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자의 어림짐작으로 한국전체의 개인용 세단이 몇백대 정도였던 1964년 스탠포드 대학의 학생 파킹장에 즐비하게 들어선 이름 모를 고급승용차들의 모습은 이채롭기만 했다. 갑자기 그 생각이 나는 것은 ‘파나마 페이퍼스’(Panama Papers)라고 불리는 조세피난처 자료에 나타난 중국고위층 친척들 가운데는 스탠포드를 다닌 공산당 정치국 전 상임위원의 외손녀 딸 ‘자스민 리 지단’의 이름이 들어 있기 때문이다.
신문보도에 의하면 자스민이 스탠포드대 1학년이었던 2010년에 하베스트 선 무역회사를 1달러에 구입했다는 것이다. 그는 얼마 후 그 무역회사와 또 하나의 영국 버진아일랜드 페이퍼 컴퍼니(서류상으로만 존재하는 회사)를 사용하여 베이징에 비슷한 이름의 두 회사를 세운다. 해외 또는 역외소재 지주회사의 성격상 중국에서 회사등록을 할 때 실소유주인 그의 외할아버지나 부모 이름이 밝혀지지 않았음은 두말하면 잔소리가 될 것이다.
그 아가씨의 이야기는 빙산의 일각일 뿐이다. 왜냐하면 전 세계 전·현직 정상급 지도자들 12명을 포함한 200여 나라의 1만4,000명이 되는 사람들이 재산은닉이나 세금회피의 목적으로 해외 조세회피처에 페이퍼 컴퍼니 등을 세웠다는 뉴스가 지난 주 초부터 여러 나라들을 혼란 속으로 몰아넣고 있기 때문이다.
그 배경은 이렇다. 국제 탐사보도 언론인협회(ICIJ)는 독일의 유명 일간지인 ‘쥐트 도이체차이퉁’과 협조하여 어느 의미에선 세기적이랄 수도 있는 특종을 입수했고 공개하게 된다. 입수한 것은 파나마의 최대 로펌인 모색 ‘폰세카’ 법률회사가 1977년부터 2015년까지 취급했던 엄청난 숫자의 개인고객들과 회사들의 각종 금융주식 거래와 재산변동 등의 내용을 담은 자료다.
ICIJ는 1,150만 장에 달하는 서류들을 협력사들에게 나누어 주고 검토 중이다. 그러니 떳떳하지 못한 사람들은 전전긍긍하며 밤잠을 설치고 있을 법하다. 자기 부인과 역외회사를 소유하고 있다는 사실을 재산소명서에 언급 안했다가 이번에 그 사실이 폭로된 아이슬란드 수상은 이미 사직했다.
그러나 시진핑을 포함한 전·현직 최고 중국지도자들 8명의 친척들이 폰세카 로펌의 고객들이라는 뉴스는 중국의 모든 매스미디어에 한마디도 언급되지 않고 있다. 심지어 인터넷조차 검열된다는 보도이다. 시진핑은 대대적으로 반부패운동을 벌여왔다. 그런 마당에 자신의 매형이 해외 회사들을 주무르는 실소유자임이 드러난 것이다. 이번 사건의 파장으로 시진핑은 자신의 권위에 대한 내부적 도전이 있지 않을까 고심하고 있을 게 분명하다.
러시아 푸틴의 경우는 소련시절 KGB 출신답게 복잡다단한 방식으로 재산을 축적해 왔다. 그리고 사실이 드러난 후 대응하는 방식도 정면돌파형이다.
푸틴은 측근 말고도 40년 지기이자 자기 큰딸의 대부(代父)역도 맡았던 세계적인 첼리스트 세르게이 롤두긴을 재산은닉에 이용한 것으로 보인다. 일례를 들면 2010년 2월 로시야 은행이 버진 아일랜드에 세운 샌들우드 콘티넨탈은 2억 달러를 호르위츠 트레이딩에 빌려준다. 샌들우드는 바로 다음날 원금과 이자를 받을 권리를 단돈 1달러에 버진아일랜드 소재 ‘오프 파이낸셜’ 회사에 넘겼고 이 회사는 다시 그 재산을 1달러에 첼리스트 롤두긴이 지배하는 ‘인터내셔널 미디어 오버시즈’에 판다. 2억 달러라는 큰돈이 추적 불가능한 자금으로 세탁된 것이다.
푸틴은 물론 그의 측근들도 권력의 비호아래 주식위장거래, 돈세탁, 특혜대출, 자산 헐값 매각 등의 방법으로 엄청난 치부를 했다는 것이 BBC의 보도다. 영국의 유명일간지인 가디언은 첼리스트 롤두긴의 재산이 1억달러이지만 그는 “나는 사업가가 아니다”라고 말해 진짜 주인은 따로 있음을 보여주었다고 보도했다. 푸틴은 기자회견에서 ICIJ의 파나마 페이퍼스 폭로 중 자신에 관한 기사들은 모두 거짓말로, 러시아의 선거에 영향을 주기위해 미 국무성과 첩보기관들의 전직요원들이 배후에서 조종한 탓이라고 주장했다. 푸틴의 부패를 보면서 “권력은 부패하고 절대 권력은 절대로 부패한다”는 액튼경의 명언이 떠오른다.
ICIJ의 한국 협력단체인 뉴스타파에 의하면 모색 폰세카 로펌을 통해서 조세 피난처를 사용한 한국 사람들은 노태우 전 대통령의 장남 노재헌씨를 포함해 195명이나 된단다. 노씨는 “개인적인 사업목적으로 1달러짜리 회사를 몇 개 설립했지만 이혼 등 여러 가지 사정 때문이었다. 회사를 이용해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라고 설명했다는 것이다. 정말일까? 아니면 무슨 흑막이 있을까? 궁금하기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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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선우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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