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oomsday(최후의 심판일)를 맞았다.’ ‘그에게는 승리의 한 주지만 공화당과 미국으로서는 비극의 한 주다.’ ‘2016년 5월3일은 160년 역사의 위대한 공화당이 사망한 날이다.’ 도널드 트럼프가 공화당 대통령후보로 확정되자 미국의 주류 언론들이 보인 반응이다.
‘천년 영화를 자랑하던 로마가 야만인의 침공을 받았다. 풍전등화의 상황을 맞이한 것이다. 끝까지 저항할 것인가. 아니면 야만인에게 협력을 할 것인가.’
분노한 일부 당원들은 당원증을 불사른다. 부시 대통령 부자를 비롯한 당 지도부는 트럼프지지를 거부하고 있다. 실망. 분노, 충격. 비애…. 트럼프 승리 이후 공화당이 맞은 상황을 워싱턴포스트의 유진 로빈슨은 게르만족 침략에 로마가 망하기 직전의 그 때 분위기에 비유했다.
공화당뿐이 아니다. 미국 사회는 허탈상황에 빠졌다. 세계는 경악가운데 미국 대선을 바라보고 있다. 8년 전 사상 최초로 흑인 대통령을 선출한 미국이다. 그 미국의 공당이 트럼프를 대선 후보로 뽑았다니.
동시에 터져 나오고 있는 것이 어쩌다가 사태가 이 지경에 이르게 됐는가 하는 한탄성의 손가락질이다. ‘부시가 당초 트럼프를 과소평가하지 않았더라면…’, ‘당 지도부가 보다 능동적으로 대처했더라면…’ 등등의.
그 손가락질에서 빠진 대상이 있다. 트럼프지지 유권자들이다.
“테러리스트의 가족을 죽일 수도 있다.” “멕시코 이민자들은 강간범들이다.” “…그까짓 고문쯤이야.” 뱉었다 하면 막말이다. 온통 자기자랑에 거짓말도 서슴지 않는다. 육두문자는 보통이고, 외교문제에는 무지를 드러낸다. 그런 트럼프는 결코 대통령후보가 되어서는 안 된다.
언론마다 내세운 주장이다. 귀가 아플 정도로 되풀이되고 또 되풀이 된 경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에게 표를 던졌다. 그리고 기어이 트럼프를 공화당 대통령 후보로 만들었다. 그 일편단심 트럼프지지 유권자들에게는 비난이 돌아가지 않고 있는 것이다. 왜.
1%가 부를 독점하고 있는 사회에서 그들은 정반대편에 있다. 그들은 세계화의 피해자다. 직장을 잃었다. 빈곤에서 헤맨다. 교육수준이 낮은 블루컬러 백인들이 그들이다. 그들은 분노했다. 그 분노가 트럼프 지지로 나타났다.’- 트럼프현상에 대한 일반적인 설명이다.
왜 그들에게 비난이 돌아가지 않은 것인가. 일종의 피해자(victim)로 간주되면서 동정심이 앞섰기 때문이다. 과연 그럴까. 실상을 들여다보면 반드시 그렇지도 않다는 분석이다.
우선 트럼프지지 유권자 숫자가 그렇다. 극도로 최소한으로 잡아도 1,000만이 훨씬 넘는다. 직장을 잃었다. 모든 것을 잃었다. 그 한을 ‘분노의 표’로 표출했다. 있을 수 있는 이야기다. 그 같은 처지에 놓인 사람 수는 그런데 아무리 많이 잡아도 그 수치에 크게 미달된다.
트럼프 공화당 후보를 확정지은 인디애나의 유권자 동향 분석도 그렇다. 제조업 종사자가 많은 곳이 인디애나 주다. 이 주의 실업률은 그러나 5%에 불과하다. 이 인디애나 예선에서 트럼프는 대학졸업 이상 학력에 연 소득 10만 달러 이상 유권자 표의 60%를 얻었다.
그러니까 분노한 근로계층 백인유권자들의 반란이 트럼프현상을 불러왔다는 분석은 허구일 수도 있다는 이야기다.
무엇이 그러면…. 미국의 유권 층, 특히 공화당 유권 층 저변에 흐르고 있는 일종의 니힐리즘에서 그 원인을 찾아지는 것이 아닐까. 그 니힐리즘이 미국 시스템에 대한 무조건적인 반감, 반(反)사회적 감정으로 표출되면서 트럼프지지로 응축되고 있다는 거다.
무엇을 말하나. 품위, 정직, 관용, 공정 등의 가치관이 무너지고 있다는 사실이다. 이와 함께 공격을 받고 있는 것이 ‘정치적 올바름’(political correctness)으로, 공적 공간에서 서슴지 않고 내 뱉는 막 말에 오히려 환호하는 트럼프 유권 층의 정서가 바로 이를 대변하고 있다.
그 미국의 정치문화를 스피겔지는 유치원 수준의 저급성과, 마피아, 포르노문화의 뒤범벅으로 혹평했다. 한 마디로 미국은 정치적 도산은 물론 도덕적 도산 상태를 맞고 있다는 것이 트럼프 현상에 빗댄 진단이다.
미국의 대선가도에서 벌어지고 있는 이 해괴한 사태에 국제사회도 당혹감을 금치 못하고 있다. 트럼프의 ‘막가파’ 식 언행 때문이 아니다. 그 트럼프가 상당 수 미국 유권자의 지지를 받고 있다는 사실에서다.
주한미군을 철수시키겠다. 나토에서 탈퇴하겠다. 일본과 한국의 핵우산을 거두어들이겠다. 트럼프의 발언이다. 그 발언이 그냥 나온 게 아니라는 것이 국제사회의 시각이다. 안으로 움츠러들고 있는 그 미국의 유권자들이 내고 있는 목소리라는 것이다.
2013년 5월3일은 미국 정치사에 있어 여러 가지로 기억되는 날이 될 것 같다. 미국 민주주의가 뭔가 불길한 방향을 향한 변곡점을 이룬 날이 되는 게 아닐까 하는 것이 그 하나다. 그리고 미국의 국제적 위상이 급격히 추락하는 그 시발점이 되는 날이 될 수도 있다는 것이 또 다른 이유다.
Oh, God bless America! 정말이지 기도가 절실하다는 느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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옥세철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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