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 이야기를 쓰다보면, 격려를 보내주시는 분들의 대부분은 문학을 사랑하시는 분들이다. 그 중에는 詩, 수필, 소설 등을 쓰시는 분들도 계시고 대학에서 문학을 전공했던 분들도 꽤 된다. 이분들의 특색이라면, 理想(의 실현)에 대한 강한 목마름이 있는 분들이라고나 할까. 비록 현실은 좀 힘들어(보여)도, 늘 치열함과 중후한 인품이 느껴지는 것은 문학과 함께 오랫동안 살아왔던 내공… 그 인격의 그늘 때문이리라. 그늘이 없는 삶… 그늘이 없는 인생은, 제 아무리 잎이 화려하다해도 영양가 없는 쭉정이나 다름없다. 문학은 인생을 풍요롭게하는 나무다. 때론 풍성한 그늘 속으로서 우리를 쉼으로 인도하며, 지친 영혼에 감동을 불어넣어 주기도 한다. 책에는 풍요로운 정서, 인생이란 미로를 헤쳐나가는 지혜가 있다. 문학을 사랑하면서 (진정으로)절망해 하는 자 없고, 문학을 사랑하면서 (진정으로)교만에 빠지는 자 없다.
베토벤과 괴테가 만났을 때의 일화다. 함께 길을 걷다 귀족들이 다가오자 베토벤은 머리를 뻣뻣이 들었고, 괴테를 길을 비켜 공손히 머리를 숙였다. 베토벤이 (예술가의) 예지를 보여주었다면, 괴테는 예술가의 인격을 보여주었다. 음악이 직선적이라면, 글은 문장으로 감성을 움직인다. 자신만을 위한 글… 인격이 없는 문장은 공허하다. 우리가 문인이라고 부르는 자들은 유명한 작가들만은 아닐 것이다. 평생 변변한 작품하나 남기지 못했다해도 문학을 사랑하는 사람들이라면 모두 문인이다. 아니, 베스트셀러 작가보다도 오히려 음지에서 단 한편의 작품도 펴내지 못했다 할지라도, 문학을 사랑하는 마음이 있는 자들이라야 문인이다. 다만 자고 나면 여기저기서 책 냈다는 소리… 눈만 뜨면 문단에 가입했다는 소식… 모 잡지사다, 모 출판사다, 화려하게 덧칠된 책들이 넘쳐나다보니… 이제는 아예 너는 시인, 나는 문인… 문인이 범람하다 못해 다소 우습게 보이는 시대가 되어 버리고 말았지만, 음지에서 조용히… 문학 사랑의 마음을 간직하며, 한 알의 밀알이 되어 살고 있는 자들도… 우리에겐 모두 문인이다.
예전에 (한국에서) 한 집 걸러 우리 옆집에 문인이 살고 있었다. 소위 ‘왕대포집’라고 불리우는, 막걸리집 주인이었는데 현대문학지에 단편 소설을 발표하는, 한국문단 소속의 소설가였다. 배고픈 직업이 문인이라고는 하지만 정말 궁색하기 짝이 없는 삶을 살아가는 아저씨였다. 적어도 내가 생각하는 문인의 이미지와는 달라도 한참 달랐다. 어딘가 날카로운 인상… 안경을 걸쳐 쓰고 심각한 표정을 짓고 살아가는, 문인이란 모두 그런 고고한 예술가들인 줄만 알았다. 그때 아마도 나의 Wish List에서 문인의 이미지가 변질되기 시작했는지 모르지만, 문학을 사랑하는 작가? … 바로 밥 굶어 죽기 딱 알맞는 사람들이라는 것을 그때 알았다. 그런데 살아가면서 어쩌다 글을 쓰게 되었고… 그리고 또다시 대두된 화두가 ‘문인이란 무엇이냐’였다. 문인의 자격? … 문인으로 살아간다는 것… 그것은 정말로 아무나 할 수 있는 것이 아닐지도 모른다. 그것은 문인이란 그 시대의 지성이며, 선지자이어야 하기 때문이다. 글로서 감동을 주지 못한다면 글쟁이란 다만 광대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감동… 그것은 참으로 아무나 할 수 있는 것은 아닐 것이다. 현실보다는 이상을 사랑하는 마음… 불의에 항거할 줄 아는 양심의 치열함… 때론 져줄 줄 아는 넉넉함… 지성에 대한 목마름, 묵묵히 홀로 걷는 내면의 매력… 비록 무겁고 힘들어도, 詩人의 영혼은 감동이 있다.
오래 전, ‘지바고’란 영화가 인기를 끌자, (한국사회에서) 너도나도 의사가 되고자 하는 광풍이 일었었다. 왜 詩人 지바고가 아니고 의사 지바고였을까? 의사와 詩人의 차이점은 무엇이었을까? 되돌아가, 문학을 위해 인생을 맞바꾼자들은 무한한 감동을 준다. 음지에서 피어난 들국화처럼… 문학을 사랑하고, 문학을 위해 죽었던 그 수많은 세월… 아니, 그 많은 세월의 밑거름 없이 과연 진정한 문학이 탄생할 수 있었을까? - 눈물의 빵을 먹어보지 못한 자와는 인생을 논하지 말라- 괴테도 절망했던 인생… 그러기에 배고팠고, 얼굴에는 비록 상처의 그늘이 가득 주름져 있다 해도, 그래서 시인의 뒷 모습은 멋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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