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까이 지내는 분이 최근에 당한 얘기다. 집 근처에서 산책을 하는데 후드를 뒤집어 쓴 젊은 애가 다가오더니 어깨에 걸고 있던 핸드백을 낚아채며 밀쳤단다. 댓바람에 뒤로 자빠지며 엉치뼈가 나갔다. 소리소리 질러도 나타나는 사람은 없고 다행히 주머니속의 전화를 꺼내 911에 걸어 경찰을 불렀다.
엠블란스가 오고 핀을 세개나 박는 수술을 했다. 요즘 세상이 자꾸 컴퓨터가 발달해 도저히 감당이 안되어 앞으로 어떻게 사나 걱정이 태산같은데 그런 때는 쎌폰이 정말 요긴하구나 싶더란다.
얼마 전엔 미장원에 갔는데 누가 나를 다른 손님에게 소개하며 화가고 글도 쓴다고 했다. 나같은 노인이나 간혹 내 글을 읽을까 아무도 날 아는 이는 없다고 안심하고 퍼질러 앉아 손사래를 치는데 그 분이 전화기를 꺼내 몇 번 누르더니 ‘여기 있네!’ 하며 내게 보여준다. 어머나, 내 그림이 거기 있었다.
지난 봄에 설치한 것을 비롯해 내 손을 떠난지가 십수년은 되는, 그리운 옛 그림들도 거기 있고 잊고 있던 그림도 여럿 있었다. 게다가 나처럼 컴퓨터를 경외하는 수준의 내 친구들은 내 글을 어떻게 찾아 읽을 줄 몰라 나보고 쓴 걸 보내 달래서 매번 보내면서 면구스러워 죽겠는 판인데 이분은 무슨 재주로 내 글을 줄줄이 퍼내는지 그 분의 손가락이 신기같아 경이로울 지경이었다.
집에 돌아 와 나도 찾아보려 하는데 내 능력으론 찾아지지 않는다. 나의 지적 능력에 대해 깊히 절망을 느끼게 하는 순간이다.
내가 컴퓨터를 놓고 할줄 아는 건 오로지 글 쓰는 것과 그걸 신문사에 보내는 법, 그리고 간혹 소식 전해주는 친구의 이메일 체크가 전부다. 아니, 참, 유튜브를 통해 끝도 없이 들을수 있는 음악을 한없는 감사의 마음으로 듣는 거는 할 줄 안다. 누가 페이스북을 하재도 겁나고 누가 블로그를 만들래도 무섭다.
그런 주제에 공으로 음악 듣는다는 사실은 얼마나 황송하고 고마운지 이 세상에 사는 걸 뿌듯한 보람으로 느끼게 하는 샘물같은 수혜이다. 이렇듯 저승사자처럼 무서운 주인을 모시는 종년같은 심정으로 컴퓨터를 대하며 사는 판인데 드디어 크게 수업료를 냈다.
평소엔 컴퓨터에 바이러스라는 게 들어오면 그 당장에 전원을 끄고 내 방으로 도망가 문걸어 잠그고 남편이 살려 주러 오기만을 기다리는데 이번엔 당장 신문사에 원고가 가야 하는 절체절명의 시간이었다.
어찌 해보겠다고 알지도 못하는 주제에 혼자 이리저리 키보드를 누르다 드디어 왕창 걸려든거다. 이 세상에 컴퓨터에 바이러스라는 걸 심어 놓고 다니는 자들을 모조리 지구에서 내쫒을 방도는 없는 걸까.
중국의 문화혁명 같은 게 일어나 천안문 앞에 세워놓고 공개처형 할수는 없나. 너무도 무력한 짜증때문에 말도 안되는 상상을 혼자 하며 세상탓을 한다. 어떤 인간이 어떤 처지에서 그런 짓들을 할까? 대답은 한가지일 것이다. 돈. 이즈음의 세상은 온통 돈과 물질에 넋을 놓고 사는 것 같다.
컴퓨터를 고치러 오랜만에 쇼핑 몰에 갔더니 어찌나 많은 인파들과 물건들이 넘치는지 어지러울 지경이다. 하나를 갖은 사람은 또 하나가 더 갖고 싶고 십 불 짜리를 산 이들은 다음엔 무슨 수를 써서라도 백 불짜리가 갖고 싶다.
그리고 세상은 끈임없이 더 많은 걸, 더 빨리 갖으라고 선동하고 꼬드긴다. 남보다 더 많이 소유하는 게, 남보다 더 고급의 물건을 사는 게 성공한 삶이라고 끈질기게 주문을 외대는 것 같다. 의식주가 해결되는 소박한 수준에서 몸을 움직이고 자연을 바라보며 이웃과 교감하고 나누는 삶 속에서 행복을 찾으려는 의지는 보기 힘들다.
경제적으로, 사회적 지위로 떨어지면 모자란 이로 취급되는 사회 분위기에서 자신의 신조를 지키며 살기란 쉽지 않다.
일생을 거지로 산 디오게네스에게 어떤 이가 ‘조금만 비빌 줄 알면 저렇게 궁상맞게 살지 않을 수 있을 텐데..’ 하니‘소박한 삶을 살줄 알면 저렇게 비굴하게 살지 않아도 될텐데..’ 했단다. 선택은 각자의 몫이지만 사회가 갖고 있는 공동 가치관을 무슨 수로, 어떻게 건강한 방향으로 끌어 갈수 있는건지.. 마음이 무겁다.
<
최 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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