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팁을 받지 않습니다”, 노-티핑 1년 해봤더니…
▶ 요식업체‘조스 크랩색’ 실험 1년도 안돼 막 내려, 팁이 식대에 포함된 경우 공평배분에 의구심 가져, 관행의 높은 벽 실감
뉴포트비치에 위치한 조스 크랩색 체인. 조스는 미드웨스트 지역 18개 체인점에서 노-티핑 정책을 시도했으나 성공을 거두지 못했다.
외식을 할 때 가장 고민스런 대목이 팁이다. 주기는 주어야 할 것 같은데 식대의 10%면 되는지, 15%가 적정선인지, 아니면 20%는내놓아야 하는 것인지 헷갈린다.
특히 고급식당에서 모처럼 무리를 한 경우 내적 갈등이 더욱 심해진다. 후한 팁을 주어야 체면이 선다는 강박감과 비싼 밥 먹고 20%의 덤까지 얹어줄 필요가 있느냐는 실리적 속셈이 충돌을 일으키곤 한다. 요식업계라고 고객들의 복잡한 속내를 모를 리 없다.
전국적 조직망을 가진 대형 요식업체 ‘조스 크랩색’(Joe’s Crab Shack)은 지난해 11월 미드웨스트 지역의 18개 체인점에서 ‘실험적으로’ 팁을 받지 않기로 했다고 요란스레 공표했다.
당시 이 체인점의 모회사인 ‘이그나이트 레스토랑 그룹’(Ignite Restaurant Group)은 “팁은 낡은 구식 모델이며 고객들은 의무적으로 팁을 주지 않고서도 종전과 마찬가지로 멋진 음식과 훌륭한 서비스를 즐길 수 있다”고 장담했다.
종업원들의 임금을 올리기 위해 부득이 해당 체인점들의 메뉴가격을 인상했지만 인상폭은 평균 서비스 팁인 식대의 20%보다 훨씬 적다는 설명도 곁들였다.
하지만 8월부터 조용히 시작된 ‘실험’은 공식 발표가 나온 지 채 1년도 안돼서 막을 내렸다. 현재 노-티핑 정책을 고수하고 있는 업소는 중서부지역 18개 체인점 가운데 단 4곳에 불과하다.
사실 팁 제도는 철 지난 계급주의에 기반을 둔 구식 모델이다. 그러나 문제는 미국인들이 팁을 더 나은 서비스와 싼 음식값을 보장하는 결정적 요소로 잘못 인식하고 있다는 점이다.
USC 마셜 경영대학원의 조교수인 라스 페르너는 “실제로 대부분의 레스토랑에서 고객의 팁은 서비스에 거의 영향을 주지 않는다”며 “그러나 고객들은 팁으로 종업원의 서비스를 컨트롤할 수 있다는 착각에 사로잡혀 있다”고 지적했다.
코넬대학교 호텔경영대학원의 소비자행동 전문 교수인 마이크 린은 “음식점의 가격을 비교할 때 고객들은 팁을 고려하지 않는 일관된 경향을 보인다”고 말했다.
예를 들어 노-티핑 제도를 시행하는 대신 메뉴가격을 20% 올린 식당은 20%의 팁을 서버에게 제공하는 것이 관례인 다른 식당에 비해 훨씬 비싸다는 느낌을 주게 된다.
근년 들어 LA와 뉴욕 등지의 요식업체들은 다투어 노-티핑 제도를 도입했다. 홀에서 손님을 접대하는 서버뿐 아니라 키친에서 땀을 흘리는 숙수들에게까지 공평한 보상을 해주어야 한다는 취지에서다. 팁은 홀 서버에게만 돌아가지만 팁을 식대에 포함시키면 전체 종업원들이 공평하게 나눠가질 수 있다는 논리다.
하지만 오랜 관행인 팁을 없애기란 그리 쉽지 않아 보인다. 대형체인들이 팔을 걷어 부치지 않는 한 노-티핑 제도의 확산을 기대하기 어렵다.
