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서울을 방문했다가 여의도의 한 고층빌딩에서 낯익은 이름을 봤다. 인도네시아 대사관 건물 뒤로 우뚝 솟은 쌍둥이 빌딩의 꼭대기에 ‘트럼프 월드’(Trump World)라고 붙어 있는 게 눈에 확 들어왔다.
이 트럼프가 그 트럼프인가? 궁금해서 찾아보니 90년대말에 대우건설이 도널드 트럼프의 브랜드를 도입해 지은 럭서리 주상복합 아파트라고 나와 있다. 당시 대우가 트럼프와 합작으로 뉴욕 맨해턴에 최고급 콘도인 ‘트럼프 월드타워’를 건설했었는데, 그것이 인연이 돼 600~700만달러의 로열티를 주고 서울과 부산, 대구 등 한국 내 일곱 곳에 그의 이름을 붙인 고급 주상복합을 지었다는 것이다.
부동산 재벌 트럼프의 브랜드가 한국에도 벌써 십수년전에 진출해 있었다는 것은 처음 안 사실인데, 트럼프의 해외 진출이 한국이 처음이었다는 점도 좀 놀라웠다. 그런 트럼프가 요즘은 한국에서도 누구나 아는 이름이 됐으니 여의도 한복판에 떡 하니 버티고 선 ‘트럼프 월드’의 존재가 새삼 신기하기까지 했다.
사실 이번 한국 방문 중 가장 많이 받았던 질문 중 하나가 “진짜 트럼프가 미국 대통령이 될 것 같으냐”였다. 정치 경험이 전무한, 좀 기이한 억만장자로만 알려졌던 트럼프가 공화당 대선 경선에 나왔을 때만해도 그저 그러려니 했는데, 각종 막말과 극단적 이민 및 외교 정책 등의 논란에도 불구하고 결국 공화당 대선 후보 자리를 사실상 꿰차는, ‘설마’가 현실이 된 상황이 의아하다는 의견이 대다수였다.
여하튼 힐러리 대 트럼프의 대결 구도로 치러질 것이 기정사실화되고 있는 올 미국 대선은 한국 뿐 아니라 전 세계적으로 그 어느 때보다 높은 관심을 끌 모양새다. 미국의 첫 여성 대통령을 노리는 힐러리 클런틴 전 국무장관의 역사적 도전도 그렇지만, 이른바 ‘미국 우선주의’를 내세우며 기존 틀을 흔들고 있는 트럼프가 백악관의 주인이 되는 시나리오가 현실화될 경우 그것이 국제 관계에 미칠 영향이 막대할 것이기 때문이다.
이처럼 트럼프에 대한, 주로 부정적인 측면에서의 관심은, 동맹국들을 자극하는 트럼프의 대외 정책과 더불어 그의 이민자나 무슬림을 겨냥한 극단적 언사와 정책 행보가 주요 이유가 되고 있다. 이같은 행보의 문제점은, 이미 누누이 지적돼 왔듯이, 특정 이슈를 정치적 목적을 위한 ‘편가르기’의 도구로 이용하고 있는 측면이 크다는 데 있다.
이와 같이 정치적 이득을 위해 분열을 자극하는 양상은 지금 전 세계의 이목이 쏠려 있는 영국의 ‘브렉시트(Brexit)’ 이슈에서도 드러났다. 영국의 유럽연합(EU) 탈퇴를 뜻하는 브렉시트에 대한 찬반 국민투표가 마침내 실시된 가운데, 그 결과가 어떻게 나올 지를 떠나 이미 영국은 국론이 정확히 반반으로 갈려 갈등을 증폭시켜오다 결국 전도유망한 국회의원의 피격돼 숨지는 사건까지 겪는 등 홍역을 치렀기 때문이다.
영국이 EU를 떠나야 한다는 브렉시트 찬성 측 주장의 배경에는 막대한 분담금 등에 대한 거부감과 더불어 영국내 이민자 급증에 대한 불만과 반감이 크게 작용했다는 분석이다. 이민자 포용을 통한 사회적 통합 노력과는 정반대로, 이민자 이슈를 ‘분열의 정치’에 이용한 측면이 크다는 것이다. 이처럼 ‘브렉시트’ 주장과 트럼프의 ‘미국 우선주의’의 밑바닥에 공통적으로 흐르고 있는 것은 바로 ‘편협함’이라 볼 수 있다.
역사적인 브렉시트 찬반 투표의 결과는 결국 치유할 상처만 남긴 채 현상유지 쪽으로 결론지어지는 모양새이지만, 미국 대선은 아직 4개월 반의 드라마가 더 남아 있다. 힐러리와 트럼프는 아직 공식 대선 후보로 추대되기도 전이지만, 이들의 대결은 이미 치열한 육탄전을 예고하고 있다.
엊그제 힐러리가 트럼프의 부채 문제와 파산 전력, 진지한 정책 부재 등을 지적하며 “미국 경제에 재앙이 될 것”이라고 공격하자 트럼프는 힐러리를 향해 "역대 대선 출마자 중 가장 부패한 사람이자 세계 최고 거짓말쟁이"라는 맹펀치로 맞받아치는 등 벌써부터 이전투구 양상을 보이고 있다. 그 어느 때보다 뜨거울 본격 대선전을 앞두고, 이제 세계의 눈은 트럼프의 운명의 향배를 보기 위해 미국으로 향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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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종하/ 사회부장·부국장 대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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