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마 했었다. 그런데 돌이킬 수 없는 현실이 됐다. 영국이 유럽연합(EU)을 탈퇴한 것이다.
“세계를 실신시켰다.” “힘의 균형이 무너졌다.” “EU 탈퇴는 도미노 상황을 맞게 될 것이다.” 세계의 언론들이 보인 반응이다. “한국경제가 질식할 수도 있다.” “한국 안보, 경제, 동시 위기에” “세계 경제에 쓰나미 경보음…” 한국 언론의 반응은 더 자극적이다.
“두 가지 국민투표가 실시됐다. 하나가 EU 회원국에 대한 국민투표였다면 다른 하나는 영국의 엘리트계층에 대한 국민투표였다. 이 두 국민투표에서 ‘탈퇴’파는 모두 승리를 거두었다.”
영국의 텔레그래프지 논평이다. 오히려 담담하다. 그 간결한 논평은 그러나 사태의 핵심을 제대로 지적해 주고 있다고 할까. 그런 느낌이다. 그러니까 EU, 그 자체와 만연한 기득권층에 대한 불신이 영국의 EU 탈퇴를 불러왔다는 것이다.
싱크 탱크 스트랫포도 비슷한 분석을 하고 있다. EU는 경제 주체로서 기능장애 증세를 보여 왔다. 2008년 대불황 이후 유럽이 맞은 경제문제에 제대로 대처를 못 해 왔다. 영국의 EU 탈퇴의 한 원인은 여기서 찾아진다는 것이다. 그리고 거기에다가 주권문제와 정치적 엘리트주의를 또 다른 원인으로 지적했다.
이는 그러면 영국만의 문제일까. 하나의 세계적 흐름으로 보아야 한다는 것이 스트랫포의 진단이다. 타임지도 같은 시각을 보이고 있다. 영국의 EU 탈퇴를 반(反)기득권세력의 승리, 다시 말해 정치적 엘리트주의에 대한 전 지구적인 전쟁에서의 승리로 본 것이다.
영국의 정치엘리트란 엘리트는 모두 EU 잔류를 지지했다. 그 뿐이 아니다. 국제 경제기구, 십 수 명의 노벨상수상 경제학자, 그리고 오바마 미국 대통령까지 나서 ‘브렉시트’를 반대했다. 경제적 대재난이 따른다는 경고와 함께. 그런데도 영국의 유권층은 탈퇴를 선택했다.
어떻게 그러 일이 가능할까…. 여기서 제시되는 것이 ‘포퓰리즘의 세계화론’이다.
세계화에는 패배자들이 따르기 마련이다. 세계화의 여파로 미국과 유럽의 제조업은 공동화 현상을 맞았다. 그 희생자는 블루칼라 근로계층이다. 상황이 계속 악화되면서 분노는 쌓여간다. 그 분노는 기득권층에 대한 반감으로 확산되다가 어느 날 행동으로 표출된다. 선동세력이 그들의 분노, 좌절감을 파고들면서.
이것이 ‘포퓰리즘의 세계화론’으로 기득권층, 혹은 정치적 엘리트주의에 대한 반감은 유럽은 물론 미국, 심지어 중국에 까지 만연돼 있다는 진단을 내놓고 있다.
상당히 설득력 있게 들린다. 대졸 이상의 학력자의 경우 실업률은 고졸 이하 학력자의 3분의 1에도 못 미친다. 소득도 그렇다. 이런 통계들과 함께. 그러니까, 이런 근로계층이 바로 ‘포퓰리즘 세계화론’의 주 타겟이 되고 있다는 것이다.
맞는가. 그렇다. 그러나 ‘부분적으로만’이란 단서가 붙는다. 이유는 유럽과 미국에서 고졸이하 근로자 수는 계속 줄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면 계속 확산되고 있는 반 기득권세력 정서는 어떻게 설명될 수 있을까.
“오늘날 유럽에서 두드러지고 있는 현상은 셋이다. 하나는 경제적 어려움이다. 두 번째는 이슬람국가 출신 이민자들의 대거 유입사태다. 이른바 ‘정치적 올바름’(political correctness) 때문에 위정자들은 극히 미온적인 태도를 보이고 있지만 유럽의 대중이 그들을 통해 직시하는 것은 이슬람 과격세력의 테러 위협 증가다. 그리고 세 번째는 그 이슬람이란 종교가 서방문화의 가치와 제도와 과연 조화될 것인가 하는 의구심의 확산이다.”
액션 인스티튜트의 새무얼 그레그의 지적이다. 다른 말이 아니다. 반기득권, 반엘리트주의 확산. 그 저류에서 벌어지고 있는 것은 가치관 싸움, 문화전쟁이라는 것이다.
인류 역사의 상당 부문은 이동하는 사람의 물결, 그 물결의 충돌 역사다. 고대에서 중세의 유럽 역사가 바로 그렇다. 중국의 만리장성도 그 흔적이다. 유럽은 그리고 7세기에서 17세기에 이르기 까지 세 차례나 이슬람화가 될 위기를 겪었다.
급증하는 이슬람인구, 그들과 함께 묻어 들어오는 그들의 문화와 가치관, 전통. 이와 함께 유럽문화가 사라질지 모른다는 정체감 위기가 새삼 높아지고 있는 것이다. 유럽의 민초들의 이 같은 정서에 그러나 정치 엘리트들은 둔감하다. 현실감이 없는 것이다.
브렉시트 국민투표를 앞두고 기득권층이 제시한 논리도 그렇다. 이민이 최대 이슈였다. 그러나 이는 외면하고 경제논리만 폈다.
“머리와 가슴의 싸움이었다. 승리는 결국 가슴이 차지했다.” 브렉시트 국민투표에 대한 총평이다. 경제적 이익보다는 주권, 민주주의, 그리고 가치가 우선이라는 대중의 정서를 제대로 파악하지 못했다. 그 결과는 EU 탈퇴로 나타난 것이다.
EU 탈퇴는 그러면 올바른 선택인가. 아직은 아무도 모른다. 지금으로 예상되는 것은 한동안 혼란이 따른다는 것이다.
또 다른 하나가 있다. 반 기득권정서. 이는 미국에서는 트럼프주의로 불린다. 아무도 예측 못했다. 정치적 이단아 트럼프가 기성정치권을 누르고 대선 후보가 되리라고는. 그 트럼프가 약진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는 전망이 일각에서 대두되고 있는 것이다.
이래저래 맥 빠지고 또 두렵기까지 한 것이 올 미국 대선의 흐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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옥세철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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