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일 미국정부 대 텍사스 상고사건에 대한 연방대법원의 4대4의 판결 아닌 판결은 450만으로 추산되는 불법이민자들의 가족들을 크게 낙담시켰을 것이다. 시민권자나 영주권자를 자녀로 둔 체류자격이 없는 부모들에 대한 추방연기조치(DAPA)라는 오바마 정부의 행정조치에 대한 최종결정에 있어서 대법원은 텍사스 소재 연방지방법원에서 내린 DAPA의 임시 중단명령을 유효화시켰기 때문이다.
그 지방법원의 명령은 이미 제5순회구 연방항소법원에서 추인된바 있었던 것을 미국정부가 대법원에 상고한 결과니까 오바마 정부의 해당 부모들에 대한 행정적 구제가 사실상 막혀 버린 것이다. 이번 대법원의 결정이 해당 불법이민자들의 가족들만 울린 게 아니다. 오바마 대통령도 내내 침통한 표정으로 기자회견에서 불체자들의 추방에 있어서 범죄자들이나 최근 입국자들이 우선순위에 있다는 사실에는 변함이 없다고 강조했지만 500만에 가까운 사람들의 신분합법화를 자신의 주요한 치적 하나로 남기지 못하게 된 것을 못내 서운해 하는 눈치였다.
그러면서 상원의 다수당인 공화당이 앤토닌 스칼리아의 후임으로 임명한 에릭 갈랜드 판사 인준 히어링을 열지 않고 있는 것을 비난한다. 불체자 구제여부와 아울러 이민법 개정의 공은 내년 1월에 시작될 새 행정부와 입법부로 넘어가게 되었다. 트럼프가 백악관 주인이 되는 경우 1,100만의 불체자들을 추방하고 멕시코와의 국경에 멕시코 정부의 돈으로 장벽을 쌓을 것이라는 그의 공약이 실천에 옮겨질지, 아니면 백인 본토박이들의 관심을 얻고자 남발한 ‘빌 공’(空)자 공약일지가 초미의 관심사가 될 것이다.
클린턴이 최초의 여성 대통령이 되고 민주당이 상하양원의 다수당이 된다면 불체자 구제를 포함한 포괄적인 이민법 개혁이 이루어질 가능성이 크다. 하나 분명한 것은 클린턴이 11월 대선에서 승리한다면 그의 취임이 1월에 있기 전에 상원은 서둘러 갈랜드를 연방대법원 판사를 인준할 것이라는 점이다. 중도성향이 있는 것으로 평가되는 갈랜드 보다 훨씬 진보적인 인사를 클린턴이 스칼리아의 후임으로 임명할 것이 뻔하기 때문이다.
11월 대선의 결과는 미국정치와 사회에만 큰 영향을 미치는 게 아니라 전 세계적인 파장을 가지고 올듯하다. 트럼프의 외국 독재자들에 대한 호감은 잘 알려져 있다. 러시아의 푸틴과 중국의 시진핑에 대한 긍정적인 평가로 많은 식자들을 놀라게 하더니 30대도 못되어 권력의 공고화에 성공(?)한 김정은에게도 협상상대가 될 것이라는 투의 발언으로 외교관들이나 전문가들을 당혹시킨다.
나토와 한미일등의 동맹관계에 있어서도 미국의 맹방들이 재정적 부담을 늘리지 않는다면 미국의 역할을 재고하겠다는 식의 깊은 연구고찰은 커녕 보통수준의 지식과 성찰이 결여된 트럼프의 즉흥적인 언사는 관계국 지도자들을 경악시키거나 당황하게 만든다. 클린턴은 1990년대의 퍼스트 레이디로서의 경험과 오바마 첫 임기시의 국무장관 경력으로 외국 지도자들에게 널리 알려져 있어 그의 대통령 당선은 오바마 행정부의 대외정책 계속성에 대한 담보나 마찬가지로 외국정부들을 안심시킬 것이다.
트럼프의 공화당 후보 확정 시기부터 약 7주 동안 그의 막말로 클린턴의 전망이 밝아지는 것 같지만 그 둘 다 투표권자들의 비호감 대상자들이라는 점은 클린턴 진영을 긴장시킬 만하다. 공화당의 반트럼프 기류도 만만치 않다. 41대와 43대 대통령을 배출한 부시가문과 양심적인 보수주의자들은 트럼프가 대통령 자격이 없다는 결론이다. 특히 2012년 대선주자였던 미트 롬니와 그의 동조자들은 트럼프의 후보 등극을 못마땅하게 여기는 정도가 아니라 될 수 있으면 7월 달 전당대회에서 예선전의 결과에도 불구하고 다른 사람이 후보자가 되게 하는 방법을 모색 중이다.
5개월도 안남은 대선 정국은 계속 짙은 안개 속을 걸어 한치 앞도 내다 볼 수 없는 형국이다. 정말로 어수선한 시절이다. 불법체류자가 된 것을 제외하고는 법을 잘 지키고 자녀들을 미국인들로 양육하는 이민자들의 고뇌가 순탄하게 해결되어야 할 터인데 언제나 그렇게 될 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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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선우/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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