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산로 주차장엔 으레 화장실이 설치돼 있다. 사람들이 많이 찾는 인기 등산로엔 남녀용이 구분돼 있지만 외진 등산로에선 한 개의 화장실, 아니면 ‘허니 버켓’(이동식 화장실))을 남녀가 공용한다.
장거리 등산로엔 정상 부근에 역시 남녀공용의 간이변소(toilet)가 마련돼 있기도 하다. 판자 변기에 걸터앉아 주변의 경관을 감상하며 ‘자연과의 대화’를 즐긴다.
몇 년 전 한 인기 등산로 주차장 안의 레인저 오피스(산림 관리국) 공중화장실에서 민망한 꼴을 겪었다. 다급한 상황을 해결하고 나왔는데 화장실 밖에서 줄지어 기다리고 있던 사람들이 눈을 똥그랗게 뜨고 나를 바라봤다. 모두 여자였다. 당황해서 뒤를 돌아보니 화장실 문에 ‘Women’이라는 사인이 붙어 있었다. 밖으로 나오면서 뒤통수가 매우 뜨거웠다.
나는 순전히 실수였지만 그런 민망한 꼴을 일상적으로 겪는 사람들이 있다. 성전환자(트랜스젠더)들이다. 남자로 태어났지만 성인이 된 후 성전환 수술을 통해 여자가 된 사람들과 그 반대 경우의 사람들이 직장이나 식당 등 공중화장실에서 남녀용 어느 쪽을 시용해야하는지를 놓고 지금 연방정부와 노스캐롤라이나 주정부가 맞고소를 벌이며 싸우고 있다.
인권단체는 성전환자들이 자기 성 정체성에 따라 편안하게 화장실을 선택할 수 있어야한다고 주장하지만 ‘남자 같은 여자’는 남자화장실을 사용하라는 주장도 거세다. 그래서 남자화장실을 사용한다는 한 수염 난 여자는 소변기 앞에 서지 못하고 칸막이 안에 들어가야만 하며 소변을 끝낸 뒤에도 일찍 나가기가 민망해 한동안 주저앉아 있어야 한다고 토로했다.
보수지역인 노스캐롤라이나의 팻 맥크로리 주지사(공화)는 성전환자들이 현재의 성 정체성과 상관없이 출생증명서에 기록된 성별에 따라 공중화장실을 사용토록 규정한 주의회 법안에 지난 3월 서명했다. 진보성향의 오바마 행정부는 이 ‘화장실 법’이 1964년 제정된 인권법에 위배된다며 지난 9일까지 이를 폐지하도록 연방 법무부를 통해 강력하게 압박했다.
맥크로리 주지사는 인권법 제정 당시엔 성전환자라는 개념 자체가 없었다며 오바마 행정부가 인권법을 자의로 확대 해석한다고 연방법원에 제소했다. 로레타 린치 연방 법무장관(노스캐롤라이나 출신)은 인권법이 인종, 민족, 출신국가, 종교 등은 물론 성별에 따른 차별도 명백하게 금지하고 있다고 반박하고 역시 연방법원에 맥크로리 주지사를 즉각 제소했다.
노스캐롤라이나만이 아니다. 미시시피와 인디애나도 비슷한 상황이다. 진보성향이 짙은 워싱턴 주에서도 노스캐롤라이나 식 화장실법 제정을 위한 주민발의안(I-1515)을 올 11월 선거에 상정시키려는 서명운동이 벌어지고 있다. 지난 주 오바마 대통령은 이런 화장실법을 시행하는 모든 주에 연간 수십억 달러 규모의 연방 교육지원금을 중단하겠다고 통보했다.
화장실 싸움은 전부터 있었다. 1960년대 흑인 인권운동 시위자들은 백인전용 화장실에 진입하려다가 총에 맞아 죽었다. 1980년대엔 동성애자들이 공중화장실에서 왕따 당했다. 게이의 배설물이 에이즈를 전염시킨다는 속설 때문이었다. 심지어 장애인들도 1990년 관계법에 의해 휠체어 진입 시설이 의무적으로 갖춰지기 전에는 공중화장실 출입이 어려웠다.
미국의 성전환자는 70여 만명으로 추정된다. 전체 인구의 0.03%다. 소수인권의 존중도 좋지만 화장실법까지 만들어 사용자들을 교통정리 하는 건 우습다. 올림픽 10종 경기 챔피언인 철인 브루스 제너가 여자인 케이틀린 제너로 둔갑해 지난해 톱뉴스가 됐지만 그녀가 남자로 되돌아가기를 원한다는 루머가 돌고 있다. 화장실 사용의 불편 때문은 아닌 것 같다.
화장실이 하나뿐인 등산로 주차장에선 성차별 시비가 없다. ‘초이스’가 없기 때문이다. 도시의 공중화장실 논란도 간단히 해결할 수 있다. 화장실 문의 ‘남’ ‘여’ 표시를 없애는 것이다. 누구나 빈 화장실에 들어가 용변을 볼 수 있다. 내가 겪었던 민망한 꼴도 없을 터이다. 이미 뉴욕의 일부 대학과 공공기관들은 이런 식으로 성차별 갈등을 불식시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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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여춘 시애틀 지사 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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