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에서 드라마 ‘한 지붕 세 가족’이 히트했던 20여년 전 미국에선 ‘빈 둥지(Empty Nest)’가 큰 인기를 모아 대조를 이뤘다. 본디 빈 둥지는 장성한 자녀가 대학에 진학하거나 결혼해 나간 후 덩그렇게 남은 부모 집이나 그 부모의 상실감을 비유하는 말이지만, 시트콤 드라마 ‘빈 둥지’는 ‘한 지붕 세 가족’ 못지않게 많은 사람이 복작거리며 아옹다옹한다.
‘한 지붕…’이 서울 도심의 한 골목집에 함께 사는 세 가구의 희로애락을 그린 반면 ‘빈 둥지…’는 홀아비 소아과 의사가 빈 둥지로 되돌아와 더부살이하는 두 이혼녀 딸과 좌충우돌하는 내용이다. 재혼하려는 딸들이 허구한 날 온갖 남정네들을 불러들이지만 소란만 피우고 실속이 없다. 딸들이 출가해 아버지 집이 다시 빈 둥지가 될 날은 부지하세월이다.
‘한 지붕 세 가족’을 닮은 드라마 ‘빈 둥지’가 한때 시청률 1위까지 오르며 7년간 방영된 뒤 4반세기가 지난 요즘 미국사회에 그대로 재현되고 있다. ‘밀레니얼 세대’(18~34세) 3명 중 1명(32.1%)이 여전히 부모 집에 얹혀살고 있다고 여론조사 기관인 퓨 리서치 센터가 엊그제 발표했다. 더군다나 ‘늙은’ 밀레니얼(25~34세)들까지도 19%가 그렇다고 했다.
밀레니얼 그룹 중 정식결혼이나 사실혼(동거)으로 부모 집을 떠난 사람은 31.6%였다. 미국인들의 결혼 상황이 집계되기 시작한 1800년 이후 결혼적령기인 이 연령그룹 중 부모 집에 얹혀사는 자녀가 독립해 나간 자녀를 앞지른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지난 2000년까지도 부모 집을 떠난 자녀(43%)가 부모 집에 얹혀사는 자녀(23%)보다 거의 2배나 많았다.
‘캥거루족’ 또는 ‘부머랭 세대’로 불리는 ‘부모 슬하’의 성인자녀들이 요즘 크게 늘어나는 현상은 근본적으로 독신 젊은이들이 많은 세태를 반영한다. 지난 1960년 미국 젊은이들의 결혼 중간연령은 남자 22세, 여자 20세였고 25세 이상 젊은이 10명 중 1명이 미혼이었지만 요즘 결혼 중간연령은 남자 29세, 여자 27세에 25세 이상 5명 중 1명이 미혼자다.
젊은이들이 결혼을 미루거나 아예 포기하는 이유는 뻔하다. 치열한 생존경쟁 풍토 속에서 공부하고 취업하고 승진하는데 매달리느라 새 가정을 꾸리는데 관심 가질 겨를이 없다. 먹고살기 어려운 젊은이들이 많은 것도 결혼 지연과 캥거루족 양산의 주요인으로 꼽힌다. 1960년 84%에 달했던 밀레니얼 세대 연령층의 취업률이 2014년엔 71%로 줄어들었다.
캥거루족 현상은 한국에서도 두드러진다. 2010년 조사에서 전체 대학졸업자 중 절반 이상(51%)이 캥거루족이었다. 이들의 45.7%가 부모 집에 얹혀살았고, 그중 10.5%는 용돈까지 받았다. 나머지 5.4%는 따로 살지만 부모에게서 용돈을 받았다. 전체 가구의 4분의1 이상(26.4%)이 25세 이상 미혼자녀와 함께 살았다. 1985년엔 그 비율이 9.1%에 불과했다.
하지만 아리송한 게 있다. 캥거루족 말고 ‘나홀로족’도 늘어난다는 점이다. 혼자 사는 미국인 젊은이는 2012년 3,200여만명으로 집계됐다. 여성이 절반을 약간 넘었다. 전국의 1인 가구 비율은 1970년 17%에서 2012년엔 27%로 늘어났다. 4가구 중 하나 이상이 나홀로 가구라는 뜻이다. 시애틀의 나홀로족은 12만1,000명, 1인 가구 비율은 무려 40%다.
미국뿐이 아니다. 스웨덴은 전체 가구의 거의 절반(47%)이 1인 가구이고 영국(34%), 일본(32%), 이탈리아(29%), 캐나다(28%)가 뒤를 잇는다. 한국도 마찬가지다. 서울의 1인 가구 비율은 2000년 16.3%에서 지난해 미국과 똑같은 27%로 늘었다. 2030년엔 30.1%까지 늘어나 오래전부터 감소 추세인 전통가구(부부와 자녀로 구성)를 제칠 것으로 예상된다.
나는 한국에 갈 때마다 처가에서 셋째 처남(비혼)의 신세를 많이 진다. 지천명(50)을 지난 그는 캥거루족도, 부머랭족도, 나홀로족도 아니다. 일산의 자기 아파트를 전세주고 옛 둥지를 지키며 혼자서 수십년 째 홀어머니를 돌본다. 결혼 후 부모와 함께 사는 자녀들은 ‘신 캥거루족’으로 불린다는데, 내 처남은 거기도 해당되지 않으니 뭐라고 부를지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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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여춘 시애틀지사 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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