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1월초 바바라 박서 캘리포니아 주 연방 상원의원이 2016년 선거 불출마를 선언했을 때 전국의 미디어들은 캘리포니아 정계의 지각변동을 예고했다 - 1992년 이후 처음으로 캘리포니아에 ‘새 연방 상원의원 탄생!’ 로컬정계에서 자리바꿈을 거듭하며 전국무대 진출을 기다려온 ‘젊은’ 정치가들에게 드디어, 24년 만에 ‘기회의 문’이 열린 것이다.
캘리포니아는 민주당이 꽉 잡고 있는 ‘딥 블루’ 스테이트이지만 젊은 민주당 정치인들에겐 전국무대 진출이 가장 어려운 지역에 속한다. 수십년 경력의 원로들이 견고한 성벽처럼 건재하면서 병목현상을 지속해왔기 때문이다.
연방상원에는 75세 박서와 함께 83세 다이앤 파인스타인이, 하원엔 최초의 여성 연방하원의장을 역임한 76세 낸시 펠로시, 주청사엔 4선 주지사 78세 제리 브라운 등이 왕성하게 활동 중이다. 그러나 가장 나이 적은 박서가 비켜섰으니 머지않아 올드 세대의 은퇴 물결이 이어지면서 민주당 젊은 세대에겐 정계진출의 문이 활짝 열릴 것이다.
박서의 퇴장선언과 함께 야심찬 캘리포니아 차세대 정치스타들이 후임 주자로 줄줄이 거론되었다 : 개빈 뉴섬 부지사, 카말라 해리스 주 검찰총장, 에릭 가세티 현 LA시장, 안토니오 비아라이고사 전 LA시장, 연방하원의원 로레타 산체스와 하비에 베세라에 더해 억만장자 환경운동가 톰 스테이어 등 민주당 스타들과 함께 콘돌리자 라이스 전 국무장관과 대럴 아이사 하원의원 등 공화당 인사들의 가능성까지 점치느라 미디어들이 한동안 부산했다.
후끈 달아올랐던 상원선거는 그러나 첫 관문인 예선을 눈앞에 둔 현재, 너무 조용―하다. 그 어느 해보다 반전 심하고 소란스런 대선에 빛이 가려지기도 했고 거론되었던 정치스타들 대부분이 물밑 저울질 결과 나서지 않기로 결정했기 때문이기도 하다. 무려 34명의 후보가 출마했지만 알려진 이름은 극소수에 불과하다.
워싱턴에서 캘리포니아를 대변할 ‘최고의 보이스’를 24년 만에 바꾸는 중대사인데 유권자 상당수는 누가 나왔는지조차 잘 모른다. 관심도 없고 정보도 부족하다. 열기는커녕 불꽃조차 찾기 힘든 맥 빠진 선거다. 몇 년 전 바뀐 예선 제도도 한 가지 이유로 지적된다.
캘리포니아 예선에선 대통령을 제외한 연방 및 주의원 선출 시 정당별 경선이 없다. 2010년 프로포지션 14 통과로 ‘톱-투 프라이머리(Top-two primary)’가 시행되면서부터다. 양극화된 정계의 교착상태를 풀기위한 열린 선거, 오픈 프라이머리인데 수많은 후보들이 난립한 경쟁에서 살아남아야 하는 예선이어서 ‘정글 프라이머리’로 불리기도 한다.
당적에 상관없이 1,2위 두 명만 본선에 진출, 같은 당 후보끼리 본선에서 맞붙을 수도 있다. 이미 2014년 연방하원 7개 지역구에서 발생한 상황으로 연방상원 선거에선 아직 없었다.
현재 상원 예선 ‘정글’의 선두권은 둘 다 민주당 여성 공직자인 카말라 해리스 주 검찰총장(51)과 10선 연방 하원의원 로레타 산체스(56)다. 4월의 필드 여론조사에서 해리스가 27%로 1위, 산체스가 14%로 2위를 기록했다. 가장 많았던 응답은 ‘미정’ 혹은 ‘다 싫다’로 무려 48%에 달했다. 그래도 공화당이 한자리 지지율로 거의 무명에 가까운 자당 후보들 중 한명을 택해 표를 몰아주는 대반전을 시도하지 않는 이상 두 후보가 본선에 진출할 것이다.
두 사람은 공통점도 많지만 차이점도 뚜렷하다. 둘 다 유색인종 이민 2세다. 해리스는 인도출신 어머니와 자메이카 출신 흑인 아버지 사이에서 태어났고 산체스는 멕시칸 이민의 딸이다.
오클랜드에서 태어나 샌프란시스코에서 검사장을 역임한 해리스의 강력한 지지층은 북가주 베이지역 표밭이고 남가주에서 태어나 오렌지카운티가 지역구인 산체스는 라틴계 표밭에선 38% 대 17%로 해리스보다 앞서 있다. 고학력 흑인들이 해리스의 강력 지지층이라면 저학력 저소득의 근로계층에선 산체스의 지지율이 만만치 않다.
이민개혁, 최저임금, 대학학자금, 환경보호 등 민주당 주요 이슈에 대한 두 사람의 정책방향은 어슷비슷하다. 눈에 뜨이는 차이는 기질이다. 신중하고 정확한 해리스는 논란 이슈에 대한 입장표명에 너무 몸을 사린다는 지적을 받고, 솔직하지만 즉흥적인 산체스는 경솔한 언행으로 이번 캠페인 시작 후에도 벌써 여러 번 논란에 휩싸였다.
현재 입지는 ‘미모와 지성을 겸비한 민주당의 미래’로 각광받는 해리스가 단연 유리하다. 높은 지지율에 더해 선거자금도 산체스의 3배나 되는 970만 달러나 모았고 주 민주당과 브라운 주지사의 공개지지도 확보했다. 2위에 희망을 걸고 산체스를 겨냥하는 공화당 후보들도 해리스의 1위는 인정했는지 공격조차 하지 않는다.
11월엔 좀 달라질 것이다. 두 사람이 예상대로 본선에 진출한다면 완전히 새로운 선거전이 펼쳐진다. 예선에서보다는 산체스의 입지가 강해질 수 있다. 공화당 후보가 없는 상태에서 보수와 무소속 표밭이 진보적인 해리스보다 중도성향 강한 산체스에게로 기울 가능성도 다분하고 해리스 대 산체스의 대결로 압축될 경우, ‘첫 라티나 연방 상원의원’의 새 역사를 꿈꾸는 히스패닉 표밭의 열기가 뜨거워질 수도 있고…본선은 예선보다 한결 흥미로워질 것이다.
2016년 연방상원 선거로 패기만만했던 ‘진보의 투사’ 바바라 박서의 시대가 막을 내리면서 해리스든, 산체스든, 캘리포니아 전국정치의 세대교체가 그 첫 걸음을 내딛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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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 록 주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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