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 쏟아지는 AP통신 사진 가운데 지난주 흐뭇한 게 하나 눈에 띄었다. 몬태나주의 동물보호센터에서 개 한 마리가 여직원 뺨에 뽀뽀하는 장면이었다. 그딴 게 뭐가 흐뭇하냐며 핀잔 할 분이 있겠지만, 그게 아니다. 그 누렁이는 불과 두 달 전까지도 한국에서 보신탕이 될 운명이었다. 사지에서 개들의 천국인 미국으로 망명한 난민 아닌 ‘난견(難犬)’이었다.
혼혈 진돗개인 이 누렁이의 고향은 서울 근교 일산의 양계장 닮은 ‘양견장’이다. 운신 못할 만큼 좁은 철장에 갇혀 굶주리며 살다가 올여름 삼복에 맞춰 도살장에 끌려갈 처지였다. 철장 주위엔 음식찌끼와 배설물이 널려 악취가 풍겼고 파리가 들끓었다. 이 참상을 우연히 본 마음씨 착한 한 여성이 사비 500여만원을 들여 사육장 개 20마리를 모두 매입했다.
그녀는 보신탕 개의 입양이 한국에선 어려워 국제동물보호협회(HSI)에 도움을 청했다. HSI는 이들 개를 캐나다의 ‘한국 개 구조협회’에 보내 11마리를 입양시켰고, AP사진의 누렁이를 포함한 나머지 9마리는 지난주 몬태나주 헬레나의 ‘루이스 & 클락 동물보호협회’로 옮겼다. 그동안 잘 먹어 원기를 회복한 개들은 어제부터 주민 가정에 입양되기 시작했다.
미국에 망명한 한국 난견들은 그 전에도 있었다. HSI는 지난 3월 ‘미국 동물 잔혹행위 예방협회(ASPCA)’ 샌프란시스코 지부에 57마리를 수송해왔다. 이들 중 15마리는 샌프란시스코에서 입양됐고 나머지는 다른 3개 지역 ASPCA 지부로 분산됐다. 장장 150년의 역사를 자랑하는 ASPCA는 한국의 보신탕 개뿐 아니라 투견, 유기견 등도 구조해 입양시킨다.
지난 5월에도 한국 개 260마리가 미국에 망명했다. HSI가 작년 12월 원주의 한 개사육장을 영구 폐쇄하기로 업주와 합의하고 몽땅 매입한 개들이었다. 이들이 도착하자 뉴욕타임스와 USA투데이 등 주요 신문들이 대서특필했다. HSI는 그동안 건당 6만달러까지 들여 한국의 개 사육장 5개를 폐쇄했다며 앞으로도 계속 보신탕 개를 구조하겠다고 다짐했다.
미국인들이 ‘개고기 농장(dog meat farm)’으로 부르는 개 사육장은 한국 전역에 1만7,000여개가 있고, 일부는 1,000마리 넘게 기른다고 타임스는 보도했다. 연간 200여만 마리가 도살되며 그중 60~80%는 삼복이 낀 여름철 두 달 중 보신탕이 된다고 했다. 대부분 감전사되지만 ‘고기 맛을 좋게 하려고’ 목매달아 죽이거나 몽둥이로 때려죽이기도 한단다.
미국의 동물보호단체들은 한국의 개고기 농장을 입에 거품을 물고 비난한다. 세계 14번째 경제대국이며 한류문화를 자랑하는 한국인들이 개를 매일 평균 7,000마리나 먹어치우는 건 아이러니란다. 이들은 개고기를 먹는 아시아 국가 중에서도 유일하게 한국에만 산업화된 개고기 농장이 있고, 그것도 모자라 총 수요량의 20%을 중국에서 수입한다며 개탄한다.
특히 동물보호 웹사이트 ‘change.org’는 한국정부가 개고기 농장을 영구적으로 불법화하지 않으면 삼성, LG, 현대, 기아 등 한국기업 제품의 불매운동은 물론 한국관광 보이콧 캠페인도 벌이겠다고 위협한다. 이 웹사이트는 한국의 개고기 산업이 연간 20억달러 규모지만 그 때문에 국제사회에서 잃는 국가적 품격과 위상의 손해는 그보다 훨씬 크다고 지적했다.
하지만 이들이 ‘짖어대도’ 한국인들은 삼국시대부터 이어져오는 개고기 식성을 단칼에 끊지 못한다. 그 식성은 한국이 잘살게 되면서 서서히 변하고 있다. 개를 반려동물로 기르는 젊은이들이 급속히 늘어나고 있고, 일부 개는 미국 개들보다도 호강한다. 지난 총선 때 한 군소정당은 동물권리 보호를 공약으로 내놓기까지 했다. 모든 문제는 시간이 해결한다.
지난 주말이 초복이었고 곧 중복, 그리고 20여일 후면 말복이다. 그간 많은 개가 도살되겠지만 운 좋게 미국에 망명하는 개들도 있을 터이다. 머지않아 한국 개들도 한인들처럼 미국 50개 주 곳곳에 퍼질 태세다. AP사진의 누렁이가 벌써 미국의 뽀뽀문화를 익힌 것 같아 흐뭇했다. 이들에겐 언어장벽의 염려가 없다. ‘멍멍’하고 짖어도 미국인들은 ‘와우와우’라고 알아듣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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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여춘 시애틀지사 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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