 것이 아니라 망하는 길로 접어들 것이다.
올해는 우리가 살고 있는 세계를 떠받치고 있는 두 개의 축인 자유 민주주의를 천명한 ‘독립 선언서’와 자유 시장 경제를 주창한 ‘국부론’이 탄생한지 240년이 되는 해다. 그러나 이들이 태어난 1776년에는 ‘로마에 관한 가장 위대한 역사서’로 꼽히는 에드워드 기번의 ‘로마 제국 쇠망사’도 출간됐다.
젊은 시절 로마를 방문한 기번은 그 유적들 사이에 앉아 한 때 세계를 지배하던 로마가 어떻게 망하게 됐는지에 대한 이유를 파헤치기로 결심하고 그 작업에 평생을 바쳤으며 그 결과 나온 것이 ‘쇠망사’다.
로마가 망한 원인은 여럿이지만 그 중 가장 중요한 것으로 그는 정신적 타락을 들었다. 로마가 유럽과 아시아, 북아프리카의 패자가 되면서 흘러들어온 막대한 재화가 근검절약하며 공익을 위해 스스로를 희생할 줄 알았던 로마인의 정신을 병들게 했으며 부자와 귀족은 사치와 향락에 빠져 평민과 노예를 착취하기에 바빴고 이로 인해 국민들은 희망을 잃고 나라를 위해 싸우기 보다는 내세의 행복을 꿈꾸는 체념주의에 물들고 말았다는 것이다.
초창기 한참 뻗어나던 시절 로마는 카르타고 한니발의 공격으로 연전연패하며 수 만 명의 군사를 잃지만 이에 굴하지 않고 다시 병사를 모아 최후의 승자가 된다. 그러나 그 후 수 백 년이 지나 망조가 든 후에는 게르만족과 싸움다운 싸움도 해보지 못하고 백기 투항하는 것으로 1,000년 역사에 종지부를 찍는다.
트럼프가 대통령이 될 가능성은 낮지만 트럼프 같은 무지몽매한 빈 깡통이 미 주요 정당의 하나인 공화당의 대선 후보가 됐다는 사실은 미국이 정신적으로 몹시 병들어 있음을 보여준다. 기번은 “로마가 망할 수 있다면 망하지 않을 나라는 없다”는 말을 남겼다. 미국과 같이 크고 강한 나라를 망하게 할 수 있는 것은 미국인들 밖에 없다. 미국인들이 빈 깡통이 자신들을 구해줄 것이란 미망에서 하루 속히 깨어나길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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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경훈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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