이제까지 이른바 ‘전국구’ 식당체인 가운데 노-티핑제를 실험적으로나마 시도한 곳은 그나마 조스 크랩색이 유일하다. 조스는 32개 주에 체인망을 갖추고 있으며 캘리포니아에만 12개 매장이 포진하고 있다.
조스의 모회사인 이그나이트의 최고경영자 밥 메릿은 1분기 결산보고를 통해 “낡은 팁 제도는 분명 어느 시점에선가 없어져야 하지만 중서부 지역 매장에서 팁을 실험적으로 없애자 직원과 고객들이 떠나갔다”고 털어놓았다.
메릿은 “자체 조사 결과 조스의 고객들 가운데 60% 이상이 팁을 없애는데 불만을 표시한 것으로 나타났다”고 덧붙였다. 고객들이 노-티핑 제도를 싫어하는 이유에 대해서는 “서비스의 질을 통제할 수단이 없어진다는 점과 식대에 포함된 팁을 매니저가 종업원들에게 공평하게 배분해주지 않을 것이라는 불신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메릿은 다양한 방법으로 고객들에게 노-티핑제도의 작동원리를 설명해 주었지만 성과를 얻지 못했다고 말했다.
그는 또 노-티핑 제도를 실험적으로 실시한 18개 매장 가운데 4곳에서 이를 계속 시행하는 것은 “왜 일부 지역에서 통하는 제도가 다른 지역에서는 먹히지 않는지 구체적인 원인을 파악하기 위해서”라고 밝혔다.
UC 어바인의 경제학 명예교수인 리처드 맥켄지는 그 대답을 매니지먼트에서 찾았다. 매니저들이 철저히 서비스를 감독한다는 인식이 드는 곳에서는 굳이 후한 팁을 남기지 않아도 만족스런 서비스를 받을 수 있다는 믿음이 생기지만 그렇지 않은 곳에서는 팁으로 서버들에게 동기부여를 해야 한다는 생각이 들기 때문이라는 얘기다.
많은 선진국에서는 레스토랑이 훌륭한 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해 노력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며 고객들이 팁으로 서버들에게 동기를 부여해야 할 필요가 없다는 사회적 인식이 폭넓게 자리 잡고 있다.
특히 일본의 경우 서버에게 팁을 주는 것은 절대적인 금기에 속한다. 팁을 준다는 것은 담당 종업원이 최상의 서비스를 제공하지 않았다는 고객의 의사표시로 간주된다. 따라서 유달리 체면을 중시하는 일본에서 고객이 팁을 주려한 종업원은 완전히 낯을 구기고 만다.
호주, 중국, 프랑스, 이탈리아, 싱가포르와 한국, 스페인, 스웨덴, 스위스 등도 팁이 관례화되어 있지 않다.
미국 소비자들은 팁에 대해 상충되는 두 가지 마음을 품고 있다. 식당에서 받은 서비스에 대해서는 팁으로 답례를 하면서도 패스트푸드점에서 최저임금을 받아가며 죽어라 일하는 스탭에게는 전혀 팁을 주지 않는다.
머리를 손질해주는 미용사에게는 팁을 후하게 줘도 차를 고쳐주는 정비사에게는 보통 땡전 한 푼 주지 않는다.
요즘은 커피를 따라주거나 베이글을 구워주는 간단한 서비스 제공하면서 카운터에 동전항아리를 놓아두고 은근히 팁을 압박하는 업소가 늘어나는 추세다. 페이스북도 인기 포스트를 공유하는 사용자들을 대상으로 ‘디지털 팁 항아리’를 설치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차량공유서비스인 우버도 마찬가지다. 공개적으로는 팁을 기대하지도 요구하지도 않지만 고객의 성의를 절대 마다하지 않는다는 입장이다.
이에 대해 코넬대학의 린 교수는 “우버 승객들 모두가 기사에게 팁을 주는 것은 단지 시간문제에 불과하다”며 “누군가 시작하면 모두가 따라할 수밖에 없는 것이 팁의 작동방식이며 바로 이것이 미국 경제에서 팁 제도가 사라지지 않는 이유”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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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A타임스 본보특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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