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란의 1960년대로 돌아간 듯 미 도심 곳곳에서 연달아 총성이 울렸다. 하루건너 루이지애나와 미네소타에서 백인 경찰의 총격에 흑인 남성들이 살해당했고 다음날엔 5명의 댈러스 경찰관들이 흑인 저격수의 총탄에 목숨을 잃었다. 이렇게 미 전국을 충격과 공포에 빠트린 지난 한 주는 미 역사의 또 하나 어두운 한 페이지로 기록될 것이다.
미 최초의 흑인 대통령도 그 암울한 인종 갈등 악순환의 고리를 끊어버리지 못하는 무력감을 12일 댈러스 경찰들의 추모식에서 솔직히 털어 놓았다. 2009년 취임 이후 총기 참사를 당한 11개 도시에서 추모 연설을 했던 버락 오바마 대통령은 그때마다 간곡하게 호소했던 갈등해소 노력이 얼마나 효과적이었나에 대해 실망감을 감추지 않았다.
“난 너무 많은 추모식에서 연설을 했고, 너무 많은 유족들을 포옹했다. 그리고 지속적 변화를 가져오기엔 말로는 불충분하다는 것을 보아 왔다. 내 자신의 말이 얼마나 불충분한가도 보아왔다”
5일 루이지애나 주 배턴 루지에선 2명 경찰의 제압으로 땅바닥에 쓰러진 앨턴 스털링(35)이 가슴에 총을 맞아 숨졌다. 6일 미네소타 주 세인트 앤서니에선 여자 친구와 차를 타고 가던 필랜도 캐스틸(32)이 교통검문 중 경찰에게 사살 당했다.
이미 바닥에 쓰러진 스털링을 경찰은 왜 쏘아야 했을까, 캐스틸은 여자 친구의 주장처럼 경찰의 지시에 따라 면허증을 꺼내려다 총에 맞은 것이 사실일까…그 대답과는 상관없이 동영상에 담겨 생중계된 사건의 처참한 현장은 분노의 시위를 확산시키기에 충분했다.
그리고 7일 텍사스 주 댈러스, 경찰의 총격에 항의하는 평화시위 현장에서 치안업무를 담당하던 5명의 경찰관들이 매복한 흑인의 조준 저격에 목숨을 잃었다. 공권력을 저격한 극단적 보복에 잠시 주춤했던 항의시위는 지난 주말 재점화 되면서 다시 전국으로 번져나갔다.
10일 밤 LA 잉글우드 거리를 점령한 시위에 동참한 젊은 흑인부부에게 TV 카메라가 다가갔다. “정의 없이는 평화도 없다”고 외치는 그들의 격앙된 음성은 거칠었다. 그러나 어린 아들을 꽉 끌어안은 젊은 엄마의 분노 뒤에 가득 찬 두려움과 불안은 TV 스크린을 통해서도 확연히 느껴졌다. 백인이든, 아시안이든 인종에 상관없이 그 두려움을 공감하지 못하는 부모는 없을 것이다.
“정의 없이는 평화도 없다(No Justice, No Peace)”라는 시위대의 구호를 불편해 하는 사람은 상당히 많다. 댈러스 경찰 저격 이후엔 더욱 그렇다. CNN의 평론가 파리드 자카리아는 문명사회의 기본 룰에 대한 위협으로 들리기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우리 모두는 일상의 안전을 지켜주는 경찰과 사법체제에 의존한다. 사회질서가 무너지고 공권력이 존중받지 못하는 사회가 어떤 혼돈상태인가를 알려면 이라크와 시리아를 보라…”
그러나 법치는 공정해야 신뢰받을 수 있다고 덧붙인 그는 “미국은 이런 측면에서 스스로 인정하기 원하는 것보다 더 큰 문제를 안고 있다”고 진단했다.
요즘의 미국사회는 ‘인종갈등의 화약고’로 비유된다. 그러나 화약고는 불길이 닿지 않는 한 폭발하지 않는다. 그래서 무엇보다 필요한 것이 평등한 생존권을 주장하는 흑인 시위의 정당성과 질서유지 위한 공권력의 존중을 함께 인정하는 균형 잡힌 시각이다.
이 같은 균형 유지의 노력은 오바마의 댈러스 연설에서도 읽혀졌다. 그는 흑인 시위대와 경찰 양쪽 모두에게 직설적으로 말했다.
매 순간 생명을 걸어야 하는 경찰의 업무가 얼마나 위험한지를 상기시키며, 성실하고 공정하게 직무를 수행하는 대다수의 그들에게 경의를 표한 대통령은 사회제도의 부조리가 초래한 온갖 지역문제에 대해 “우리는 아무 것도 안하면서 경찰에게만 많은 부담을 요구한다”고 지적했다.
경찰을 향해선 제도적 인종편견의 희생자인 흑인들의 정당한 고충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에 대해 질책했다. “불공정에 대한 절망의 소리가 늘어갈 때 그 차별에 항의하는 평화시위를 말썽꾼으로 무시해서는 안 된다…자신의 체험을 부인당하는 것은, 당국자로부터 무시당하는 것은…그것은 아프다(It hurts.)”
인종갈등 해소를 위해 사고의 균형을 잡아가는 것부터 얼마나 힘든 과제인가는 이날 청중의 반응에서도 드러났다. 대통령이 사법조직 내의 인종편견에 대해 역설할 때 경찰들은 박수치지 않았다.
그러나 오바마는 미국이 보기만큼 분열된 것은 아니라고 강조했다. 총탄이 날아들자 시위대와 경찰이, 흑인과 백인이 서로를 일으켜 세우며 도왔던 댈러스 저격현장을 전하며 희망을 이야기했다. 폭력에 맞서는 폭력이 아닌, 상대에 대한 이해와 공감만이 갈등을 해소할 수 있다며 단합을 촉구했다. 진심어린 호소의 감동적 웅변에도 불구하고 레임덕의 한계는 확실하다.
“흑인의 문제는 백인의 문제다. 이것이 흑인문제 이해의 출발점이 되어야 한다”고 이미 1944년 스웨덴의 석학 군나르 뮈르달은 이정표적인 저서 ‘아메리카의 딜레마’에서 경고했었다.
다음 주부터 잇달아 열리는 공화·민주 양당의 전당대회를 계기로 미국은 본격적으로 대선전에 접어든다. 인종갈등의 화약고를 정치적으로 이용하지 않고 화합을 모색하는 진정한 리더를 기대해도 좋을까. 그보다는 인종갈등의 악순환은 계속되고 앞으로도 상당기간 미완의 과제로 남으리라는 예감을 떨쳐내기 힘든 것이 미국의 오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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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 록 주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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