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랜도 총격 테러범 오마르 마틴의 아버지가 “내 자식이지만 결코 용서 못한다”며 개탄했단다. 그 말이 내 귀엔 “집안 망신시킨 불효막심한 놈”으로 들린다. 시애틀 북쪽 알링턴에서 두달전 앙숙이었던 이웃집 부부를 살해하고 도망해온 두 아들에게 자동차를 내준 아버지가 살인범 도주 방조혐의로 엊그제 기소됐다. 불효자 때문에 늘그막에 쇠고랑을 찼다.
한국에도 병원에 누워 두 불효자를 원망하는 갑부 아버지가 있다. 한국 5대 재벌인 롯데그룹의 신격호(94) 통괄회장이다. 그의 차남(신동빈 회장)과 장남(신동주 일본 지주회사 전 부회장)이 후계권을 놓고 시끌벅적하게 싸우면서 그룹의 비자금 조성혐의가 불거졌다. 검찰이 200여명을 동원해 전방위 수사를 벌이는 통에 모든 계열사의 운영이 올스톱 됐다.
거의 80년 전에 ‘불효자는 웁니다’라는 노래가 유행했다는데 요즘은 불효자 때문에 우는 부모들이 훨씬 더 많다. 아들에게 일찌감치 전 재산을 넘겨줬던 89세 노모가 아들이 불효하자 40년만에 재산증여 취소소송을 냈다가 패소했다. 효도를 조건으로 상속했다는 증거가 없기 때문이었다. 요즘 한국 노인들 사이엔 죽는 날까지 재산 지키기가 불문율로 돼있다.
한국의 불효자 세태는 국회가 ‘불효자 방지법’ 제정을 추진하고 법무부가 관련법 개정을 논의할 정도로 심각하다. 현행 민법은 부모가 부양의무를 이행하지 않는 자녀에게 재산증여를 해제할 수 있는 기간을 6개월로 제한하고 있다. 또 부모가 자식에게 얻어맞거나 위협 받아도 본인들이 원치 않으면 자식을 처벌할 수 없게 돼 있다. 소위 ‘반의사 불벌죄’이다.
지난해 말 일부 국회의원들이 상정한 개정안은 민법의 재산증여 해제권 행사기한을 5년으로 늘리고 해제사유에 “학대나 그 밖의 현저하게 부당한 대우”를 추가해 적용폭을 넓혔다. 독자적으로 생계유지가 어려운 부모를 부양하지 않을 경우 이미 넘겨준 재산도 반환받을 수 있도록 하고, 형법상 존속협박^존속폭행의 반의사 불벌죄 항목도 폐지토록 하고 있다.
일부 학자들은 불효자 방지법이 입법만능주의 발상이며 효도를 상속재산과 묶으면 우리 고유의 효사상이 희석된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이 개정법의 지지자들은 현행 민법규정이 ‘배은망덕 조장법’이라며 재산을 물려받고도 효도를 모르쇠라 하는 ‘먹튀 자녀’들을 줄일 수 있다고 반박한다. 그나저나 이 개정안은 지난달 19대 국회가 끝나면서 자동 폐기됐다.
우리 민족엔 효자효녀가 많았다. 장님 아버지를 눈 뜨게 해준 심청 이야기도 있다. 손가락을 잘라 아버지 입에 피를 흘려 넣어 소생시킨 아들, 아버지의 변을 찍어 맛보고 건강상태를 점검했다는 아들들도 있었다. 꼭 10년전, 지게에 92세 부친을 앉히고 금강산을 관광시켜드려 온몸에 피멍이 들었다는 내 고향 출신 이군익씨 기사를 읽고 크게 감동했었다.
내 친구 중에도 효자효녀가 있다. LA 동양선교교회의 임승표 장로와 임 헬렌 권사 부부다. 이들은 부친이 지난달 93세로 돌아가시기까지 27년을 부양했다(모친은 18년간). 부친의 병세가 악화된 마지막 반년도 양로병원 행을 마다하고 집에서 모셨다. UCLA 출신의 주정부 공무원으로 요즘도 바쁘게 일하는 임 권사는 틈틈이 시아버님을 목욕까지 시켜드렸다.
동방예의지국인 한국에 불효자가 많다는 건 아이러니다. 하지만 그럴 만도하다. 삼국시대 이래 필수 교육과목이었던 ‘효경(孝敬)’이 학교에서 사라진지 오래다. 국민교육헌장에도 경애^신의^자유^책임^협동 따위는 있지만 효도는 빠졌다. 미국 아이들은 ‘국기에 대한 맹세’를 입에 달고 산다. 거기에도 효도라는 말은 없지만 효도에 가장 가까운 충성을 강조한다.
내일은 ‘아버지날’이다. 스포캔 출신 소노라 스마트 도드 여인의 노력으로 워싱턴주 정부가 미국에서 최초로 1910년 7월 19일을 아버지날로 선포했다. 당시는 그 의미가 아버지 추모일 정도였지만, 인생 100세 시대인 요즘은 크게 달라졌다. 자녀들의 효도에 의존해야할 노인들이 엄청 늘어나고 있다. 매년 아버지날을 ‘효자 만들기 날’로 삼아야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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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여춘 시애틀지사 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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