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가 대통령이 될 가능성은?”
올해 초 만해도 이 질문의 대답은 “설마” 였다. ‘설마’라기 보다는 ‘불가능’이라는 표현이 맞을 것이다. 미국인들이 어디로 튈지 모르는 트럼프를 대통령으로 뽑는다는 것은 상상조차 힘들었다.
주요 언론들은 트럼프를 얼뜨기나 미치광이 정도로 취급하며 끌어 내리기에 열을 올려 왔다. 하지만 이런 뭇매에도 트럼프의 공화당 대선 진출은 확정적이다. 이제는 트럼프가 민주당 힐러리 클린턴 전 국무장관의 고지를 넘어 대통령이 될 것이라는 우려(?) 섞인 예상이 쏟아져 나오고 있다.
트럼프를 비웃어 왔던 주변국조차도 그들이 내뱉은 ‘막말’을 걷어 들이느라 분주한 모양새다. 엊그제 발표된 여론조사에서 트럼프가 클린턴을 45%대 42%로 3% 포인트 앞선 것으로 나타났다.
지난1월 가상 대결이후 처음이다. 비호감도에서도 트럼프는 하락하는 반면 클린턴은 더 높아지는 추세다.
이대로라면 트럼프가 미국 대통령에 당선되는 ‘이변’도 가능해진다. 기자는 지난 2차례의 칼럼에서 트럼프의 공화당 경선 승리를 점쳤었다. 급변하는 세계정세에서 강한 미국을 갈망하는 미국인, 경제에 발목 잡힌 중산층의 절규가 트럼프에게 힘을 몰아줄 것이라는 예상이었다.
이 때문에 한 선배 기자로부터 ‘제정신이 아닌 트럼프 지지자’라는 오해를 받아 ‘절교’(?)를 선언당하기도 했다. 얼마전 워싱턴포스트의 유명 칼럼리스트는 트럼프가 대통령 후보가 된다면 자신의 쓴 칼럼이 게재된 신문을 먹겠다고 호언장담했었다.
그런데 공화당 유력 후보들이 모두 중도 포기해 트럼프가 사실상 대통령 후보로 확정되자 약속을 지킨다며 신문을 9가지 요리에 섞어 먹는 코미디 같은 일도 벌어졌다.
왜 언론들은 민초들 사이에 퍼져나가는 트럼프 대세론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있을까. 트럼프의 자질 부족으로 인한 미국의 미래를 걱정해서 일 것이다. 하지만 한가지 중요한 사실을 놓치고 있다.
바로 민심이다. 지금 미국인들 특히 중산층 사이에는 전례 없는 위기감이 팽배해 있다. 불경기를 거치면서 빈곤층으로 밀려난 중산층이 너무나 많아 졌다. 불경기가 풀렸다고는 하지만 한번 밀려난 이들이 예전의 중산층 지휘를 되찾기는 불가능해 보인다.
유럽에서 터지는 테러가 남의 일 같지가 않은데다가 이웃 멕시코에서 벌어지는 마약 전쟁과 무법천지가 곧 미국으로 전파될지 모른다는 두려움에 휩싸이고 있다. 미국의 10년 넘는 전쟁의 틈 속에서 이득을 챙겨 미국의 목을 조르고 있는 중국의 도전 역시 화풀이 할 데 없는 중산층의 분노를 더욱 들끓게 만든다.
혁신적 변화를 찾으려는 중산층에게는 트럼프의 거침없는 발언이 희망의 메시지처럼 들릴 수밖에 없다. 이것은 단지 공화당만의 문제는 아니다. 민주당의 유력 대선 후보였던 클린턴 역시 사회주의자로 총칭되는 버니 샌더스(버몬트) 상원의원에게 발목을 잡혀 있는 것도 이런 위기감과 무관하지 않다. 샌더스는 전국민 메디케어 시행 등 부의 평등 분배를 외치며 많은 중산층과 젊은층의 인기를 끌고 있다.
샌더스 바람 역시 진보 중산층의 반란의 표시로 봐야 한다. 오는 11월8일 미국인들은 트럼프와 클린턴중 하나를 선택해야 한다. 하지만 둘 다 미덥지는 않다. 클린턴이 대통령이 된다고 해서 미국이 더 좋아질 것 같지는 않다. 대통령의 아내로 또 상원의원, 국무장관 등 고공 행진만 거듭했던 클린턴이 발아래 중산층의 민심을 이해할 수 있을까 걱정이다.
월가 연설 한차례에 수십만달러씩 받아 부를 축척해 왔고 국가의 중대사를 개인 이메일과 일반 전화로 보고 받으면서도 무엇이 잘못된 것인지 조차 모르는 그가 민심을 제대로 읽을지 의문이다.
그래서 트럼프에 기대를 거는 미국인들이 늘어나는 지도 모르겠다. 목숨 바쳐 도와줘도 미국의 멱살을 움켜쥐는 ‘배은망덕’의 국제 정세, 빈곤층으로 곤두박질치는 중산층을 더욱 괴롭히는 미국의 제조업 붕괴 등등.
산적한 국내외 문제를 해결해 주고 국가의 격과 이익을 되찾아 줄 수 있다고 미국인들이 믿는 후보가 미국의 차기 대통령 자리에 오를 것이 분명하다. 올 가을 대통령 선거가 더욱 흥미로워 지는 이유가 이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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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섭 부국장·기획취재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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