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ABT 수석무용수 서희, 서울서 YAGP 예선 ‘마스터클래스’ 개최
▶ YAGP 대상 전준혁 ‘해외무용스타 초청공연’ 무대 올라
서희-전준혁, 세계가 인정한 무용수 (서울=연합뉴스) 류효림 기자 = 미국 아메리칸 발레시어터(ABT) 수석무용수로 활동하고 있는 발레리나 서희(오른쪽)와 ‘유스 아메리카 그랑프리(Youth America Grand Prix, YAGP)’ 올해 파이널에서 시니어 부문 대상을 받은 발레리노 전준혁이 18일(한국시간) 오후 서울 광진구 능동 유니버설발레단에서 연합뉴스와 인터뷰에 앞서 함께 포즈를 취하고 있다. 2016.7.18
"발레를 할수록 그 아름다움에 벅찬 감동을 느껴요."(서희)
"발레를 할 때 제가 항상 웃고 있대요. 연습이 즐거워요."(전준혁)
발레 이야기에 금세 어색함이 사라졌다. 무용수의 고충이나 진로를 이야기할 때는 진지하게 공감하다가 '그만두고 싶을 때도 많다'는 이야기에는 맞장구를 치며 웃음꽃을 피웠다.
미국 아메리칸 발레시어터(ABT)에서 활동중인 발레리나 서희(30)와 영국 로열발레학교에서 수학하는 발레리노 전준혁(18)을 18일(한국시간) 오후 광진구 유니버설아트센터에서 함께 만났다.
서희와 전준혁 사이에는 대서양만큼의 거리와 10여년 이상의 나이·경력차가 있지만 공감대를 형성할만한 연결고리가 많다.
둘 다 선화예중을 다니다 각각 미국과 영국에서 유학하며 일찍부터 세계 무대를 꿈꿨고, 무엇보다 세계 유수 발레단을 향한 등용문으로 꼽히는 '유스 아메리카 그랑프리'(YAGP) 전체 대상(그랑프리)을 받았다는 공통점이 있다.
YAGP는 예비 발레 무용수 발굴에 초점을 맞춘 국제 발레 콩쿠르로 미국 주요 도시와 호주, 일본, 프랑스 등의 예선을 거쳐 뉴욕 결선(파이널)에서 최종 입상자를 가린다.
주니어(8-14세)와 시니어(15-19세) 부문으로 나뉘어 진행되는 YAGP에서 시니어 파이널 그랑프리를 받은 한국 무용수는 2003년 서희가 최초다. 최근 '브누아 드 라 당스'를 수상한 마린스키발레단 수석무용수 김기민이 2012년에, 지난 4월에 전준혁이 뒤이어 같은 상을 거머쥐었다.
한국 발레계에 의미있는 족적을 만들어가는 이들이지만 제대로 마주한 것은 이날이 처음이었다. 뉴욕 파이널 당시 서희가 발표자로 나서 전준혁 등 파이널리스트들의 출연순서를 호명하기도 했지만 스치듯 인사를 나눈 것이 전부였다.
선배인 서희가 "파이널 때 공연이 정말 좋았다. 한국 사람이 대상을 받아서 기쁘고 자랑스러운 것도 있지만 잘 배운 무용수라는 생각에 더 좋았다"면서 먼저 덕담을 건넸다.
전준혁은 "모교인 선화예중에 서희 선배의 사진이 크게 걸려있다. 그걸 보고 '나도 저렇게 기회를 잡아서 큰 무대로 가겠다'는 꿈을 키웠다"며 "먼저 길을 터주신 덕에 편하게 따라가는 것 같다"고 화답했다.
발레리나 서희 (서울=연합뉴스) 류효림 기자 = 미국 아메리칸 발레시어터(ABT) 수석무용수로 활동하고 있는 발레리나 서희가 18일(한국시간) 오후 서울 광진구 능동 유니버설발레단에서 연합뉴스와 인터뷰에 앞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2016.7.18
둘은 각각 오프 시즌과 여름방학에 맞춰 한국에서 의미 있는 행사를 준비하고 있다.
서희는 YAGP 한국 지역예선에 해당하는 'YAGP 한국 마스터클라스'(YAGP Korea)를 처음으로 열고, 전준혁은 해외에서 활동하는 한국인 무용수들의 내한 무대인 '한국을 빛내는 해외무용스타 초청공연'에 유망주 자격으로 선다.
특히 서희는 한국의 후배들에게 해외 진출 기회를 넓혀주기 위해 자신의 이름을 건 재단을 만드는 등 백방으로 노력한 끝에 'YAGP 코리아'를 유치했다. 덕분에 이전까지 YAGP에 참가하려면 해외로 가야 했던 국내 무용수들은 올해부터는 한국에서 예선을 치를 수 있게 됐다.
