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가 한강(46) 에게 맨부커상(Man Booker International Prize)을 안긴 ‘채식주의자’
소설가 한강(46)에게 맨부커상(Man Booker International Prize)을 안긴 '채식주의자'는 데버러 스미스의 번역으로 작년 1월 영국 포르토벨로 출판사에서 영문명 '더 베지터리언'(The Vegetarian)이라는 제목으로 출간됐다.
또 올해 1월에는 호가드 출판사에 의해 같은 제목으로 미국 독자들에게도 선을 보였다.
문학적 뉘앙스를 잘 살린 스미스의 수준 높은 번역은 맨부커상 수상에 큰 역할을 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하지만 작품의 문학성이 따라주지 않는다면 아무리 뛰어난 번역도 소용없다. '채식주의자'는 영문판 출간과 동시에 주목을 받았다. 뉴욕타임스와 가디언 등 미국과 영국의 유력 언론들은 "한국 현대문학 중 가장 특별한 경험", "감성적 문체에 숨이 막힌다", "미국 문단에 큰 파장을 일으켰다" 등의 찬사를 쏟아냈다.
◇ 폭력 주제로 전세계 질문 던진 '채식주의자'
'채식주의자'는 한강의 세번째 장편 소설이다.
2004년 계간 '창작과비평'에 처음 소개된 '채식주의자'는 '채식주의자', '몽고반점', '나무 불꽃' 등 소설 3편을 하나로 연결한 연작 소설집이다. 이중 '몽고반점'은 2005년 이상문학상을 수상했다. 단행본은 2007년 출간됐다.
'채식주의자'는 한 여자가 폭력을 거부하기 위해 육식을 멀리하고, 그러면서 죽음에 다가가는 이야기다. 소설은 주인공의 남편, 형부, 언니 등 3명의 관찰자 시점에서 서술된다.
주인공 영혜는 폭력에 대항해 햇빛과 물만으로 살아가려고 하고, 스스로 나무가 되어간다고 생각한다. 한강은 결국 정신병원에까지 입원하게 되는 영혜라는 인물을 통해 인간의 폭력적 본성에 대해 집요하게 탐구한다.
한강은 지난 2월 서울 성북구 스웨덴대사관저에서 열린 제41회 서울문학회에서 '채식주의자'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설명한 바 있다.
그는 "인간은 선로에 떨어진 어린아이를 구하려고 목숨을 던질 수도 있는 존재이지만 아우슈비츠 수용소에서 잔인한 일을 저지르기도 한다"며 "인간성의 스펙트럼에 대한 고민에서 소설을 시작했다"고 말했다.
이어 "4년 6개월에 걸쳐 쓴 소설은 우리가 폭력과 아름다움이 공존하는 세계를 견뎌낼 수 있는가에 대해 질문한다"며 "대답을 찾아내는 것이 아니라 질문을 완성하고 싶었다"고 덧붙였다.
전문가들은 '채식주의자'는 폭력이라는 보편적 주제를 한강 특유의 서정적인 문장으로 풀어낸 작품이라고 입을 모은다.
문학평론가 정과리 연세대 국문과 교수는 "'채식주의자'는 인간의 오래된 미적 본능인 탐미주의를 극단까지 추구하면서 다른 한편으로 인간 욕망의 추함을 극단적으로 거부하는 태도를 보여준다"며 "두 개의 상반된 태도를 똑같은 강도로 이끌어 가면서 소설적 긴장감을 극대화한다"고 말했다.
이어 "더 일찍 조명받아야 하는 작품"이라며 "한국 문학의 특수성을 전세계인 보편성으로 연결하는 교량과 같은 역할을 했다"고 강조했다.
◇ 英 번역가가 만들어낸 또다른 '채식주의자'
비(非) 영연방 작가의 작품을 대상으로 하는 맨부커상 인터내셔널 부문은 작가와 번역가에게 공동으로 수여된다. 그만큼 번역이 중요하다는 의미다.
