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에서 사시다가 근 삼십여년만에 한국으로 다시 귀향하신 큰언니가 전화를 하셨다.전화속에서 언니는 울고계셨다.

큰언니보다 세살 아래인 작은 언니가 치매기가 있어서 요즘 정신이 오락가락 한다는 것이었다.거기다 올캐까지 폐암 말기여서 오늘내일 한다는 것이다.

나도 그말을 들으면서 무엇에 한대 맞은듯 잠시 멍해졌다.항상 씩씩하셔서 웬만한 일에는 눈도 깜짝않던 큰언니신데, 언니가 꺼억꺼억 우신다면 이건 보통 일이 아니었다.

큰 언니는 올해 구십이 되셨다.지난 가을 네 식구의 김장 까지 혼자 하실만큼 큰언니는 건강하신분이다.그렇던 큰언니가 지난해 늦가을 암 진단을 받고 수술을 하셨는데,그곳에 있던 환자 가운데 제일 연장장자이신 큰언니만 수술후 곧 퇴원을 하셔서 모두의 부러움의 대상이었다고 들었다.다행히 다른 장기에는 퍼지지 않아서 일체 항암 치료나 어떤 약도 드시지 않았다고 의사들도 다 놀랐다고 한다.

큰언니는 수십년간 매일 한시간 정도를 걸으셨다.음식도 작은 공기에 한공기씩 늘 소식을 했지만,그녀의 건강 비결은 매일 일찍 일어나고 규칙적인 생활과 규칙적인 운동,그리고 긍정적인 마음을 가지고 사신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우리 형제는 내 위에 언니 둘과 오빠와 막내인 나까지 네명이었다.약 이년전 오빠가 제일 먼저 이 세상을 하직했다.일생 골초였던 오빠는 죽기전엔 폐가 완전히 망가졌다고 한다.그런데 자신이 죽고난후 올캐가 간접 흡연으로 페암에 걸린 것이다.

몇달전 전화로 올캐는 이젠 오빠가 떠나자 밥해 줄 사람도 없고 자신이 제일 편하게 살아 ,동네나 슬슬 한바퀴 돌면서 먹고 싶은것 사먹고 자신만큼 팔자가 편한 사람은 없을것이라고 자랑 아닌 자랑을 늘어놓았었는데,차음엔 폐암에 걸렸다는 그 소식이 믿기지 않았다. 우리집 여자들은 모두 만만치 않은 일생을 살았다.옛날 말로 팔자가 드세다고나 할까.

올캐는 못난 오빠때문에 우리 집에 시집오자마자 우리집이 망해서,온갖 궂은일을 다하면서 슬하의 두 아들을 키웠다.청주에 사는 큰언니가 인천에 살고 있는 올캐를 찾았을때 올캐는 이미 가망이 없다고 어떤 초라한 요양원에 버려지다시피 있었다는 것이다.

큰 언니는 큰 병원에 한번도 데려가지 않은 올캐의 두 아들들이 괘씸하다고 마구 분해하셨다.그 말을 들으면서 올캐가 불쌍해서 내 가슴도 무너져 내리는 것 같았다.내가 삼년간 한국에 나가 살때,작은 언니 내외와 오빠네 내외가 한달에 한번씩 나를 찾아 청주에도 오셨고,인천 송도에도 오셨다.그들은 마치 그날을 소풍가는 날을 기다리는 아이들처럼 그렇게 기다리다가 오셔서 나는 그때마다 있는 솜씨 없는 솜씨 다 내서 상다리가 부러져라 차려주면,작은 언니와 형부는 소주도 겻들여 그렇게 맛있게 잡수셨다.

식성이 좋은 올캐는 남은 음식도 아깝다고 다 먹고 설거지는 늘 올캐몫이었다.그분들이 오면 나는 늘 봉투에 월급날처럼 섭섭찮케 용돈을 드려서 그들이 좋아하는 모습을 보고 내 마음은 늘 기쁘고 흡족했다.내가 인천에 사는 올캐를 만나러 가는 날이면 올캐는 늘 나를 골목길에서 기다리곤 했다.

“누이!나는 누이가 이 세상에서 제일 좋아!”그렇게 말하며 수줍게 웃던 내 올캐,그녀는 내가 갈때마다 연안 부두에 가서 내가 좋아하는 비싼 꽃게를 사서 대접을했다.

작은 언니는 전 남편에게서 낳은 세아이들을 수십년간 보지 못하고 살아서 그게 늘 마음에 한으로 남아 아마 술을 마시게 됐나보다.얼마전 그 아이들이 어떻게 연락이 닿아서,그들이 재회를 하는 날 큰언니도 그곳에 가셨다고 했다.큰딸인 혜수라는 애는 우리집 과수원에서 태어났다.

그애는 신기가 있어서 일찌감치 집을 떠나 강원도 어딘가에서 살고 있었는데 슬하에 피붙이 하나 없이 여기저기 떠돌며 살았다고 했다.다행히 둘째인 아들애가 무역업을 해서 잘산다며 큰 언니도 그애가 주는 용돈을 받아왔다며 그렇게 신통해하셨다.내가 대학을 다닐때 걸음마를 하던 그꼬마는 눈이 유달리 커다랗다는 것만 기억에 남는다.

가족이지만 나는 그 들을 길에서 만난다면 아마 모르고 지나칠 것이다.그동안 얼마나의 세월이 흘렀나!또 그 세월동안 작은 언니는 한많은 삶을 살면서 이제 수십년 동안 보지 못하던 아이들을 만났는데 그들을 제대로 알아보기나 했을까.”누구세요?”라고 하며 물어보았을까?이렇듯 인생은 삐거덕 거리며 맞지 않는 시간속에 수레바퀴처럼 돌아간다.

그 옛날 시집올때 몸이 호리호리하고 얼굴이 유난히 하얬던 올캐는 그 모진 세월을 살아가며 몸은 축나고 어느듯 죽음의 그림자만 찾아오고 있다.

이제 그들이 얼마나 더 살지 나는 모른다.다만 내가 사랑하던 사람들,내 핏줄이 하나 둘씩 이 세상을 떠난다는 사실만이 부정할수 없고 또 그 사실이 슬프고 허망해 나도 하염없는 눈물이 나온다.

얘!이제 너와나만 남는것 같구나!너는 절대 나보다 먼저 가면 안된다”큰 언니가 목이 메어 전화로 하신 말씀이다.

언니와 통화를 끝내며 나는 문득 생각했다.더 늦기 전에 나는 곧 귀국을 해야 할것 같다.슬픈 이별을 위해서---후회하지 않기 위해서---.

<김옥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