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트럼프·브렉시트 지지자 ‘분노’ ‘불만’ 정서 공유
▶ 브렉시트 승리는 생각보다 거센 反세계화 정서 방증
도널드 트럼프 [AP=연합뉴스 자료사진]
영국의 유럽연합(EU) 탈퇴 결정이라는 초유의 사건은 불과 5개월여 앞으로 다가온 미국의 대통령 선거에도 적잖은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특히 민주당과 공화당의 사실상 대선후보인 힐러리 클린턴 전 국무장관과 도널드 트럼프가 각각 EU '잔류'와 '탈퇴'를 주장하며 상반된 태도를 보여온 만큼 브렉시트(brexit,영국의 EU 탈퇴)가 향후 대선 판세를 가를 새로운 분수령이 될지 주목된다.
스코틀랜드를 방문 중인 트럼프는 24일(현지시간) 영국의 EU 탈퇴 결정에 대해 "그들의 국가를 되찾았으며, 그것은 위대한 일"이라고 환영하면서도 미 대선에 미칠 여파에 대해선 "두고 보자"고 말을 아꼈다.
그러나 트럼프와 영국 브렉시트 진영은 구호는 물론 지지층의 정서와 구성 측면에서도 상당한 공통점이 있어, 그동안 클린턴에 열세를 보여온 트럼프는 이번 사건을 계기로 대대적인 반전을 도모할 것으로 예상된다.
클린턴은 이날 성명을 내고 브렉시트 여파에 대해 "불확실성의 시대"로 규정하며 신중한 반응을 보였다. 그러나 "불확실성의 시대는 미국인의 지갑과 생계를 지키기 위해서는 조용하지만 꾸준하고 경험 있는 백악관의 리더십에 대한 필요성을 강조하는 것"이라고 평가했다.
미 언론들은 브렉시트가 전례 없는 일인 데다가 실제로 실현되기까지는 아직 많은 과정이 남아 있어 당장 미국 정치에 미칠 영향을 가늠하긴 쉽지 않지만, 영국 유권자들의 EU 탈퇴 선택 자체가 미 대선 표심을 예측하는데 시사하는 바가 크다고 분석했다.
미 CBS방송은 트럼프 지지자와 브렉시트 지지자의 공통점은 '분노'와 '불만'이라고 표현했다.
기성 정치에 대해, 그리고 이민자 등에게 '기득권'을 빼앗겼다고 생각하는 양측 지지자들은 공통으로 분노와 불만의 정서를 품고 있다는 것이다.
실제로 이번 국민투표 이전부터 트럼프 열풍과 브렉시트 찬성이라는 올해 국제사회의 가장 두드러진 두 '사건'을 연결 짓는 시각은 많았다.
영국 BBC도 최근 두 현상의 공통 키워드로 유권자의 분노, 세계화, 이민, 잃어버린 자부심, 포퓰리즘(대중영합주의) 등 5가지를 꼽은 바 있다.
영국에서는 EU 관료주의자들에 대해, 미국에서는 선출직 정치인들에 대해 불만이 팽배해 있는 데다가 세계화로 인한 이민자 증가와 자유무역이 자신들의 일자리 등을 위협하고 있다는 생각이 양국의 유권자를 지배한 것이다.
트럼프나 브렉시트 찬성파들도 이러한 분노와 불만 정서를 자극하면서 반(反)이민과 고립주의를 부추겼다.
미 워싱턴포스트(WP)는 "양국에서는 세계화와 2008년 금융위기 이후 분노가 시작됐고, 또한 인구적 다양성 확대로 이민 문제 논란이 과열됐다"며 "트럼프와 브렉시트 찬성파는 이민 문제가 그들의 강력한 정치 무기가 되리라는 것을 발견했다"고 지적했다.
'미국을 다시 위대하게 만들자'(Make America Great Again)는 트럼프의 구호나 '우리나라를 되찾자'(Take back our country)는 브렉시트 지지자들의 외침 또한 비슷한 울림을 가진다.
'자본주의 4.0의 저자'인 경제평론가 아나톨 칼레츠키는 CBS에 "브렉시트 지지자와 트럼프 지지자들의 인구 통계 특성은 놀랍도록 비슷하다"고 말했다.
트럼프의 가장 강력한 지지층은 고등학교 졸업 이하 학력의 백인이며, 이번 브렉시트 투표에서도 주민들의 학력과 소득 수준이 낮은 지역일수록 탈퇴를 선호한 것으로 나타났다.
칼레츠키는 "브렉시트와 트럼프 지지자들의 지배적인 정서는 '우리는 이른바 엘리트, 전문가, 정치인들이 나라를 이끄는 방식이 마음에 들지 않고, 무엇보다 우리 조국에 다른 나라가 영향을 미치는 것이 불만이다'라는 것"이라고 말했다.
여론조사 전문가인 프랭크 룬츠도 미국 NPR방송에 "브렉시트 찬성파인 나이절 패라지나 트럼프는 세계 금융위기 충격에서 회복하지 못하고 기득권에 소외됐다고 느끼는 사람들에게 호소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번 영국 국민투표에서 EU 탈퇴파의 예상밖 승리는 세계화나 이민에 대한 반감이 예상보다 훨씬 강하다는 방증일 수 있다.
이 때문에 미국 대선에서도 이러한 표심이 반영된 '숨은 표'가 훨씬 더 많이 나올 수 있다는 예상이 가능하다.
실제로 브렉시트가 실현된다면 클린턴과 트럼프 간 손익이 엇갈릴 수 있다는 것이다.
그동안 버락 오바마 대통령과 민주당 대선 후보인 힐러리 클린턴 전 국무장관은 "영국은 EU 안에 있을 때 더 강력하다"며 브렉시트 반대 입장을 밝혀왔고, 트럼프는 "영국은 EU를 탈퇴하면 더 잘 지낼 수 있다"고 찬성 의사를 표명해왔다.
브렉시트가 미국 경제에 미치는 악영향이 커지고, 북대서양조약기구(나토)의 전력 약화로 이어지면 보호무역을 주창하고 나토 탈퇴까지 언급하는 트럼프의 말이 더 호소력을 갖게 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특히 멕시코계 판사 인종차별 발언 등으로 공화당 지도부와 잇단 불협화음을 내면서 최근 지지율이 곤두박질쳤지만, 트럼프가 대서양 건너편에서 날아온 '반가운' 소식을 발판으로 내분을 수습하고 분위기 반전을 해 나간다면 대선 판세는 요동칠 공산이 크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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