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젊은 검사가 해도 해도 끝이 없는 격무에 시달리던 중 자살을 했다고 최근의 본국지가 전했다. 33세의 누가 봐도 전도유망하고 활달한 성격의 좋은 이였다고 한다. 대학입시 지옥을 벗어나고 잠시 후 고시준비에 매달려야했던 힘든 젊은 나날이, 가까운 장래에 검사직무가 쉬워질 희망까지 보이지 않자 너무나 인생에 대한 회의가 생겼으리라.
대학졸업을 해도 취업이 어려운 이 현실을 헤쳐 나가야 하는 이들만이 아니라 좋은 곳에 취직하여 잘하고 있는 능력 있는 이들에게도 젊은 날의 인생은 힘들다. 이 안타까운 뉴스를 보면서 몇 년 전 우리 동네의 공부 잘하기로 소문이 난 집안에서 형을 따라 하버드로 진학했던 똑똑하던 대학생이 뉴욕의 좋은 투자회사에서 여름인턴을 하고 가을학기에 대학에 돌아가 자살한 슬픈 소식을 접하면서 동네의 아이, 어른 할 것 없이 슬픔과 충격에 빠졌던 때가 다시 생각났다.
잘하고 못하고, 능력 있고 없고를 떠나서, 우리의 젊은 날은 힘들다. 그래서 주위의 친지나 이웃들 필자가 아는 거의 모든 이들이 젊은 시절을 그리워할지언정 다시 돌아가고 싶지는 않다고 말한다. 우리 모두의 젊은 나날은 너무 힘들기 때문이리라. 젊은 날에는 할일도 너무 많고 세상 모든 곳에서 도전이 몰려오는 시기다. 젊음으로 그 수없이 몰려오는 도전을 대처해 나가기는 하지만, 지나고 나서 되돌아보면 어떻게 그 일들을 헤쳐 오게 되었는지 까마득한 게 우리의 인생이기 때문이다.
좋은 환경에서 태어나 부유하고 쉬운 젊은 인생도 있지 않느냐며 소위 금수저를 입에 물고 태어난 이들 얘기를 한다면, 이들의 인생도 쉽지가 않다고 말하고 싶다. 세상이 젊은 날 너무 쉬우면, 사람들은 방종하게 되기 십상이고, 젊은이를 망치는 가장 쉬운 방법이 돈 많이 쓰라고 가져다 안기는 것이란 진리는, 몽테크리스토 백작의 에드몽 단테스가 옛날 젊은 시절 자기를 파멸시킨 원수들에게 복수하는데 썼던 기본 이론이다. 오만과 편견과 마약에 빠지는 함정이 바로 금수저 인생에 있기 때문이다.
젊은 시절에는 항상 자기가 하는 일보다 거기에 따른 보상이 적어보이고, 실제 적은 게 사실일 때가 많다. 그게 젊은 시절이다. 그런 시절을 겪어나갈 수 있도록 젊음과 에너지와 긍정적인 낙천적 사고가 되는 것이다. 지금 어려운 시절을 살고 있는 젊은이들에게 그 시절을 보내고 온 나이 든 사람들이 주는 지혜가 있다면, 단 두 가지 얘기밖에 할 것이 없다.
첫째는 “너 혼자 고생이 아니라, 같은 시절 같은 사람들이 모두 같이 겪는 것”이란 얘기다. 필자가 논산훈련소에서 신병교육을 끝내고 “아, 이제 기성부대에 가서 보통의 군대생활을 할 수 있겠구나” 하고 있을 때 모든 신병들이 무서워하던 하사관학교 차출이 떨어지고, 실제 인간으로 어떻게 이런 기합을 줄 수 있고 살 수 있을까 싶은 극한 상황의 하사관학교 훈련에서, 같은 처지에 있던 후보생들을 지탱해 주었던 것은 “나만 당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 동기 모두가 당하는 것”이란 위안이었다. 체력으로 견디는 것이 아니라 정신력으로 견뎌야하는 것이었다. 젊은 시절의 인생은 이런 것이라고 넘기고 살아야하는 것이 아니겠는가.
둘째, “이 모든 것 다 결국에는 지나가리라” 란 진리를 알고 있으면 좀 쉽다. 즐겁고 기쁜 것들도 지나가지만, 괴롭고 힘든 것들도 모두 지나가 버린다. 10여 년 전 런던에서 만난 기품 있던 어느 할머니의 얘기를 아주 감명 깊게 들었던 생각이 난다. 젊어서 우울증 있던 귀족출신 남편이 자살을 하고 혼자가 된 후, 남아연방에서 미모를 바탕으로 영화배우를 하던 금수저 인생에서 런던 템즈 강가 변두리 동네에서 B&B(조식제공 여관업)를 하면서 생활을 꾸려가게 되었지만 인생의 외경심을 버리지 않고 긍정적 체념으로 꿋꿋이 살고 있던 그 할머니는 아직까지도 필자가 잊기 힘들 정도로 훌륭한 정신을 가진 이였다. 80이 다 되어가는 나이에도 매력적으로 보이던 그 할머니가 “모든 건 지나간다”란 얘기를 너무도 실감 있게 했었다.
젊은이들이여, 지금 인생이 너무나 힘들다면, 모든 젊은이들이 다 그렇게 지나가야 할 인생이라고 생각하고, 오래지 않아 이 모든 게 지나간다고 다시 자신을 깨우치자. 그런데, 사실 말이지, 이렇게 살다 보면 이 힘든 날들도 지나간 다음엔 그리워지는 날이 오는 것이다. 인생이 다 그런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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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종열/ 페이스대 석좌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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