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인교회마다 성경 읽기 캠페인이 다반사로 벌어진다. 평생 수십번 통독한 장로님, 권사님도 많다. 나는 그런 축에 못 들지만 교회의 연례 ‘성경 일독’ 캠페인에 따라 매달 읽은 성경 분량을 구역장에게 보고한다. 각 구역별 집계가 월말 교회주보에 게재되므로 자연스럽게 경쟁이 유발된다. 이처럼 뜨거운 성경읽기 캠페인을 나무라는 외부 사람들은 전혀 없다.
그런데, 아이오와주의 테리 브랜스태드 주지사가 비슷한 캠페인을 주도했다가 비난의 집중포화를 맞고 있다. 그는 이달 30일부터 7월3일까지 주내 99개 카운티가 모두 참여하는 ‘마라톤 성경통독 대회’를 각 카운티 지방법원 앞에서 벌인다고 선언한 뒤 무신론자들과 미국 인권자유연맹(ACLU), ‘종교로부터의 자유재단(FFRF)’ 등으로부터 뭇매를 맞고 있다.
이들은 브랜스태드 주지사가 전체 주민들을 대상으로 벌이는 성경통독 캠페인은 연방헌법의 정교분리 원칙에 위배될 뿐 아니라 특정종교를 공공연하게 비호함으로써 다른 종교를 가졌거나 종교가 없는 사람들을 배척하는 차별행위라고 비난했다. 이들은 주정부가 종교문제에 중립적이어야 한다며 행사를 취소하지 않으면 주지사를 제소하겠다고 으름장을 놨다.
독실한 신자인 브랜스태드는 마라톤 성경통독 대회가 아이오와의 인기 있는 전통행사이고, 권면사항일 뿐 강압행위가 아니므로 무신론자들이 얼마든지 도외시할 자유가 있다고 반박했다. 아이오와에 앞서 앨라배마의 버밍햄시도 지난 5월 1~5일 90시간 동안 400여 자원자들이 각각 15분씩 창세기부터 계시록까지 잇달아 읽는 마라톤 성경통독 대회를 마쳤다.
우연의 일치인지 무신론자들도 지난 4일 워싱턴DC의 링컨 기념관 광장에서 대규모 집회를 열었다. 2012년 첫 대회 후 2회째인 이 ‘이성 집회(Reason Rally)’의 목적은 거창했다. “신은 죽었다” 따위의 고리타분한 ‘교리’ 전파가 아니다. 대통령선거의 해에 무신론자들의 정치파워를 과시하자는 것이다. 그래서 올해 집회에 ‘유권자 떼 파티’라는 별칭을 붙였다.
이들은 ‘None’(無)으로 통칭되는 무신론자, 무종교인, 불가지론자들이 미국 전체인구의 23%을 점유하는 당당한 유권자 그룹으로 대두됐는데도 대선 후보들과 양대 정당으로부터 마땅히 받아야할 대접을 받지 못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특히 각급선거에 출마한 ‘None’ 계열의 후보들은 당선확률이 게이와 레즈비언은 물론 무슬림 후보보다도 못하다고 개탄했다.
밀레니얼 세대와 유색인종이 주류였던 이날 집회의 참가자들은 국기에 대한 맹세를 암송하면서 끝 부분의 ‘하나님 아래(Under God)’라는 구절을 생략했다. 한 연사는 53년전 바로 이 기념광장에서 역사적 인권운동 집회를 주도한 마틴 루터 킹 목사의 명연설 “나는 꿈이 있다”를 살짝 고쳐 암송하며 어린이들이 무신론 교육을 받을 권리가 있음을 강조했다.
날씨가 화창했던 이날 집회의 참가자 수는 4년 전 우중에 열렸던 첫 대회의 3만여명에 훨씬 미달했다. 주최측은 2만여명으로 추산했지만 기독교계 언론들은 8,000여명으로 깎아내렸다. 한 관계자는 어느 행사든지 첫 대회에는 사람이 많이 몰린다며 올해는 마가렛 조(한인 코미디언) 같은 초청명사들이 불참한 것도 집회 참가자가 줄어든 원인이 됐다고 설명했다.
참가자들 중엔 올해 대통령 경선후보 중 유일하게 ‘무종교’ 라고 밝힌 유대계 버니 샌더스 지지자가 많았다. 연사로 나온 인기 코미디언 펜 질레트는 도널드 트럼프가 기독교인을 자처하지만 성경은 무신론자만큼도 모를 것이라며 그런 엉터리가 공화당 대선후보로 굳어진 것은 종교가 이미 극우 보수층에서도 영향력을 잃고 있다는 반가운 징표라고 말했다.
집회 T셔츠를 입은 참가자들과 “하나님 없이도 좋아(Good Without God)” 따위 피켓이 물결치는 집회장 맞은 편 한 쪽에 “하나님은 무신론자를 믿지 않아” 등의 피켓을 든 소수 기독교인들이 모여 있었다. 미국에선 무신론자들이 아직 한참 마이너리티라고 질레트가 개탄했지만 그날 상황은 정반대였다. 필연적으로 그렇게 굳어질 수밖에 없을 터이다.
<
윤여춘 시애틀지사 고문>
댓글 안에 당신의 성숙함도 담아 주세요.
'오늘의 한마디'는 기사에 대하여 자신의 생각을 말하고 남의 생각을 들으며 서로 다양한 의견을 나누는 공간입니다. 그러나 간혹 불건전한 내용을 올리시는 분들이 계셔서 건전한 인터넷문화 정착을 위해 아래와 같은 운영원칙을 적용합니다.
자체 모니터링을 통해 아래에 해당하는 내용이 포함된 댓글이 발견되면 예고없이 삭제 조치를 하겠습니다.
불건전한 댓글을 올리거나, 이름에 비속어 및 상대방의 불쾌감을 주는 단어를 사용, 유명인 또는 특정 일반인을 사칭하는 경우 이용에 대한 차단 제재를 받을 수 있습니다. 차단될 경우, 일주일간 댓글을 달수 없게 됩니다.
명예훼손, 개인정보 유출, 욕설 등 법률에 위반되는 댓글은 관계 법령에 의거 민형사상 처벌을 받을 수 있으니 이용에 주의를 부탁드립니다.
Close
x