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 중부에 있는 코츠월즈(Cotswolds)는 런던에서 차로 2시간 정도 떨어진 지역이다. 외부인들에게는 다소 생소하지만 영국인들에게는 그렇지 않다. 영국 북서부에 있는 ‘호반 지역’에 이어 두 번째로 큰 ‘자연미 탁월 지역’(Area of Outstanding Natural Beauty)인 이곳은 영국에서 가장 아름다운 곳으로 손꼽히는 곳이다.
이곳의 중심인 바이베리(Bibury)에 가면 동화책에서 보던 유럽 마을의 모습을 직접 볼 수 있다. 길 따라 수정처럼 맑은 시내가 흐르고 오리들은 유유히 헤엄치며 푸르디푸른 버드나무는 바람에 산들거린다. 담쟁이넝쿨과 이끼로 덮인 오두막이 줄줄이 늘어서 있고 어디에도 휴지 한 점 찾아 볼 수 없다. 지상에 낙원이 있다면 아마도 이런 모습일 것이다. 이 마을의 알링턴 거리(Arlington Row)는 영국에서 가장 많이 사진 찍힌 곳이라는데 그럴만해 보인다.
여기서 남쪽으로 한 시간 쯤 떨어진 곳에서는 도시 전체가 영국 유일의 유네스코 지정 세계 문화유산이자 제인 오스틴이 살았던 바스(Bath)가 있고 북서쪽으로 2시간 거리에는 윌리엄 워즈워드가 호수 가에 핀 ‘1만 송이의 황금 빛 수선화’를 노래한 ‘호반 지역’이 있다. 이곳을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곳”이라고 불렀던 워즈워드는 워즈워드 호텔 옆 작은 교회 묘지에 부인과 누이, 그리고 세 자녀와 함께 누워 있다. 아름다운 풍광과 글과의 상관관계를 이보다 잘 보여줄 수는 없다.
그러나 이들보다 코츠월즈를 찾는 사람들이 꼭 가봐야 할 곳이 있다. 여기서 30분 떨어진 스트랫포드 어폰 에이븐(Stratford-upon-Avon)이란 시골 마을이다. 겉보기에는 평범한 동네지만 영문학도에게 이곳은 성지나 다름없다. 영문학의 최고봉 윌리엄 셰익스피어가 태어나고 자라고 죽은 곳이기 때문이다.
셰익스피어는 1564년 존 셰익스피어와 메리 아든의 4남2녀 중 장남으로 태어났다. 어머니는 부유한 지주의 딸이고 아버지는 성공한 상인으로 한 때 이 마을 시장까지 지냈다. 그러나 아버지의 사업 실패로 가세가 기울기 시작하면서 셰익스피어는 대학 진학을 포기해야 했고 설상가상으로 18살 때 자기보다 8살 나이가 많은 앤 해서웨이와 관계를 맺어 임신하는 바람에 서둘러 결혼까지 했다. 곧 이어 쌍둥이까지 태어나 셰익스피어는 가족의 생계를 책임져야 하는 가장이 된다. 그가 왜 20대 중반 고향을 떠나 런던으로 갔는지에 대해서는 여러 설이 있으나 어려서부터 연극과 글쓰기에 재능을 보인 그가 큰물에서 자기 꿈을 펼쳐 보려 했다는데 이견이 없을 것이다.
그 후 20여년 동안 그는 극작가와 배우, 극단주로 활동하며 연극계 종사자로서는 보기 드문 성공을 거둔다. 그의 명성은 살아생전에도 런던 전역에 울려 퍼졌으며 1603년 제임스 1세가 즉위하며 그의 극단은 ‘왕의 사람들’(King’s Men)로 불리게 된다. 런던 연극계를 대표하는 극장 ‘글로브’(the Globe)의 공동 소유주이기도 했던 그는 은퇴에 충분한 돈을 모은 후 40대 후반 낙향한다.
이처럼 젊어서 품은 꿈을 이룬 그였지만 말년에 쓰인 4대 비극과 말기 대표작 ‘폭풍’(Tempest) 곳곳에는 세상과 인생의 허무함에 대한 쓸쓸함이 묻어난다. “What a piece of work is man.. and, yet to me, what is this quintessence of dust?”(햄릿) “Life is but a walking shadow, a poor player who struts and frets his hour upon the stage, and then is heard no more. It is a tale told by an idiot, full of sound and fury, signifying nothing.”(멕베스) “The solemn temples, the great globe itself, Yea, all which it inherit, shall dissolve.”(폭풍)
1613년에는 그가 아끼던 극장 ‘글로브’가 화재로 전소되고 1616년에는 그가 52세를 일기로 사망한다. 오는 23일은 그가 죽은 지 400년이 되는 날이다. 그의 말대로 ‘온 세상은 무대’고 우리는 정해진 시간 동안 그 위에서 허우적대다 더 이상 들리지 않는 초라한 배우인지 모른다. 그의 명복을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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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경훈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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