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미국인들의 최고인기 경기는 시즌이 갓 개막된 메이저리그 야구도, 막 끝난 ‘3월의 광란’(대학농구 토너먼트)도 아니다. 4년마다 벌어지는 당나귀와 코끼리의 싸움이다. 당나귀는 민주당, 코끼리는 공화당을 상징한다. 1870년대부터 이어져오는 전통이다. 당나귀패와 코끼리패의 왕초끼리 맞붙는 결승전에선 수퍼보울을 능가하는 지상최대의 쇼가 펼쳐진다.
한국은 원체 이념에 민감한 탓인지 정당도 동물 아닌 색깔로 상징한다. 집권당인 새누리당은 빨강(보수), 야당인 더불어 민주당은 파랑(자유), 안철수가 만든 국민의 당은 녹색(평화), 무소속은 흰색(순결)이다. 총선 후보들과 당원들이 군대처럼 일사분란하게 같은 색의 재킷으로 무장한다. 하지만 다른 건 몰라도 상징물에 관한한 한국은 미국에 족탈불급이다.
미국은 국가 상징물만도 수두룩하다. 우선 독립당시의 13주(빨간색 가로 줄)와 현재의 50주(푸른색 바탕에 흰 별)가 수놓인 국기(성조기)가 있고, 모든 경기장에서 꼭 불리어지는 애국가(‘별이 번쩍이는 깃발’)가 있다. 역시 미국독립의 상징물로 “전국 거민에게 자유를 공포하라”는 성경구절(레 25:10)을 새긴 ‘자유의 종’이 있다. 한 쪽 면이 길게 깨어져 있다.
로마신화의 자유의 여신인 리베르타스를 형상화한 자유의 여신상도 있다. 프랑스 국민의 미국독립 축하선물이다. 미국정부를 풍자하는 ‘엉클 샘’ 노인도 있다. 정치만평의 단골로 성조기 복장에 수염을 길게 길렀다. 또 있다. 미국의 국가문장에 새겨진 흰머리 독수리는 올리브 가지 13개와 화살 13개를 양쪽 발에 움켜쥐고 평화와 국가수호의 힘을 상징한다.
국가 상징물 외에 50개 주도 상징물을 갖고 있다. 캘리포니아는 금, 네바다는 은, 몬태나는 보물이다. 조지아는 복숭아, 캔자스는 해바라기, 유타는 벌집, 메인은 소나무, 워싱턴은 상록수이고, 오리건은 비버, 위스콘신은 오소리, 와이오밍은 카우보이다. 플로리다는 햇볕, 애리조나는 그랜드캐년 , 일리노이는 대평원, 미시간은 5대호를 각각 상징물로 내세운다.
각 주마다 상징 꽃도 공식적으로 정해져 있다. 캘리포니아는 양귀비꽃(캘리포니아 포피), 앨라배마는 물방초, 델라웨어는 복숭아꽃, 플로리다는 오렌지꽃, 인디애나는 모란, 루이지애나는 아이리스, 오하이오는 트릴리엄, 애리조나는 선인장(사구아로)꽃이다. 아칸소와 미시간은 사과꽃, 일리노이와 뉴저지는 바이올렛, 워싱턴과 웨스트버지니아는 로도덴드론이다.
그것도 모자라는 지 각 주를 상징하는 공식음식도 있다. 아이다호는 감자, 조지아는 땅콩(복숭아도), 일리노이는 옥수수, 플로리다는 오렌지, 메인은 블루베리, 매사추세츠는 크랜베리, 앨라배마는 블랙베리(또는 피칸), 뉴햄프셔는 호박, 뉴멕시코는 고추, 델라웨어는 딸기, 뉴욕과 워싱턴은 사과, 아칸소는 쌀, 루이지애나는 왕새우, 미주리는 아이스크림 콘이다.
별칭이 ‘자원봉사자 주’인 테네시주는 유난히 상징물이 많다. 너구리, 먹킹버드(입내새), 꿀벌, 상자 거북, 잉어(낚시용)와 메기(상업용) 등이 공식 동물이다. 과일은 토마토, 음료는 우유, 나무는 포플라, 춤은 스퀘어댄스, 노래는 ‘테네시 월츠’를 비롯한 9곡이 있다. 지난 2월엔 비행기도 격추시킬 만큼 강력한 ‘바렛 M82’ 장총을 주의 공식 라이플로 지정했다.
그 테네시주가 지난 4일 상징 책을 지정한 전국최초의 주가 됐다. 그 책이 성경이어서 더욱 화제가 됐고, 그래서 논란도 컸다. 주의회의 민주당 의원들이 연방헌법의 정교분리 원칙을 내세워 강력 반대했지만 다수당인 공화당 의원들이 밀어붙였다. 많은 기독교인들이 신선한 충격이라며 반기고 있지만 얼마 못가서 뒤집힐 결정이라며 냉소하는 사람들도 많다.
미국의 의원들이 할 일 없는 사람들처럼 보이지만 그렇게라도 연봉 값을 하려는 자세가 가상하다. 본분인 법안 상정 등 의정활동에도 열심이다. 당리당략을 좇아 산더미 같은 민생법안들을 제쳐두고 빈둥빈둥 놀며 세비는 꼬박꼬박 챙기고, 선거 때가 되면 운동원들에게 당의 상징 색 재킷을 입혀 세를 과시하는 한국 국회의원들에게 롤모델이 되고도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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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여춘 시애틀지사 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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