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바닥만한 텃밭이라 해도 부지런하지 않으면 감당하지 못한다. 매일 아침 저녁 문안 드리고 물주고 달팽이며 진딧물 등의 행동반경을 살펴봐야 한다. 다 자란 채소라도 제때 거둬주지 않으면 말짱 도루묵이다. 게다가 캘리포니아의 물사정이 극히 나쁘다니 물 주는 것도 재활용 물을 모아가며 신경써야 한다.
집에만 있다보니 게으름이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자라 올해는 봄이 왔을 때 제때에 씨도 못 뿌렸다. 그런데 심지도 않은 호박이 상추를 거둔 빈 곳에서 싹를 티우더니 야금야금 자라기 시작해서 제법 오동통하니 예쁜 애호박을 몇개나 가져다 준다. 우연 같은 자연의 섭리에 고무되어 몇 개의 호박씨를 친구삼아 자라라고 옆에 심었는데 어쩜 일부러 심은 건 소식이 감감한데 그냥 굴러온 씨는 무럭무럭, 제 세상을 만났다.
그 뿐인가, 호박 옆으로 생전 나는 심어 본 일도 없는 붉은 근대가 화초처럼 예쁘장하게 모습을 드러낸다. 붉은 근대에서 비츠처럼 달콤한 향이 난다는 것도 덕분에 처음 알았다. 참 이상하다. 가끔 이렇게 심지도 않은 채소가 어디서 혼자 날라와 싹을 티울까. 게다가 자연이 날라온 것들은 언제나 일부러 심은 것보다도 더 늠름하게 그 생명력을 자랑하며 큰다.
자연을 보고 있으면 세상에 우리 마음대로 되는 건 하나도 없다는 걸 말없이 가르쳐 주려는 것 같다. 지난 봄, 사과 꽃이 흐드러지게 피어 그 향기 덕분에 기분이 말할 수 없이 좋았었다. 그런데 어느 하루, 바람은 몹시 불고 해는 따갑더니만 꽃들이 하루만에 전부 말라 떨어졌다. 내가 게을러 물을 제때 안줘서 그런가 했는데 돌아보니 우리 집 사과나무만 그런 게 아니었다. 동네 골목길의 모든 가로수 새순들이 일제히 말라 떨어져 마치 가을 낙엽처럼 이리저리 바람에 몰려 다니고 있었다.
할 수만 있다면 다시 주워다 달아주고 싶으리만치 애처럽고 짠했다. 농사에 생계가 걸린 농부들이라면 올해 농사는 일찌감치 망쳤구나, 하고 땅을 칠 것 같았다.
식물만 그런 게 아니다. 애들도 어디 부모 마음대로 되던가. 딴에는 고이고이 키운 줄 알았는데 자꾸만 삐뚤게 나가는 아이가 있고 방목의 수준으로 놔둬도 야무지고 올곧게 크는 사람도 있는 것 같다.
어렸을 때 ‘빙점’이라는 소설을 읽었다. 그 소설의 주인공 요꼬는 어른들의 복잡한 얽힘 덕에 갖은 구박과 교묘한 학대를 받으며 크는데, 그 많은 시련속에서도 언제나 자신을 믿고 불공평한 현실의 처사에 긍정적인 대처를 하는 감정적으로 성숙한 아이로 그려진다. 어린 애가 어떻게 그런 처신을 할 수 있을까, 참으로 신기하고 부러워 읽고 또 읽었었다.
나의 결정으로 부모가 됐다고 쉽게 생각하지만 사실 애를 갖는 건 자신의 힘이 아니다. 애를 간절히, 간절히 바라고 또 바라는 부부 사이에 애가 없기도 하고 그런 환경과 그런 관계에선 제발 애가 생기지 말아야 하는 곳에 애가 생기기도 한다.
나는 지금도 8살에 납치되어 12살에 첫애를 낳고 다시 또 애를 가져 두 딸을 갖게 된 듀가드라는 여인을 잊지 못한다. 그런 끔찍한 자리에서 태어난 아이는 자신의 존재를 어떤 식으로 감내할까? 서른이 넘어도 자신의 욕심을 제어하지 못해 아이를 자신의 소유물로 생각하는 부모도 많은 판에 겨우 달거리를 시작했을 12살 나이에 자신을 납치한 남자의 폭행에 의해 임신하고 그 집 뒷마당에 세워진 텐트 안에서 두 아이를 키워야 했던 그 여자의 운명. 인간은 너무도 끔찍하고 자연은 너무도 속수무책이다.
애들을 키우는 게 나무 키우는 거나 다름 없다는 생각을 해본다. 좋은 환경에서 좋은 가르침을 주며 키워야 하는 건 필수. 부모로서 제일 중요한 관건은 아이가 어떤 아이인가를 파악하는 일인 것 같다. 마구 패도 대수롭지 않게 툴툴 털고 일어날 수 있는 애가 있는가 하면 부모로서는 아무것도 아닌 사소한 일에 깊은 상처를 입고 일생을 힘겹게 사는 이도 있다.
선인장이 있나 하면 물에서만 살수 있는 수련도 있는 것처럼. 불행한 아이가 훗날 나쁜 어른이 된다. 아이에게 어떠한 환경에 놓여 있어도 선한 마음과 긍정의 힘으로 헤쳐나가야 한다는 걸 가르쳐 주는 일은 전쟁에 나가는 전사에게 주어진 필수불가결의 장비와도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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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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