올해 맨부커상 선정위원회는 '채식주의자'를 영어로 옮긴 영국인 번역가 스미스에게 특히 주목했다. 선정위원회는 최종후보(shortlist) 여섯 작품을 발표한 뒤 "21살에 처음 한국어를 배운 28살의 번역가가 최종 후보에 오르는 기염을 토했다"고 밝히기도 했다.
그만큼 한강의 문학성은 스미스라는 뛰어난 번역가를 만나 해외에서 빛을 발했다는 것이 세간의 평가다. 해외에서 출간된 한강의 작품 '채식주의자'와 '소년이 온다'는 스미스가 직접 번역을 맡았다.
한강 역시 "스미스는 작품에 헌신하는 아주 문학적인 사람이다"라며 "좋은 번역자를 만난 것이 행운이었다"고 밝혔다.
영국의 명문 케임브리지대학을 졸업한 스미스는 영국에 한국어를 전문적으로 하는 번역가가 없다는 사실을 알고 21살의 나이에 직접 한국어를 배웠다.
그는 런던대학교 소아스(SOAS)에서 한국학 석사·박사과정을 밟았다.
한강의 '채식주의자'에 매료된 스미스는 책의 앞부분 20페이지를 번역해 영국 유명 출판사 포르토벨로에 보냈고, 결국 출간으로 이어졌다. 그는 출간 후 아는 출판사와 평론가, 독자에게 이메일을 보내 직접 홍보에 나서기도 했다.
스미스는 연합뉴스와의 이메일 인터뷰에서 "당시 영국에서 한국어 전문 번역가가 없는 걸 알고 틈새시장을 노렸다"며 "이전까지 한국인을 만나거나 한국 음식을 먹어본 적이 없는 제가 한국어를 선택한 건 지금까지 미스터리"라고 밝혔다.
또 "좋은 작품은 영어로 번역됐을 때도 훌륭한 필요가 있다"며 "한국에 한강과 같은 세계적 수준의 작가가 있다는 걸 알린 것이 뿌듯하다"고 덧붙였다.
그는 현재 제3세계 문학을 영국에 소개하는 비영리 출판사 틸티드 악시스를 이끌고 있다.
한강에 이어 안도현, 배수아의 작품의 번역하고 있는 스미스는 이미 한국 문단에서도 유명인사다.
그는 한국문학 번역과 관련해 자신의 철학을 뚜렷하게 밝히기도 했다.
스미스는 한국문학번역원 주최 세미나에서 "한국어와 같이 소수 언어권에서 온 책들은 소위 '다른 문화로의 창'과 같은 진부한 문구로 포장돼서 출간된다"며 "저는 그런 점을 지양하고 문학서로만 홍보하고 싶다. 문학성이 뛰어난 작품을 한국을 들먹이며 마케팅하고 싶지 않다"고 강조했다.
그는 다음 달 열리는 서울 국제도서전 참석차 한국을 방문한다.
<연합뉴스>
댓글 안에 당신의 성숙함도 담아 주세요.
'오늘의 한마디'는 기사에 대하여 자신의 생각을 말하고 남의 생각을 들으며 서로 다양한 의견을 나누는 공간입니다. 그러나 간혹 불건전한 내용을 올리시는 분들이 계셔서 건전한 인터넷문화 정착을 위해 아래와 같은 운영원칙을 적용합니다.
자체 모니터링을 통해 아래에 해당하는 내용이 포함된 댓글이 발견되면 예고없이 삭제 조치를 하겠습니다.
불건전한 댓글을 올리거나, 이름에 비속어 및 상대방의 불쾌감을 주는 단어를 사용, 유명인 또는 특정 일반인을 사칭하는 경우 이용에 대한 차단 제재를 받을 수 있습니다. 차단될 경우, 일주일간 댓글을 달수 없게 됩니다.
명예훼손, 개인정보 유출, 욕설 등 법률에 위반되는 댓글은 관계 법령에 의거 민형사상 처벌을 받을 수 있으니 이용에 주의를 부탁드립니다.
Close
x