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에서 40년 가까이 살면서 과속운전으로 교통법 위반 티켓을 여러 번 뗐지만 온전하게 준수한 법이 하나 있다. 세금법이다. 세금보고 기한 마지막 날인 ‘전국 납세의 날’(National Tax Day, 4월15일) 훨씬 전에 쥐꼬리만 한 소득을 매년 꼬박꼬박 국세청(IRS)에 신고했고, 그 수입이 토끼 꼬리로 반 토막 난 은퇴 후 6년 간도 여전히 일찌감치 신고해오고 있다.
미국의 전체 세금보고자 중 34%가 납세의 날이 임박한 4월1일 이후 신고한다. 올해는 이들 늑장꾼이 사흘을 덕 봤다. 토요일인 16일은 노예해방 기념일로 워싱턴 DC 관공서들의 공휴일이다. IRS는 하루 앞당겨 15일(금) 문을 닫았다. 그리고 납세의 날을 18일(월)로 미뤘다. 세금 보고자의 90%가 컴퓨터로 신고하기 때문에 사흘 말미는 이들에게 느긋한 보너스다.
내 소득을 쥐꼬리라고 한 건 과장이 아니다. 같은 언론계 종사자로 CNN 앵커인 앤더슨 쿠퍼는 1,100만 달러, TV 쇼 사회자인 로빈 로버츠는 1,400만 달러를 벌었다. 할리웃 스타들인 로버트 다우니 Jr.는 8,000만 달러, 케빈 하트는 2,850만 달러, 에이미 폴러는 1,050만 달러를 벌었고, 가수 테일러 스위프트도 8,000만 달러를 번 것으로 퍼레이드 잡지가 보도했다.
공화당의 대통령 경선 후보인 억만장자 도널드 트럼프는 3억8,000만 달러, 그의 민주당 라이벌인 힐러리 클린턴 전 국무장관은 25만 달러를 신고했다. 버락 오바마 대통령의 연봉은 40만 달러지만 이는 그의 지난해 전체 수입의 절반에도 못 미친다. 저서 인세와 각종 투자이익이 많기 때문이다. 사법부 좌장인 존 로버츠 대법원장은 25만8,100달러를 신고했다.
스타 쿼터백 형제인 페이턴 매닝(전 브롱코스)은 1억8,500만 달러, 동생 엘리(NY 자이언츠)는 1억1,500만 달러를 벌었고, 테니스 선수 세리나 윌리엄스는 1억4,500만 달러, 언니 비너스는 7,500만 달러를 벌었다. 리얼티 TV의 킴 카르다시안 3자매 스타는 1억2,300만 달러를 벌었다. 이들은 납세의 날 닷새 전인 ‘형제자매의 날’(4월10일)에 의기양양 했을 터다.
하지만 이들 고소득자에 주눅들 상황은 아니다. 미국 근로자의 평균 연소득은 4만3,000 달러, 할리웃 영화배우들의 평균 연소득은 5만2,000 달러다. 달랑 1,000 달러를 번 단역배우도 수두룩하다. 여자 프로하키 선수인 힐러리 나이트는 작년 시즌 고작 2만2,000 달러를 벌었다. 1만 달러 소득을 신고한 낙농업자도, 2만5,000 달러를 신고한 직업 마술사도 있다.
납세의 날 직전에 여성 근로자들이 울분을 터뜨리는 날이 있다. ‘평등 임금의 날’(Equal Pay Day)이다. 매년 4월 둘째 화요일(올해는 지난 12일)이다. 미국의 여성 근로자들은 남성 근로자가 1달러를 벌 때 77센트를 번다. 남자가 2015년 1년간 번 돈을 여자가 똑같이 벌려면 1년을 넘어 거의 2016년 평등임금의 날까지 대략 3개월이 더 걸린다는 계산이다.
미국의 노동인구 중 거의 절반이 여성이다. 정년(65세)을 넘긴 여성근로자들도 1992년 12명중 1명꼴에서 2024년엔 5명중 1명꼴로 늘어날 전망이다. 하지만 여성임금은 여전히 남성의 20~25%를 밑돈다. 당연히 남녀 평등임금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거세지고 있다. 얼마 전엔 미국 국가대표 여자축구팀 선수들이 남자팀 선수만큼 돈을 달라며 시위를 벌였다.
남녀임금 격차는 직종과 인종 등 요인에 따라 들쑥날쑥 한다. 아시아계 여성들은 백인남성 임금의 평균 90%를 받는 반면 흑인 여성은 63%, 히스패닉 여성은 54%를 받는다고 여성정책 연구소가 밝혔다. 하지만 교육수준은 별 영향이 없다. 석사 이상 고급학위를 소지한 여성은 남성 임금의 74%를 받는 반면 고졸이하 여성은 80%를 받는 것으로 조사됐다.
자기 임금에 만족하는 근로자는 (거의) 없다. 그래서 임금인상 투쟁이 그치지 않는다. 시애틀의 시간당 15달러 최저임금이 다른 도시로 확산되고 있다. 임금격차가 자본주의의 해악이라지만 그게 없다는 공산주의는 무너졌다. 북한도 곧 그럴 터다. 일하기 전에 “돈부터 보여달라(Show me the money)”고 말할 수 있는 미국이야말로 근로자의 천국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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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여춘 시애틀 지사 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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