볼티모어 오리올스의 김현수가 드라마 같은 반전 스토리를 써나가고 있다. 지난해 말 프리에이전트(FA)로 볼티모어와 2년 700만달러에 계약해 한국프로야구(KBO)에서 FA 자격으로 메이저리그(MLB)로 직행한 최초의 선수가 된 김현수는 지난 2월 스프링 트레이닝부터 시작, 지금까지 빅리그에서 4개월여 동안 ‘롤러코스터 라이드’라고 불러도 될 만큼 감정의 깊은 계곡을 오르내려야 했다. 그의 스토리가 더욱 인상깊게 느껴지는 것은 그가 MLB라는 낯선 무대에서 시작부터 수직 추락하는 최악의 실패를 맛보며 차가운 바닥까지 떨어졌다가 짧은 시간 만에 불사조처럼 되살아났기 때문이다.
KBO 시절 김현수는 ‘타격기계’로 불렸던 선수였다. 한국프로야구를 대표하는 타자 중 한 명이었던 그가 FA로 메이저리그 진출에 나서자 볼티모어는 2년간 700만달러를 베팅해 그를 붙잡았다. 요즘 메이저리그 기준으로 보면 큰 계약이라고 할 수는 없지만 볼티모어로선 나름대로 ‘저비용 고효율’을 염두에 둔 투자였다. 당시 볼티모어는 코너 외야수에 확실한 주전급 선수가 없었고 대형 거포들은 많았지만 이들 앞에서 ‘테이블 세터’ 역할을 해줄 선수가 없다는 고민이 컸기에 KBO 10년 커리어 통산 타율이 3할이 넘고 통산 볼넷 수가 삼진보다 많은 ‘출루머신’ 김현수는 매력적인 옵션이었다.
결국 볼티모어는 그에게 마이너행 거부권까지 안겨주고 그를 붙잡았고 스프링 트레이닝이 시작되기 전에 구단 홈페이지 팀 명단에 일찌감치 김현수를 주전 레프트필더로 올렸다. 스프링 트레이닝 기간 중엔 클럽하우스로 비빔밥까지 배달시켰을 정도로 김현수가 낯선 무대에서 편하게 적응할 수 있도록 온갖 배려를 아끼지 않았다.
하지만 시범경기에서 23타수 무안타라는 ‘침묵행진’으로 출발한 김현수는 이후에도 극도로 부진한 모습을 벗어나지 못했다. 무엇보다도 안타는 물론 아웃 타구조차도 시원하게 외야로 뻗어나가는 공이 거의 없을 만큼 타구의 질이 좋지 못했다. 이로 인해 김현수에 대한 분위기는 시간이 지날수록 싸늘해졌고 조이 리카드라는 전혀 예상치 못했던 룰5 지명선수가 뜨거운 방망이를 휘두르며 대안으로 급부상하자 볼티모어의 분위기는 완전히 김현수로부터 돌아섰다. 김현수를 완전히 전력 외 선수로 분류하고 그 없이 시즌을 시작할 계획을 짜려 했다.
그런데 문제가 있었다. 바로 김현수가 쥐고 있는 마이너행 거부권이었다. 김현수가 거부하는 한 그를 마이너로 보낼 수 없었던 볼티모어는 벅 쇼월터 감독 등 수뇌부가 수차례 김현수를 설득했으나 통하지 않자 다양한 방법을 총동원해 김현수를 압박해왔다. 부정적 여론을 이끌어내는 언론플레이와 함께 심지어는 팀 명단에 주전 좌익수로 올라있던 김현수를 1루수 4번째 백업으로 묻어놓기까지 하는 등 심리적 압박을 가했다. 하지만 김현수는 끝까지 자신의 권리를 포기하지 않았고 볼티모어는 ‘울며 겨자 먹기’로 그를 개막 엔트리에 포함시킬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그로 인해 김현수는 가장 행복한 날이었어야 할 메이저리그 시즌 개막전날 선수 소개시간에 볼티모어 홈팬들에게 소나기 야유공세를 받는 참담한 대가를 치러야 했다.
그리고도 시련은 한동안 계속됐다. 김현수는 팀에 있었지만 거의 ‘투명선수’였다. 시즌이 시작된 후 첫 4게임 동안 전혀 필드를 밟지 못했고 4월 한 달 동안 단 6경기(선발 4)를 뛰는데 그쳤다. 나갈 때마다 출루하고 안타도 치며 높은 타율과 출루율을 보였으나 ‘벤치워머’라는 처지엔 변함이 없었다. 5월 하순까지도 그런 분위기는 달라질 기미가 없었다.
하지만 김현수는 어쩌다 한 번 오는 기회들을 그냥 흘려버리지 않으면서 꾸준히 기회를 노렸고 다른 선수들의 부진으로 지난 5월25일 휴스턴 애스트스로스전에 선발로 나서 2루타 2방 포함, 3안타 1포볼로 100% 출루한 이후론 뒤도 돌아보지 않는 맹렬한 질주로 순식간에 주전선수로 발돋움했다. 그 경기 이후 김현수는 지금까지 팀의 8게임 중 7게임에 선발로 나서며 타율 .385(26타수 10안타)에 2루타 3개, 홈런 1개, 1타점, 5득점, 4포볼을 기록하며 펄펄 날고 있다. 시즌 성적은 타율 .382, 출루율 .469로 KBO 시절 타격기계의 모습을 떠올려주고 있다. 불과 3주전만 해도 상상조차 하기 힘들었던 모습이다.
물론 아직도 김현수가 완전히 자리 잡았다고 안심할 단계는 아니다. 하지만 이미 최악의 시련을 통과한 그이기에 그 어떤 도전이나 시련도 두려울 이유가 없다. 부활한 ‘타격기계’ 김현수의 앞에 탄탄대로가 열리고 있는 느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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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동우 부국장·스포츠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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