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네상스 시대에 로마 교황청의 성가대원이며 작곡가로 활동했던 그레고리오 알레그리는 1638년에 쓴 단 한 개의 작품으로 불멸의 이름을 남겼다. 교황청 시스틴 채플에서 가장 신비로운 음악으로 전해지는 ‘미제레레’다.
‘하느님, 우리를 불쌍히 여기소서’(Miserere mei, deus)란 뜻의 이 음악은 다윗의 참회시인 시편 51편에 곡을 붙인 것으로, 부활절 전 수난주간의 ‘테네브레’ 저녁미사에서 불리는 음악이다. 테네브레 미사는 촛불을 하나씩 꺼나가다가 ‘미제레레 메이’의 합창 속에 마지막 촛불이 꺼지면 교황과 추기경들이 제단 앞에 꿇어 엎드린 채 완전한 어둠 속에서 인간의 죄악과 그리스도의 수난을 묵상하는 예식이다.
알레그리의 ‘미제레레’가 처음 연주됐을 때 교황청은 즉시로 그 악보를 봉인했다. 너무 신비롭고 아름다워서 오직 교황청 내에서만 연주할 것과 일체의 외부 유출 금지를 명한 것이다. 이 때문에 일년에 한번 연주되는 그 음악을 듣기 위해서는 수많은 사람들이 바티칸까지 찾아가야 했다.
1770년 4월11일, 아버지와 함께 이탈리아 로마를 여행 중이던 14세의 모차르트가 테네브레에 참석했다. 시스틴 채플 성가대가 노래하는 ‘미제레레’를 들은 그는 돌아오자마자 음악을 외워서 악보에 옮겼고, 이틀 뒤 성금요일 테네브레 미사에 다시 가서 한번 더 듣고 확인한 다음 악보를 완성했다. 모차르트의 악보는 영국 음악학자 찰스 버니를 통해 다른 교황청 악보들과 함께 공개되었고 ‘미제레레’는 132년만에 처음 세상으로 나오게 됐다.
알레그리의 ‘미제레레’를 지난 5일 월트 디즈니 콘서트홀에서 로스앤젤레스 매스터 코랄(LAMC)의 연주로 들었다. 50여년 역사의 LA 매스터코랄이 이 곡을 연주하기는 처음이었을만큼 라이브로 듣기 힘든 곡이라 기대가 컸다.
당연한 얘기지만 라디오와 유튜브에서 들었던 것과는 천만배 차이가 났고, 그 감동은 말로 표현하기 힘들다. 5성부 합창단과 8명의 솔로이스트 그룹(원래 4명인데 이 공연에선 파트당 둘씩 배치)이 번갈아 아 카펠라(무반주)로 부르는 ‘미제레레’는 맑고 높은 하늘에서 천사들이 노래하는 것처럼 성스럽고 아름다웠다.
이 곡이 신비스런 느낌을 주는 것은 특별히 솔로 파트 때문인데, 여기서 제1소프라노가 높은 솔(G)에 이어 높은 도(C)까지 치솟은 음을 노래할 때면 듣는 사람의 영혼이 한껏 고양되면서 형언할 수 없는 경외심과 전율을 느끼게 된다. 보통 소프라노 음역인 솔이나 라를 넘어서 그보다 3음이나 높은 하이 C를 비브라토 없이 수직으로 올리는 것이다.
콜로라투라 소프라노라야 낼 수 있는 이 소리를 당시에는 카스트라토(거세된 남성소프라노)가 노래했을 것으로 여겨진다. 현대에 와서는 소년 소프라노나 여성 소프라노가 비브라토 없는 고음으로 처리하고 있으며, 이날 공연에서도 제1소프라노(자나이다 로블스, 애나 슈베르트)가 디즈니홀 천정을 일직선으로 뚫고 올라가듯이 시원하고 깨끗한 고음을 선사했다.
‘미제레레’는 알레그리 외에도 중세부터 현대까지 여러 작곡가들이 곡을 남겼다. 우연히도 지난달 같은 장소에서 구스타보 두다멜 지휘로 LA 필하모닉과 에스토니아 합창단이 연주한 현대 작곡가 아르보 파르트의 ‘미제레레’를 들을 기회가 있었다.
알레그리의 것과는 완전히 다른 신비함을 가진 이 작품은 합창과 솔로와 오케스트라가 각기 미니멀하고 투명한 음들을 수놓으며 35분간 특이한 영적 감흥을 전하는 인상적인 음악이었다. 보름 간격으로 2개의 ‘미제레레’를 비교하며 들을 수 있었던 것은 무척이나 희귀한 경험이라 하겠다.
사람의 목소리만큼 아름다운 악기는 없는거 같다. LA 매스터코랄의 연주회에 다녀올 때마다 관현악단 콘서트와는 또 다른 특별한 감동을 안고 온다.
미국 최고 수준의 전문합창단인 LA매스터코랄은 수년전 ‘무궁화: 샤론의 장미’를 세계 초연했고, 작년엔 백낙금의 ‘계승’을 초연했던 한인사회와 친숙한 합창단이다. 한인도 여러명 단원으로 활동하고 있으며, 이날 ‘미제레레’에서는 베이스 파트 솔로이스트로 이정욱씨가 노래했다. 노래 좋아하고 합창활동도 많은 한인들이 더 많이 찾아 감상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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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숙희 부국장·특집 1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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