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16년은 서양 문학사에서 기념비적인 해다. 셰익스피어와 세르반테스가 같은 해 세상을 떴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 해 동양에서도 역사적인 사건이 벌어졌다. 여진족의 족장인 누르하치가 만주를 통일하고 후금의 칸 자리에 올랐다. 그의 자식인 홍타이지는 훗날 나라 이름을 청으로 고치고 이 해를 건국년으로 삼았다.
이웃 일본에게도 1616년은 뜻 깊은 해다. 100년간의 내란을 종식시키고 1868년 메이지 유신 때까지260년의 평화를 가져다 준 도쿠가와 이에야스가 이 해 사망했다. 어려서 부모 품을 떠나 이곳 저곳에서 인질로 어린 시절을 보내 ‘미가와의고아’라는 별명을 갖고 있던 그가 쟁쟁한 영웅호걸 틈 속에서 온갖 역경을 이겨내고 일본을 통일하는 과정은 야마오카 쇼하치의 대하소설‘ 도쿠가와 이에야스’를 통해 잘 알려졌듯 장엄한 한 편의 드라마다.
1543년 일본 중부 미가와의 오카자키 성에서 힘없는 성주 마쓰다이라 히로타다와 정략 결혼한 오다이 사이의 유일한 자식으로 태어난 그는 두 살 때 어머니가 정략 이혼 당하고 다섯 살 때 이마가와 가문에 인질로 끌려가는 도중 오다 가문에 납치된다. 설상가상으로 아버지마저 그가 6살 때 부하에게 암살되며 이번에는 이마가와 가문으로 넘겨져 인질로 살게 된다.
1560년 오다 가문의 리더가 된 오다 노부나가가 오다 영토를 침략한 이마가와 대군을 기습공격으로 무너뜨리면서 오다와 도쿠가와의 동맹은 시작된다. 이에야스는 노부나가로부터 전략과 전술 등 많은 것을 배우지만 그 중에서도 특히 포르투갈 인들로부터 받은 총포의 중요성을 알게 된다. 전국 시대의 강자이자 도쿠가와 가문에 치명적인 패배를 안겨준 다케다 신겐이 죽고 그의 뒤를 이어받은 자식 가쓰요리와 오다-도쿠가와 연합군이 맞붙은 나가시노 전투는 총포의 위력이 유감없이 발휘된 기념비적인 사건으로 역사에 기록돼 있다. 이 전투에서의 패배로 다케다 가문은 몰락의 길로 접어든다.
1582년 노부나가가 부하에게 암살되자 일본 천하는 노부나가의 부관이었던 도요토미 히데요시와 이에야스로 양분된다. 이에야스의 세력을 경계한 히데요시는 도쿠가와 가문을 본거지인 미가와에서 몰아내고 지금은 일본의 수도지만 당시로서는 변방의 오지였던 에도로 보내는데 이것이 나중에 전화위복의 계기가 된다.
지금 일본 천황이 살고 있는 황거는 원래 도쿠가와의 성채였다. 그러던 것이 메이지 유신으로 도쿠가와 가문이 몰락하면서 황실 차지가 된 것이다. 이 궁궐터의 넓이는 자금성의 다섯 배에 달하며 80년대 말 부동산 버블이 극심했을 때 궁궐 부동산 가치가 가주 전체와 맞먹기도 했다.
일본 통일을 거의 완수한 히데요시가 그 여세를 몰아 조선을 침공할 때 이에야스는 멀리 떨어져 있던 덕분에 병력 차출을 모면하고 세력을 기를 수 있었다. 1598년 히데요시가 죽고 일본군이 조선에서 철수했을 때 히데요시 세력은 약했고 이에야스는 강했다. 이 양대 세력의 균형은 1600년 세키가하라 벌판에서 벌어진 전투에서 이에야스 군이 압승하면서 깨지고이 때부터 이에야스는 사실상 일본의 지배자가 된다.
그의 사후 260년 동안 일본에 평화가 계속된 것은 영주들의 가족을 에도에 머물게 하고 영주들도 일정기간 거주케 하는 제도적 장치도 중요한 역할을 했지만 이에야스 자신의 몸가짐과 자손들에 대한 엄격한 가르침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
이에야스는 우선 타고난 검소함으로 모범을 보였다. 일본을 통일하기 전에는 밥상에 반찬을 다섯 개 이상 올리지 못하게 했는데 통일 후에는 가짓수를 셋으로 줄였다고 한다.
그러나 이보다 더 이에야스의 특징을 잘 보여주는 것은 “새장의 새를 울게 하기 위해 오 다는 협박을 하고 도요토미는 달래지만 도쿠가와는 기다린다”는 속담이다.
“참을 줄 아는 자가 강한 자”라는 말을 남긴 이에야스는 참을 줄 아는 것이야말로 자신의 가장 큰 장점이자 성공의 비결로 여기고 자식들에게도 이를 강조했다. 그는 또 죽기 전“ 인생은 무거운 짐을 지고 먼 길을 가는 것과 같다. 불완전과 불편함은 모든 인간의 운명이다”라는 말을 통해 참을성의 중요성을 다시 한 번 강조했다.
지난달은 도쿠가와 이에야스가 죽은 지 400년이 되는 달이다. 조선의적이었지만 일본이 낳은 가장 위대했던 인물의 명복을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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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경훈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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