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통령 후보가 대선의 결과를 좌우하는 경우는 드물다. 그래도 부통령 후보 선정은 경선 종료와 전당대회 사이, 가장 중요한 ‘의식’이자 흥미로운 이벤트로 꼽힌다. 부통령 후보 추측은 매번 빗나가기 일쑤이지만 금년에도 와글와글 소란스러운 옵서버들의 추측이 무성하다.
중도와 진보, 백인남성 표밭과 히스패닉 표밭 - 그 사이에서 고심하는 힐러리 클린턴 : 정치 경험과 충성심, 공화당 지도부와 경합주 표밭 사이에서 저울질하는 도널드 트럼프 : 두 후보 진영에서 압축되었다는 ‘최종후보 명단’이 다각도의 분석을 곁들여 쏟아져 나오고 있다.
부통령 후보를 보고 투표하는 유권자는 없을 것이다. 그러나 누구를 선정하느냐는 상당히 중요하다. 당의 대선후보로 내리는 첫 중요 결정이어서다. 그의 ‘정치적 영혼’까지는 아니어도 가치관과 우선순위를 평가할 수 있는 첫 테스트라 할 수 있다.
헌법 제2조에 명시된 부통령의 자격은 단순하다 : “미국에서 태어난 시민으로 35세 이상이어야 하며 취임선서 당시 미국에 최소한 14년 이상 거주했어야 한다”
물론 가장 중요한 선정기준은 국정능력이어야 한다. 부통령이란 유사시에 대통령 직을 승계해야할 예비 대통령이 아닌가. 병사한 프랭클린 루즈벨트, 암살당한 존 F. 케네디, 스캔들로 물러난 리처드 닉슨의 대통령 직을 물려받은 해리 트루먼, 린든 존슨, 제럴드 포드 등 ‘스페어타이어’에서 하루아침에 최고 통수권자가 된 부통령도 8명이나 된다.
실제로 양당 진영이 가장 비중을 두는 선정기준은 본선 승리에 도움이 되는가이다. 서류심사와 면담을 통해 면밀하게 평가한다. 대선후보의 약점을 보완해 줄 수 있는지, 캠페인의 흥행성을 높여줄 수 있는지, 소수계나 여성 등 특정 표밭 확대에 도움이 되는지, 경합주의 표를 움직일 수 있는 그 지역 인기 정치인인지, 상대 후보를 무차별 강타할 수 있는 공격수 소질은 갖췄는지, 아, 오히려 표를 깎아먹을 위험은 없는지…
공개적으로 강조하진 않지만 또 하나 중요한 요소가 있다. 요즘 한국의 신조어 중 하나인 ‘케미’다. 절친일 필요까지는 없어도 서로 믿고 편안하게 일할 수 있도록 코드는 맞아야 하니까. 대선티켓이란 “이혼이 불가능한 상태에서 최소 4년은 계속해야하는 결혼계약과 같은 것”이라고 대통령후보와 부통령 후보를 다 해본 월터 먼데일은 말한다.
힐러리와 트럼프, 양 진영 모두 득표력에 비중을 두겠지만 우선 요건은 다르다.
아웃사이더 트럼프는 정치 경험 풍부한 러닝메이트를 원한다. 사실 트럼프에겐 선택의 폭이 그리 넓지 못하다. 정치경험과 지명도, 주류의 신뢰 등을 갖춘 후보들이 “노 땡큐”라며 등을 돌리고 있어서다. 트럼프에 대한 주류의 반감이 노골적인 공화당에서 트럼프의 공격수를 자처했을 경우 정치적 위험을 감수해야 하기 때문이다. 많은 사람들이 거절했다.
그의 부름을 학수고대하는 사람 역시 얼마든지 있다.
뉴트 깅리치 전 연방하원의장과 크리스 크리스티 뉴저지 주지사가 대표적이다. 특히 트럼프에게 낯선 워싱턴에서 성능 좋은 네비게이터가 될 깅리치는 박학다식하고 트럼프에 주눅 들지 않을 역동적 기질을 가졌지만 구설수가 많은데다 공화당 주류와의 관계가 원만치 않아 트럼프가 원하는 다리 역할을 할 수 있을지가 약점으로 지적된다. 인기 하락세의 크리스티도 연이은 스캔들에서 아직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처지다.
지난 주말 트럼프가 만난 두 후보는 트럼프 측근에서 강력 추천하는 마이크 펜스 인디애나 주지사와 공화당의 ‘떠오르는 별’ 중 하나인 아이오와 주 첫 여성 연방 상원의원 조니 언스트다.
경합주의 인기 주지사 펜스는 트럼프를 의심하는 보수진영의 신뢰를 받는 정치인이지만 주 경선에서 테드 크루즈를 지지, 트럼프와는 서먹했던 관계다. 이라크 참전군인 출신의 언스트의 경우 우선 정치경험이 부족한데다 중년 백인남성들을 주요 타겟으로 하는 트럼프가 여성표밭을 고려하는 러닝메이트 선정을 할 것 같지는 않다고 공화 전략가들은 예상한다.
후보군이 넉넉한 힐러리에게도 러닝메이트 낙점은 쉽지 않은 듯하다.
진보표밭에 활기를 줄 수 있는 엘리자베스 워런 연방 상원의원을 택할 것인가. 흥행성은 그에 못 미치지만 민주당 대선승리에 꼭 필요한 오하이오의 연방 상원의원 셔로드 브라운은? 라티노와 젊은 표밭을 겨냥해 41세 훌리안 카스트로 주택도시개발 장관이 더 나을까. 백인남성표밭에 어필할 경합주 버지니아의 인기 정치인 팀 케인 연방 상원의원이 안전한 선택일까.
예상치 못한 변수들이 속출하면서 계속 흔들리는 금년의 ‘이상한’ 대선에선 부통령 후보의 중요성도 좀 달라질지 모른다. 전례 없는 비호감도로 고전하는 트럼프와 힐러리의 입지가 러닝메이트 선정으로 조금 나아질 수 있을까, 기대하는 것이다.
다양성에 중점을 둔 힐러리의 선정 작업에 엊그제 사이 요건 하나가 더 첨가되었을 듯싶다. FBI의 이메일 스캔들 수사결과 법적인 책임은 면했지만 정치적 후유증은 전혀 가라앉을 기세가 아니다. 추락하는 신뢰도 회복을 위해 지푸라기라도 잡아야할 형편이다. ‘부통령 후보라도’ 신뢰받는 인물로 선정한다면 조금 만회할 수 있을까.
트럼프는 18일 시작하는 공화당 전당대회를 며칠 앞 둔 다음 주에, 힐러리는 공화당 전당대회의 김 빼기를 노려 폐막 직후 발표할 것으로 알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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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 록 주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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