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상대 투수 따라 좌우 타자 교대로 출전시키는 확률 게임
▶ 해당 선수는 들쑥날쑥 출전에 컨디션 조절 곤욕
이대호(오른쪽)와 스콧 서비스 시애틀 감독. [AP=연합뉴스]
연타석 홈런을 친 다음 날, 이대호(34·시애틀 매리너스)는 또 벤치에 앉았다.
이대호는 10일 워싱턴주 시애틀의 세이프코 필드에서 열린 미국 프로야구(MLB) 텍사스 레인저스전에서 메이저리그 진출 후 두 번째 연타석 홈런을 터트렸다.
2011년부터 2013년까지 3년 연속 10승을 넘긴 왼손 투수 데릭 홀랜드를 상대로 이대호는 2회 솔로 홈런, 4회 스리런 홈런을 터트렸다.
이날 하루 만에 이대호는 ‘아홉수’ 걱정할 틈도 없이 시즌 10홈런 고지를 밟았다.
정작 다음 날인 12일 텍사스전에서 이대호는 벤치에서 경기를 시작했고, 대신 주전 1루수인 애덤 린드가 그 자리를 채웠다.
대타로 나와 안타를 기록하긴 했지만, 이대호는 13일 선발 출전한 경기에서 메이저리그 진출 후 처음으로 삼진 3개를 당하며 4타수 무안타에 그쳤다.
1루수 이대호는 경쟁자인 린드와 비교했을 때 성적에서 빠질 게 없다.
이대호는 43경기에서 타율 0.296(108타수 32안타), 홈런 10개, 24타점, OPS(출루율+장타율) 0.907을 기록 중인 반면, 린드는 48경기에서 타율 0.247(158타수 39안타), 홈런 8개, 25타점, OPS 0.710에 불과하다.
린드와 비교했을 때 타율과 홈런 등 성적에서 앞서는 이대호가 연타석 홈런을 친 다음 날 경기에서 빠지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 해답은 ‘플래툰 시스템’에서 찾을 수 있다.
원래 군대의 소대를 뜻하는 플래툰은 전투에서 상황에 따라 다양한 병과를 지닌 병사를 이용하듯이, 야구에서도 상대 투수 상황에 따라 여러 선수를 기용하는 걸 의미한다.
◇ 가장 오래된 확률 게임…이대호와 린드 모두 적용 = 이대호는 오른손 타자고, 린드는 왼손 타자다.
작년 린드는 홈런 20개를 쳤는데, 왼손 투수로부터는 하나도 못 친 ‘반쪽짜리’ 선수다.
제리 디포토 시애틀 단장은 2009년 홈런 35개까지 기록한 린드의 장타력을 기대해 연봉 800만 달러에 계약했지만, 왼손 투수가 나왔을 때를 대비해 시범경기 오디션 끝에 이대호를 백업으로 낙점했다.
시애틀은 올해 오른손 투수가 나오면 린드를, 왼손 투수가 나오면 이대호를 기용하는 플래툰 시스템을 철저히 유지한다.
이대호가 12일 경기에 선발에서 제외된 건 텍사스가 오른손 투수 콜비 루이스를 선발로 냈기 때문이다.
주전 1루수인 린드 역시 플래툰 적용 대상이다.
린드는 지난달 26일 4안타에 홈런 2개 6타점을 올리고도 바로 다음 경기인 28일 미네소타 트윈스가 왼손 투수 팻 딘을 선발로 내자 이대호에게 자리를 양보했다.
선수는 볼멘소리할 수도 있지만, 이는 올해 시애틀이 고수하는 원칙이다.
플래툰 시스템은 메이저리그에서 가장 오래된 ‘숫자 놀음’이라고 볼 수 있다.
뉴욕 양키스를 이끌던 케이시 스텐젤 감독이 1949년 처음 도입했다고 알려졌는데, 벌써 70년 가까이 야구 상식으로 통한다.
올해 메이저리그 전체 타율은 0.252인데, 왼손 타자가 왼손 투수를 만났을 때는 0.236으로 떨어진다. 대신 왼손 타자가 오른손 투수를 만나면 0.260까지 올라간다.
문제는 천편일률적인 적용인데, 이대호는 오른손 투수 상대 타율(0.319)이 왼손 투수(0.298)보다 더 높다.
명단장으로 평가받는 디포토 단장과 비교하면 올해 처음 지휘봉을 잡은 스콧 서비스 시애틀 감독은 발언권이 약하다.
현지에서는 시애틀의 플래툰 고수가 서비스 감독보다는 디포토 단장 의견이라는 시각이 우세하다.
서비스 감독은 11일 이대호를 선발에서 제외하고는 “모든 한국인이 나 때문에 행복하지 않을 것”이라는 말로 이대호를 달래기도 했다.
이대호의 포지션 경쟁자인 애덤 린드. [AP=연합뉴스]
◇ 들쑥날쑥한 기용, 선수는 컨디션 조절에 애먹어 = 타격에는 사이클이 있다.
아무리 좋은 선수도 1년 내내 잘 칠 수는 없다.
선수의 타격 사이클을 면밀하게 관찰해 최고의 성적을 낼 수 있도록 유도하는 게 감독의 역할이다.
이대호는 플래툰 때문에 타격감이 정점을 찍었을 때 벤치를 지켜야만 했다.
10일 멀티홈런 뒤 11일 경기에는 대타로 나서 안타를 때렸지만, 선발로 복귀한 13일에는 메이저리그 진출 후 처음으로 하루에 삼진 3개를 당했다.
이대호는 지난달 5일 오클랜드 애슬레틱스전에서 연타석 홈런을 친 뒤, 바로 다음 경기에 빠졌다가 그때도 선발 복귀한 경기에서 4타수 무안타에 그쳤다.
좋은 컨디션을 유지하는 게 쉽지 않은 상황에서 홈런 10개를 친 이대호가 더욱 빛나는 이유다.
들쭉날쭉한 출전은 이대호뿐만 아니라 김현수·강정호 등 다른 한국인 선수도 경험한다.
최근 출전 경기를 늘려가는 김현수(28·볼티모어 오리올스) 역시 플래툰 적용 대상이다.
타율 0.333으로 100타석 이상 선수 중 팀 내 1위지만, 올해 왼손 투수를 상대로는 단 4번만 타석에 들어갔다.
김현수는 KBO 리그에서 왼손 투수 타율 0.296으로 나쁘지 않았지만, 메이저리그에서는 왼손 투수 공을 볼 기회조차 얻지 못한다.
주전 3루수인 강정호(29·피츠버그 파이리츠)는 지난달 7일 메이저리그 복귀 후 팀에서 경기 출전을 철저하게 관리한다.
복귀 직후에는 2경기 출전 뒤 하루 휴식을 하다가 최근에는 3~4경기에 연속 출전하며 출전 시간을 늘려간다.
한창 타격감이 좋을 때 벤치에서 경기를 지켜봐 아쉬울 때도 있지만, 피츠버그는 멀리 내다보며 강정호를 아껴 기용한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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