서희는 ABT의 빡빡한 공연일정을 쪼개가며 YAGP에 힘을 쏟았고 올해 휴식기도 'YAGP 코리아'에 다 바치게 됐지만 "그동안 받은 걸 한국의 후배들에게 돌려주고 싶다는 생각을 늘 했는데 꿈을 이루게 됐다"며 흡족해했다.
전준혁은 "한국 학생들이 본선에 많이 올라가고 성적도 좋은데도 그동안 국내에서 예선이 열리지 않는 것이 의아했다"며 "올해부터는 더 많은 학생들이 자신을 시험해볼 기회를 얻게 돼 뜻깊다"고 말했다.
전준혁은 '해외무용스타 초청공연'에서 박선미(한국예술종합학교 예비학교)와 함께 '지젤'의 파드되를 준비하고 있다.
그는 "YAGP 파이널때 선보인 솔로 작품을 해보라는 권유도 받았지만 안 해본 것에 도전해보고 싶었다. 발전하려면 그런 노력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다"고 설명했다. 그러자 옆에서 서희가 가만히 고개를 끄덕이며 공감을 표시했다.앞서 길을 개척한 선배와 뒤따라가며 큰 꿈을 꾸는 후배의 대화는 무용수로서의 현재와 미래에 자연스레 초점이 맞춰졌다.
전준혁은 "ABT의 입단 제의를 받았지만 학교 졸업까지 1년이 남아있어 정중히 거절했다"며 "영국 로열발레단에 들어가고 싶지만 졸업 후 ABT의 정식 테스트를 받아보고 싶기도 하다. 일단 유럽을 중심으로 여러 진로를 탐색해보겠다"고 말했다.
이에 서희는 "맞다. 가능성이 열려있는데 굳이 진로를 고정할 필요가 없다. 나도 ABT의 입단 제안을 곧바로 받아들이지 않고 유럽 유학을 거쳤다"며 "무용수에게 가장 중요한 시기인 만큼 무엇을 원하는지 스스로 질문을 많이 해보라"고 조언했다.
명실상부 ABT의 간판스타로 자리 잡은 서희의 발레단 생활은 전준혁에게 자연스레 자극제가 됐다.
지난해 줄리 켄트 등 스타 무용수들이 은퇴한 뒤 ABT에서 서열 3위가 된 서희는 주연으로 서지 않는 작품이 드물 정도로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다. 지난 주말 한국에 오기 직전까지 '로미오와 줄리엣', '잠자는 숲속의 미녀' 등을 공연했고 'YAGP 코리아' 이후 일본과 미국 로스앤젤레스, 브라질 투어를 거쳐 새 시즌에 들어가면 11월까지 숨 가쁘게 달린다.
서희는 "켄트 등이 얼마나 대단한 사람이었는지 새삼 느꼈다. 그들의 리허설에서 많은 것을 배웠는데 이제 내가 그걸 보여주고 ABT의 수준을 입증해야 하는 입장이라 무섭기도 하다"며 "그래도 발레단이 나를 필요로 한다는 점에서는 좋다"고 했다.
인턴단원 시절 기약 없는 출연 기회를 기다리며 끊임없이 연습했다는 서희의 이야기를 귀담아듣던 전준혁은 "졸업 후가 불안하기도 했는데 선배 이야기를 들으니 어떻게 이겨나갈지 그림이 그려지는 듯하다"며 고마워했다.
서희-전준혁, 세계가 인정한 무용수
이들은 발레에 대한 애증에서도 공감대를 이뤘다. 하기 싫고 그만두고 싶던 적이 숱하게 많았지만 결국은 발레로 돌아왔다고 했다.
서희는 "어릴 때 힘들었던 것이 지금은 잘 기억나지 않는 걸 보면 그만둘 정도는 아니었나보다"며 "발레를 할수록 그 아름다움에 벅찬 감동을 느껴 어떤 때는 신성한 종교처럼 느껴지기도 한다"고 말했다.
그는 "발레라는 아름다운 예술을 더럽히지 않고 지키는 것이 내가 할 일 같다"며 "관객들이 나를 '아름다움을 경험하게 해준 무용수'로 기억해줬으면 좋겠다"고 덧붙였다.
전준혁은 로열발레학교 입학 초기의 힘든 시기를 거치고 발레를 즐기고 있다고 했다.
그는 "로열발레학교의 첫 한국 학생이다보니 기댈 데가 없었는데 이제는 친구도 생기고 괜찮다. 최근에는 발레할 때 내가 늘 웃고 있다고 하더라"며 "연습 끝나고는 힘들어 인상을 써도 연습하기 전이나 하는 중에는 기분이 좋고 재미있어 웃음이 절로 나온다"고 미소지었다.
전준혁은 "모든 사람이 다 아는 스타 무용수가 되고 싶지는 않다. 내 공연에 만족하고 그걸 알아주는 팬이 있는, 그리고 그 팬들과 자연스럽게 소통할 수 있는 편안한 무용수가 되고 싶다"고 말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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