힐러리 클린턴과 도널드 트럼프에게 뉴욕은 “홈 스윗 홈”이었다. 뜨겁게 달아오르고 있는 2016년 대선의 양당 선두주자로 대표적 뉴요커에 속하는 이들에게 홈 타운은 19일 경선을 통해 그 어느 때보다 절박했던 인상적인 승리를 선사했다. 예상된 승리였지만 최근 몇 주 2위들의 거센 도전으로 침체에 빠지면서 얼마쯤은 초조했던 양 진영 모두에게 기대이상의 압승이었다.
트럼프는 영리한 전략으로 야금야금 대의원을 챙겨가던 테드 크루즈를 제압하면서 공화당 경선의 주도권을 다시 장악했고, 힐러리는 여성과 흑인 표밭의 강력한 지지를 재확인시키며 버니 샌더스의 연승행진을 차단하는데 성공했다.
표밭의 분노에 편승하는 선동적 게릴라전으로는 승리할 수 없음을 뒤늦게 깨닫고 선거조직에서 자신의 언행까지 ‘변신’을 꾀한 트럼프는 뉴욕 압승을 동력삼아 막판 총력전에 돌입할 것이다. 2위 크루즈와 3위 존 케이식의 유일한 희망인 ‘중재 전당대회’ 반란의 성공률이 낮아졌다는 의미다. ‘정의의 사도’답지 않은 네거티브 인신공격까지 동원해가며 힐러리의 텃밭에서 역전승을 노렸던 샌더스의 ‘정치혁명’ 돌풍도 약화될 것이다. 민주당의 대의원 계산이 사실상 경선의 마무리로 해석되기 때문이다.
비슷하게 압승을 거두고 함께 선두 입지를 굳히기 했지만 힐러리와 트럼프의 향후 석 달의 예보는 상당히 다르다.
힐러리는 일단 ‘맑음’이다. 이제 본선을 향해 시선을 돌릴 수 있게 되었다. 19일 밤 환호하는 지지자들을 향해 “승리가 눈앞에 보인다”고 외친 힐러리의 연설은 과장이 아니다. 머리로는 실용적인 힐러리를 지지할 수 있어도 가슴으로는 샌더스의 이상주의에 열광하는 표밭을 끌어안아야 하는 최우선 과제를 의식, “우리에겐 분열보다 단합시킬 것이 훨씬 많다”며 샌더스 지지층을 향한 호소도 잊지 않았다. 앞으로는 샌더스의 어젠다를 최대한 수용하면서 표밭의 열기를 이어가는 ‘긍정적’ 캠페인에 열중할 수도 있을 것이다.
트럼프에겐 아직 갈 길이 멀다. 가파른 길에서 고된 날들이 계속될 것이다. 경선이 끝나기 전에 대선후보 지명에 필요한 ‘매직넘버’인 전체 대의원의 과반수를 확보해야 7월18일 클리브랜드에서 열리는 공화당 전당대회에서 확실하게 당 후보가 될 수 있다. 그러려면 앞으로 남은 15개주 경선에서 연승에, 압승을 거듭해야 하는데 대의원 ‘함정’과 트럼프저지 군단이 곳곳에서 그를 막고 있는 것이다.
지난 한 달 크루즈에게 얻어맞고 비틀대며 선두주자 트럼프가 깨달은 것은 허술한 조직, 막말의 선동, 미디어를 이용하는 음기응변으로는 결코 이길 수 없다는 사실이었다. 노련한 정략가를 기용, 조직을 재정비했고 새로운 전략을 세우면서 자신의 트레이드마크인 거칠고, 원색적이고, 무례한 언행도 자제했다. “거짓말쟁이 테드”에서 “크루즈 상원의원”으로 라이벌의 호칭이 바뀌었고 즉흥적이며 장황했던 평소의 승리연설이 경제에 포커스를 맞춘 간결한 스피치로 정제되었다. “대선 후보답게”라는 새 참모의 조언을 따른 것이다.
본격적으로 뛰어든 대의원 싸움에서 확실한 승리를 거두기 위해서다. 트럼프는 앞으로 392명의 대의원만 추가하면 매직넘버에 도달한다. 남은 15개 주 경선 대의원의 60%를 확보해야 하는데 전혀 쉬운 일이 아니다. 3파전 경선에서 60% 압승도 어려운데 압승을 거둔다 해도 주에 따라 각기 다른 복잡한 대의원 규정이 발목을 잡는다. 26일 북동부 5개주 경선에서 대의원 수 가장 많은 펜실베이니아가 대표적이다. 71명 대의원 중 17명만 득표수에 따라 배분된다. 54명은 전당대회에서 마음대로 투표하는 비서약 대의원이다. 현재 지지율 1위인 트럼프가 승리한다 해도 대의원 추가에 큰 도움이 못 된다는 뜻이다.
4월말의 북동부에선 트럼프의 승리가 예상되지만 5월로 넘어가 오리건과 네브래스카는 크루즈의 영토다. 대 격전지는 5월3일의 인디애나, 57명 대의원을 거의 승자독식으로 배분한다. 복음주의 보수파 많아 크루즈가 노리는 곳이지만 저학력·저소득층 또한 많아 트럼프의 표밭이 될 수도 있는데 주법이 독특해 당 등록제도가 없고 제대로 여론조사 한번 실시하지 않아 결과는 예측불허다.
만약 인디애나에서 트럼프가 이긴다면 공화당 경선드라마는 캘리포니아로 이어질 것이다. 그러나 진다면 트럼프의 매직넘버 달성은 물 건너 갈 것이라고 전문가들은 분석한다. 크루즈와 케이식, 공화당 지도부가 중재 전당대회에서의 트럼프 퇴출을 잔뜩 벼르고 있긴 하지만 그것 또한 쉬운 일이 아니다. 일단 여론이 트럼프 편이다, 뉴욕 출구조사에서 대의원 확보 1위가 당 후보로 지명되어야 한다는 응답이 70%나 되었다.
변신을 꾀한 트럼프가 치밀한 전략으로 한명 한명 대의원 확보에 전력투구할수록 공화당에겐 선택의 여지가 줄어든다. 매직넘버에 거의 도달한 최다 득표자를 끌어내리고 다른 후보를 지명할 명분이 떳떳하지 않게 된다. 유권자들의 반발도 거셀 것이다.
공화당이 ‘트럼프의 당’이 될 수 있다는 의미다. 그럴 경우 상상만으로도 두렵고 싫은 ‘트럼프의 아메리카’를 막는 임무는 본선 유권자의 몫으로 남겨지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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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 록 주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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