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A에 한국 외교 공관이 처음 문을 연 것은 1948년 11월21일이었다고 한다. 대한민국 정부가 수립되고 얼마 되지 않았던 시기다. 위치가 브로드웨이와 6가 인근이었으니 지금의 다운타운 한복판에 자리 잡고 있었던 모양이다. 이후 현재의 윌셔 건물로 이전한 1957년까지 LA 총영사관의 초창기는 다운타운 시대였다. 외교부의 공식 기록에 나와 있는 내용이다.
그간 LA 총영사관에는 초대 공관장 민희식 총영사부터 모두 20명의 총영사가 거쳐 갔다. 어제 새로 부임한 이기철 신임 총영사가 21대다. 해외 최대 한인사회인 LA 지역의 위상 때문에 LA 총영사직은 그 무게감도 상당한데, 역대 LA 총영사들은 군인 출신도 있었고 현지인 발탁 케이스도 있었지만, 대부분은 외교부의 고참 외교관들이 부임하는 게 관례였다.
그중 기자로서 만나본 LA 총영사가 모두 8명이었는데, 15대였던 김명배 총영사는 아직도 가장 기억에 남는다. 서울 법대 출신의 직업 외교관이었던 김 전 총영사는 이른바 ‘발총’(발로 뛰는 총영사)으로 유명했다. 당시 남가주 한국학원 살리기, 리버사이드 도산동상 건립, 4.29 장학재단 정상화 등 한인사회 현안들을 발 벗고 나서서 챙기고 성공시켜 그런 별명을 얻었다. 그러다보니 한인사회의 신망도 높아 ‘명총’으로 불리기도 했다.
그런 그는 통상 3년인 총영사 임기를 절반밖에 채우지 못하고 브라질 대사로 이임했다가 은퇴했는데, 그 배경에 처가 쪽이 당시 야당 총재의 인척이라는 이유로 정부 관계자의 오해를 받은 게 작용했다는 비화를 담은 회고록을 나중에 내기도 했다.
LA 총영사관에서 유일하게 현지인 출신으로 발탁됐던 19대 김재수 전 총영사도 한때 ‘발총’ 소리를 들었다. 아무래도 현지에 친숙하다보니 한인사회를 부지런히 다니며 일하는 모습이 도드라졌는데, 그러나 당시 보은 인사 논란도 있었던 만큼 ‘현지인 총영사’ 실험이 성공이었는지, 실패였는지는 의견이 분분했다.
총영사가 어떻게 일하느냐가 한인사회에 미치는 영향은 무시할 수 없다. 그래서 총영사의 됨됨이와 업무 스타일을 한마디로 평가하는 별칭은 ‘발총’ 말고도 많았다. ‘만총’은 별다른 일은 안하면서 툭하면 관저에서 사람들 불러서 만찬이나 하는 ‘파티 총영사’를 일컫는, 별로 좋은 말은 아니었다. 사무실에만 처박혀 있다고 해서 ‘방총’, 본국 정권의 눈치만 본다고 해서 ‘눈총’ 소리를 들은 총영사도 있었다. 대체로 ‘소통’이 부족했던 총영사들은 상당수가 일을 제대로 하지 않았다는 평가를 받았다.
부임 2년 만에 본국으로 귀임한 김현명 이임 총영사에 대한 평가도 본격 나오고 있다. 개인적인 스타일을 떠나서, 그의 재임 기간 중 LA 총영사관이 일 잘 한다는 소리를 못 들었던 건 분명해 보인다. 한미동포재단 분규 중재 문제도 그렇고, 특히 서류미비 한인들의 최대 민원이었던 영사관 ID의 운전면허증 신청을 위한 신분증 인정을 제대로 해결하지 못했다. 더구나 총영사가 이임 직전 전례 없이 스스로 관저에서 대규모 이임 행사를 가지면서 인사를 받느라 손님들을 줄을 세우는 등 뒷말을 남긴 것도 좀 씁쓸하다.
외교관들은 재외국민을 보호하고 민원을 해결하면서 동시에 대한민국의 국익을 위해 열심히 발이 닳도록 뛰어야 하는 게 임무다. 하지만 그동안 LA 총영사관은 중간 간부들이나 일선 영사들이나 공공서비스 정신으로 무장하고 현지 한인들의 문제와 불편 해결을 위해 열심히 뛰어보겠다는 자세보다는 대체로 복지부동이라는 느낌이 강했다.
신임 이기철 총영사는 주 네덜란드 대사 등 요직을 거쳐 LA 부임 전 외교부 본부의 재외동포 및 영사 업무 총괄 책임자인 재외동포영사대사 직을 맡았었다. 그가 올해 초 한국에서 한 인터뷰를 보니 “31년간의 외교관 생활을 하면서 외국에서 어려움에 부닥친 국민을 돕는 일은 외교관의 가장 보람된 특권”이라는 말을 했다고 나와 있다. 또 네덜란드 대사 재직시 현지 투자청이 주말 한글학교 임차료 지원비를 삭감한 것을 복구하고, 한국에 관한 기술이 전혀 없었던 현지 교과서에 한국 발전상을 소개하는 내용이 들어가도록 노력한 일이 가장 뿌듯했다며 “한인사회의 지원이 없었다면 불가능했다. 외교관은 동포사회와 늘 소통해야 한다는 것을 새삼 느꼈다”고도 했다고 한다.
신임 총영사가 LA에서도 이같은 자세로 일한다면 총영사관에 변화의 바람이 불어올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해볼 수 있겠다. 그가 부임 전 미리 LA 한인회장에게 전화를 걸어왔다는 말도 들리는 걸 보니 소통에 소극적이지는 않아 보인다. 앞으로 신임 총영사의 행보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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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종하 사회부장·부국장 대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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