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이 유럽에서 떨어져 나온 것은 지금부터 약 1만2,000년 전이다. 마지막 빙하기가 끝나면서 얼음 녹은 물이 지금 영국과 프랑스 사이를 갈라놓고 있는 도버 해협으로 몰려들며 그 때까지 대륙의 일부이던 영국을 섬나라로 만들어놓았다.
기원전 54년 시저의 침공 이후 로마 제국의 일부로 편입됐던 영국은 로마가 망하면서 다시 떨어져 나갔고 그 후 벌어진 부족 간의 혼란을 막기 위해 원주민 족장이 북부 독일에 살던 앵글 족과 색슨 족을 용병으로 불러들였다가 오히려 이들이 주인 행세를 하는 바람에 주객이 전도되는 사태가 발생했다. 영국을 뜻하는 ‘England’는 ‘앵글(Angle) 족의 땅’이란 뜻이다.
그 후 영국은 1066년 바이킹의 후예인 노르만 족의 침공을 받고 헤이스팅스 전투에서 앵글로 색슨의 왕인 해롤드가 살해당하면서 노르만의 나라가 되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노르만 족은 앵글로 색슨족에게 결국 동화되고 만다.
그 후 1,000년이 지난 지금까지 영국은 단 한 번도 다른 나라에게 정복된 적이 없다. 오히려 헨리 2세 때는 프랑스 영토의 절반을 차지할 정도로 강성했고 나폴레옹과 히틀러가 유럽 대륙을 지배했을 때도 혼자 꿋꿋이 버티며 이들이 몰락하는 계기를 마련하기도 했다.
더욱이 제일 먼저 산업 혁명에 성공하고 강력한 해군력을 바탕으로 전 세계 곳곳에 식민지를 건설하며 ‘해가 지지 않는 나라’가 되자 자신들은 유럽의 일부지만 유럽과는 다르다는 자부심이 영국인들의 의식 깊숙이 자리 잡게 된다. 유럽 대륙의 번잡한 일에 얽매이지 않고 나 홀로 우뚝 선 영국의 모습을 영국인들은 ‘화려한 고립’(Splendid Isolation)이라고 부른다.
영국의 국민 시인인 셰익스피어가 희곡 ‘리처드 2세’에서 노래한 “이 왕의 옥좌, 이 홀을 쥔 섬, 이 장엄한 땅, 이 군신의 자리, 이 다른 에덴, 절반의 낙원, 이 자연이 오염과 전쟁을 막기 위해 스스로 만든 요새, 이 행복한 사람들의 무리, 이 작은 세상, 이 덜 행복한 땅의 질투를 막는 장벽과 해자 역할을 하는 은빛 바다에 놓인 보석, 이 축복받은 장소, 이 땅, 이 왕국, 이 영국”(This royal throne of kings, this sceptred isle,/ This earth of majesty, this seat of Mars,/This other Eden, demi-paradise,/ This fortress built by Nature for herself/ Against infection and the hand of war,/ This happy breed of men, this little world,/ This precious stone set in the silver sea,/ Which serves it in the office of a wall/ Or as a moat defensive to a house,/ Against the envy of less happier lands,/ This blessed plot, this earth, this realm, this England)이라는 구절은 영국 국민들이 자기 나라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지를 그대로 보여준다.
그 영국이 지난 주 국민 투표에서 예상을 깨고 유럽 연합을 탈퇴하기로 결정했다. 이와 함께 세계 주가가 동반 폭락하며 2조 달러가 넘는 돈이 증발했으며 네덜란드와 스웨덴 등이 연쇄 탈퇴하는 도미노 현상이 일어날 것이란 전망이 나오는가 하면 잔류를 강력히 지지한 스코틀랜드와 북아일랜드 등이 영국에서의 분리 독립을 추진 움직임까지 보여 정치적 혼란도 예상된다.
이번 영국의 유럽 연합 탈퇴는 이민자 유입과 남부 유럽의 가난한 나라를 돕기 위해 높은 부담금을 물어온 데 따른 중하류 영국민들의 분노가 폭발했다는 점에서 미국의 트럼프 현상과 비슷한 면도 있지만 똑같지는 않다. 노르만 침공 이후 1,000년 동안 유럽 대륙의 간섭을 받지 않고 독자적인 삶을 살아온 영국인들의 자부심은 일부 미국인들의 반이민 정서보다는 훨씬 뿌리가 깊기 때문이다.
일부에서는 이번 영국의 유럽 연합 탈퇴를 2008년 금융 위기를 불러온 리먼 사태에 비교하기도 하지만 이는 과장이다. 영국이 유럽 연합의 전신인 유럽 공동체에 가입한 것은 40년 남짓에 불과하다. 당분간이야 정치적 경제적 파장이 불가피하겠지만 영국도 세계도 영국이 유럽 연합에 속했느냐 여부에 관계없이 큰 불편 없이 오랫동안 살아왔다. 영국의 탈퇴에 대한 과민반응은 바람직하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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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경훈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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