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처투성이의 경선이 끝나가는 2016년 대선의 그림은 전혀 감동적이지도, 희망적이지도 못하다. 공화·민주 양당의 ‘사실상 대선후보’ 도널드 트럼프와 힐러리 클린턴 역시 온통 상처투성이다. 사상 가장 비호감도 높고 신뢰도 바닥으로 낙인찍힌 두 사람 중 한 명을 차기 대통령으로 택해야 한다는 현실에 미국인 절반이상이 “무력감을 느낀다”고 시카고대학 설문조사에서 답했다. 민주당보다는 공화당이 더 심해 60%에 달한다.
두 후보에 대한 부정적 시각이 강해지면서 예년보다 훨씬 뚜렷해 진 것이 ‘제3후보’에 대한 갈증과 기대다. 트럼프를 ‘공화당의 얼굴’로 도저히 용납할 수 없는 보수진영의 ‘네버 트럼프’ 운동도 제3후보론에 계속 불을 지피고 있다. 월스트릿저널-NBC 뉴스 설문조사에선 47%가 제3후보에 투표를 고려한다고 답했다. 표밭에 만연한 불만이 늘 관심권 밖에 버려져 있던 제3당에게도 문을 열어주고 있는 것이다 : “트럼프도, 힐러리도 싫다면…”
미 대선사상 제3당 후보가 당선된 적은 없었다. 1968년 민권법 통과에 항의하며 무소속으로 출마한 조지 월러스가 앨라배마 등 남부주들에서 승리하며 46명 선거인단을 확보한 이후 3당 후보는 단 하나의 주에서도 승리하지 못했다.
제3후보의 존재감이 언제나 미미했던 것만은 아니다. 당선은 못했어도 판세를 좌우하는 역할을 했던 것은 여러 차례였다.
1912년 공화당 후보지명에 실패하자 제3당으로 출마한 테오도르 루스벨트는 거의 30% 득표율을 기록, 그 결과로 공화당 표가 갈리면서 민주당 우드로 윌슨을 당선시켰고 1992년에는 보수성향의 무소속 후보 로스 페로의 19% 득표가 민주당의 빌 클린턴이 현직 대통령 조지 H.W. 부시를 이긴 요인의 하나로 분석되었다. 반대로 2000년 진보성향의 녹색당 후보 랄프 네이더의 3% 득표는 공화당 조지 W. 부시와 뜨거운 접전을 벌였던 민주당 앨 고어 패배의 원인이 되었다.
규모나 조직 면에서 녹색당보다 한 발 앞서 민주·공화 양당에 이어 3위 정당으로 꼽히는 자유당은 매번 대선후보를 선출해 왔지만 대선 판세에 영향력은커녕 후보의 얼굴조차 잘 알려지지 않은 무명의 존재였다.
그런데, 금년엔 좀 달라졌다. 지난 주말 플로리다에서 열린 자유당 전당대회가 전례 없는 주목을 받았다. “마약을 합법화하고 운전면허를 없애라, 국세청도, 식품의약국도, 연방교육부도 폐지하라”는 극단의 자유지상주의를 신봉하는 정당의 행사답게 박수갈채 못지않은 야유도 많았고 별난 차림새의 대의원들, 단상의 누드댄스까지 소란스런 해프닝이 곳곳에서 이어졌다.
글자그대로 “개인의 자유가 넘쳐났던” 전당대회에서 자유당은 금년 공화당이 하지 못한 ‘그 어려운 일’을 해냈다. 풍부한 행정경험과 신뢰도를 갖춘 대선후보 지명에 성공한 것이다.
뉴멕시코 주지사를 역임한 게리 존슨(63)과 매사추세츠 주지사 출신의 윌리엄 웰드(70)를 대통령과 부통령 후보로 선출했다. 둘 다 재임당시 인기와 신뢰도가 높아 여유 있게 재선되었던 전 공화당 주지사들이다. 자유당의 대선 성적으로는 최고였던 2012년 1% 득표율을 올렸던 존슨에겐 두 번째 대권도전이고 웰드는 불과 몇 주 전 자유당에 합류했다.
자유당의 핵심은 개인의 자유 선양이다. 남을 해치지 않는 이상 개인의 기본권 행사를 막지 못하도록 정부 역할의 최소화를 지상과제로 삼고 있다. 존슨과 웰드는 재정적 보수로 균형예산을 실현시키고 사회적 자유이념으로 진보성향 강한 주민들을 끌어안았던 중도파 주지사들이었다. 당연히 골수 자유당원들의 회의적 시각이 만만치 않았고 이들의 후보지명도 순조롭지는 않아 몇 차례의 표결을 거쳐야 했었다.
다른 정당들처럼 선명한 이념과 실용적 선택 사이에서 분열하고 대립했지만 ‘자유로운 영혼’의 대의원들도 44년 자유당 역사상 가장 비옥한 선거토양에서 경쟁력 갖춘 후보를 지명할 수 있는 일생일대의 기회를 외면하지는 못했다. 더구나 존슨은 5월 중순 폭스뉴스등 2개의 전국여론조사에서 군소정당 주자로는 드물게 10%의 지지율을 기록했다.
존슨-웰드 티켓의 ‘재정적 보수와 사회적 진보’는 일반 유권자들이 상당히 선호하는 공약이다. 그러나 구체적으로 들어가면 기존 주요정당의 표밭 잠식은 쉽지 않다. 자유당의 작은 정부와 감세 공약을 지지하는 공화당 유권자들도 국방예산 43% 삭감에 낙태권·동성결혼·마약합법화 정책을 선뜻 지지하기는 힘들 것이다. 힐러리를 싫어하는 버니 샌더스 지지자들이 불평등을 해소시켜주어야 할 정부의 역할을 대폭 축소하고 자유무역과 금융규제 완화를 주창하는 자유당에 표를 줄 수 있을까.
제3당 후보들에겐 구조적 장벽도 여전히 높다. 50개 주 투표용지에 이름 올리기에서부터 모금과 조직구축에 이르기까지 산 넘어 산이며 5개 전국여론조사에서의 평균지지율이 15%를 넘지 못하면 대선후보 TV토론에도 참석하지 못한다.
아무리 예측불허의 이상한 선거의 해라고 해도 2016년 대선 역시 제3당 후보의 당선 가능성은 제로다. 그러나 트럼프는 절대 찍기 싫고, 반대 정당 힐러리에게도 표를 줄 수 없는 공화당 유권자들에겐 자유당이 월스트릿저널의 표현대로 “괜찮은 대안”이 될 수도 있다. 양당의 본선대결이 치열해질 경합주에선 승패를 가르는 변수도 될 수 있다.
접전의 와중에서 트럼프의 백악관 점령 행진에 제동을 걸게 된다면 존슨-웰드 티켓은 미 정치사에 성공적 제3당 후보의 하나로 기록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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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 록 주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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