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최초의 정당은 지금은 사라진 연방당(Federalist Party)이다. 초대 대통령인 조지 워싱턴은 어느 정당에도 속하지 않았으나 강한 연방 정부, 영국과의 화해, 관세를 통한 자국 산업 보호와 금융업 육성과 같은 연방당 정책에 호의적이었고 초대 부통령인 존 애덤스, 초대 재무장관인 알렉산더 해밀턴, 연방 헌법을 기초한 제임스 매디슨 등이 이 당파 소속이었다.
연방당은 1796년 2대 대통령 선거에서 애덤스가 민주 공화당이 지지하는 토마스 제퍼슨을 물리치고 2대 대통령에 당선되며 절정에 달했다. 연방당은 백악관뿐 아니라 연방 상원의 2/3를 차지하고 있었으며 이런 힘을 바탕으로 한 때 독립을 위해 전쟁까지 치른 영국과의 화해를 골자로 한 제이 조약(Jay Treaty)을 통과시켰다.
그러나 이런 일방적인 친영 정책과 상공인 위주의 정책은 독립 전쟁 때 미국을 도와준 프랑스에 대한 애정을 갖고 있던 사람들과 국민의 대다수를 차지하고 있던 농민들의 반발을 샀다. 1800년 3대 대통령 선거에서 제퍼슨에 지면서 쇠락의 길로 접어들었던 연방당은 1812년 프랑스와 전쟁 중이던 영국이 미국 선원과 배를 나포해 군수 물자로 전환하면서 발생한 갈등이 전쟁으로 폭발하면서 설 곳을 잃었다. ‘일방적인 대영 퍼주기 정책의 결과가 전쟁이냐’는 비판에 할 말을 잃은 것이다. 1815년 전쟁은 끝났지만 연방당은 다시는 미국 정치에 복귀하지 못했다.
그 뒤를 이어 나온 것이 휘그당이다. 19세기 초까지 미국 정치를 주도하던 동부 지주나 상류층이 아닌 거친 서부 하류층 출신으로 자신의 힘만으로 대통령 자리에 오른 앤드루 잭슨의 정책에 반기를 들고 창당된 휘그당은 구 연방당의 정책을 상당 부분 계승하며 2명의 대통령을 당선시켰으나 공교롭게 2명 모두 재임 기간 중 사망해 부통령이 그 직을 이어받아 도합 4명의 대통령을 배출하게 된다.
그러나 19세기 중반 노예제 폐지 문제가 뜨거운 감자로 떠오르면서 폐지 찬성론자와 반대론자로 갈라져 있던 휘그당은 결국 자기 분열을 일으키며 해체되고 만다. 여기서 떨어져 나온 노예제 폐지론자와 처음부터 폐지를 주장했던 자유 토지당(Free Soil Party), 이민자에 대한 적대 정책을 근본으로 하면서도 이를 공개적으로 내세우는 것이 부끄러웠던지 신분과 정책을 물으면 ‘아무 것도 모른다’고 답해 무지몽매당(Know Nothing Party)이란 별명이 붙은 정당 지지자들이 합쳐서 만든 것이 바로 지금의 공화당이다.
이런 미국의 역사를 살펴보면 미국이 양당제의 나라이기는 하지만 언제까지나 같은 당이 존재해왔던 것은 아니고 시대의 흐름을 따라가지 못하는 당은 도태되고 시대의 요구에 발맞춘 정당이 새로 탄생했음을 알 수 있다. 지금의 민주당도 원래 이름은 민주 공화당이었으며 당원들은 스스로를 공화당원이라고 불렀다. 지금처럼 민주당으로 불리게 된 것은 ‘대중들의 인기에 영합하는 당’이라는 뜻으로 연방당이 붙여준 이름을 자신들이야말로 진정으로 국민의 뜻을 대변하는 당이라며 받아들여 그렇게 된 것이다.
올 대선을 4개월 여 남겨 놓은 지금 공화당 대선 주자인 도널드 트럼프의 지지도가 바닥을 기고 있다. 일부 여론 조사에서는 민주당 대선 후보인 힐러리 클린턴과의 격차가 12% 포인트까지 나고 있고 불만에 찬 백인 중하류 층의 인기를 바탕으로 이길 수 있다던 경합주에서도 대부분 지는 것으로 나타났다. 현재 트럼프의 인기는 지난 20년간 최악이던 2008년 공화당 존 매케인 수준에도 못 미치고 있다. 매케인은 자력으로는 도저히 대통령이 될 수 없다고 판단, 당시 알래스카 주지사로 부통령 자격이 전혀 없는 새라 페일린을 러닝메이트로 삼는 깜짝 쇼를 벌였다 결국 참패하고 말았다.
거듭된 파산으로 빚을 털고 공공 목적으로 사용돼야 할 토지 수용권을 악용하는가 하면 트럼프 대학이란 사기 행각으로 돈을 벌고서도 이를 재판하는 판사의 조상이 멕시칸이라 불공정한 판결을 할 것이라고 주장하는 트럼프는 대통령이 될 자격이라고는 눈을 씻고 찾아 봐도 없는 사람이다. 이런 인간을 대통령 후보로 뽑은 공화당은 과거 연방당과 휘그당이 시대의 흐름을 잘못 읽고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져간 전철을 밟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미국 유권자들은 올 11월 선거에서 준엄한 심판을 통해 공화당에게 환골탈태를 통한 부활과 자멸 중 하나를 고르게 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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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경훈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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