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번 글에 듀가드라는, 어릴 때 납치되어 19년의 세월을 남의 뒷마당 텐트에서 두 아이를 낳고 살았던 여인의 이야기를 잠깐 썼다. 그런데 빵을 사러 가게에 갔다가 계산대옆에 놓인 잡지 표지에서 환히 웃는, 정말 예쁜 그 여자를 봤다.
소식을 알수없어 늘 마음 한구석에서 서성이던 피붙이를 만난듯 너무 반가워 얼른 집어 계산대에 올려 놓았다. 시골 어딘가에 자신의 집이 마련되고 100 파운드나 되는 개 한 마리, 고양이 세 마리, 그리고 말 여섯 마리와 살고 있단다. 큰 딸은 대학에 다니고 작은 애는 곧 대학엘 간단다.
늘 그 여자의 케이스가 떠오를 때마다 어떻게 다시 재활의 길을 가나, 혹 흘러 흘러 사회의 제일 밑바닥까지 밀쳐지는 일은 없을까 염려했는데 남의 일인데도 얼마나 안심이 되고 기쁜지 모르겠다. 구출 후 곧 상담사와 요리사가 연계 되었다.
감금되어 있던 19년동안 그녀에게 제공된 음식이란 봉지에 담긴 햄버거였단다. 그런데 그렇게 많은 요리 재료와 조리법이 있는 걸 몰랐다고 경이로운 발견이었다 한다. 깊은 시름속에 있는 이, 술이든 마약이든 모든 중독에 쩔여 쓰러진 사람에게 제일 먼저 제공되어야 하는 게 좋은 음식과 오래 잠잘수 있는 편한 잠자리라고 한다.
모든 정서적 안정에 육체적 안위는 필수적. 그녀도 지속적인 상담 치료를 받으면서 요리를 하고 정원일을 하고 개, 고양이가 주는 조건없는 사랑과 믿음을 확인하며 말 타고 달리며 행복하고 건강한 생활을 하고 있다.
끝없는 신뢰를 주는 동물과의 교류는 재활에 큰 도움이 된다. 그녀의 두 번째 책이 나왔다. 그녀는 지금 자신같은 어려움을 겪어낸 사람들을 연계해주며 서로 힘이 되어주는 단체를 만들어 운영하고 있다.
이런 사연에 접할 때마다 인간이 얼마나 경이로운 존재인가를 다시 느낀다. 그리고 그런 도움을 줄수 있는 사회에 있다는 게 정말 고맙다. 처음 그녀가 집으로 돌아왔을 때 그녀는 밖에 나가는 것도 어려웠단다.
오랜 세월 감금되어 산 이는 문을 열어줘도 나갈 엄두를 못한다. 인간이 얼마나 길들여지는 존재인건지. 만약 그런 상태에서 구조되었다 해도 옆에서 부축하고 함께 걸으며 갈 길을 보여주는 도움없이 그저 방 한칸을 내주고 내버려둔다면. 그 뿐 아니라 뒤에서 수근대고 손가락질까지 한다면. 사람 하나가 망가지는 건 숨 한번 들이쉬고 내쉬는 것 처럼 쉬운 일 같다.
그런가 하면 극한의 상황에 있어도 인간에게는 고난을 넘어설 수 있는 숭고함이 있다. 더우기 인간과 인간이 모여 만들어내는 에너지에는 숫자로 답이 되어질 수 없는 신비한 힘이 있다. 실의에 빠져 삶을 포기하고 싶은 순간 진심이 느껴지는 이가 건네는 물 한 잔에 다시 일어설 수 있는 힘이 있는가 하면 밑도 끝도 없는 타인의 악의에 다리가 접혀 달리던 길에서 지푸라기처럼 주저 앉기도 한다.
때로는 쓰러진 이를 발판삼아 밟고 가는 이들도 있는 판에. 이즈음 세계 곳곳에서 엄청난 폭력이 난무하고 있다. 뉴스 듣는 게 무섭다. 하루 건너 수 십명, 수 백명이 이유 없이 죽어나가는 폭력, 이걸 어떻게 이해하고 해석해야 할까.
이 사회에서 투표권 하나 외엔 아무 힘이 없는 한 일원으로 우리가 할수 있는 일이란 게 대체 있기나 한걸까? 왜 이렇게 서로를 미워해야 하나. 서로를 죽이고나선 무얼 얻는 걸까. 어디서 들은 이야기다.
이즘처럼 힘든 사회상에서 각자는 돈이 안생기는 일에 매진해야 한단다. 책을 읽거나 텃밭을 가꾸고 걷거나 뛰고 십자수를 놓고 음악을 듣고 그림을 그리며 애들과 뛰어 놀고 개와 뒹굴고 요리를 해야 한단다.
그 말을 듣는 순간 가슴에 청랑한 바람이 한줄기 스쳐가는 듯 했다. 이즈음은 유튜브를 통해 좋은 강의, 좋은 음악이 널려 있다.
앞으로 앞으로, 더 많이 더 높이, 를 잠깐 접어두고 꼴찌하기를 스스로 택한다면. 젊은 이들이 최선을 다해 자신의 일을 하는 걸 뭐라는 건 아니다.
다만 내 삶이 어디를 바라보며 가고 있는건지 내가 나 스스로의 삶을 사는 건지 아니면 남의 눈에 보이기 위해 살고 있는 건 아닌지 점검해 볼 필요는 있다. 한 번 뿐인 우리 삶을 남의 시선 때문에 들어 먹지는 말아야지. 나의 경쟁자는 내 옆의 사람이 아니라 내 자신이다.
<
최 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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