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처음 본 오페라는 주세페 베르디의 ‘라 트라비아타’였다. 한국서 오페라 공연이 거의 열리지 않던 시절, ‘춘희’라는 제목으로 TV에서 상영된 오페라 영화를 보았다. 두 번째 본 오페라는 베르디의 ‘아이다’였다. 트럼펫을 불던 오빠가 ‘개선행진곡’ 연주를 하게 돼 보러갔던 기억이 있다. 세 번째도 베르디의 오페라로, 1978년 세종문화회관 개관기념 공연의 하나인 ‘리골레토’였다.
베르디가 오페라와 동의어였던 그 시절을 지나 넓은 세상으로 나오니 오페라와 작곡가 숫자는 과장 좀 보태서 하늘의 별만큼이나 많았다. 얼마나 많은고 하니, 오페라 데이터베이스에 따르면 2009년부터 2014년까지 5년 동안 전세계 900여개 오페라하우스에서 공연된 오페라는 무려 2,565개, 이를 쓴 작곡가의 숫자는 1,249명이다. 이 가운데 절반 정도는 현대 작곡가들, 우리가 잘 모르는 오페라들이다. 놀랍지 않은가? 수많은 사람들이 고리타분하게 여기는 오페라를 아직도 이처럼 많은 작곡가들이 끊임없이 창조해내고 있다는 사실이.
오페라는 16세기 이탈리아의 플로렌스에서 처음 시작됐다. 1598년 자코포 페리가 쓴 ‘다프네’가 최초의 오페라로 기록돼있으나 악보는 전해지지 않고, 2년후 그가 쓴 ‘에우리디체’가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오페라다. 그 이후 오페라는 유럽 전역으로 퍼져나가 400여년 동안 여러 장르와 형태로 계속 진화하면서 수많은 주옥같은 작품들이 나오게 된다.
바로크 시대로부터 현대에 이르기까지 륄리와 퍼셀, 핸델과 모차르트, 로시니와 베르디와 푸치니, 바그너와 슈트라우스, 그리고 현대에 와서는 필립 글래스와 존 애덤스에 이르는 위대한 작곡가들이 각 시대를 반영하는 불멸의 오페라를 남겨 놓았다.
이 가운데 세계에서 가장 많이 공연되는 올타임 베스트 텐은 1.라 트라비아타(베르디) 2.카르멘(비제) 3.라 보엠(푸치니) 4.토스카(푸치니) 5.요술피리(모차르트) 6.나비부인(푸치니) 7.세비야의 이발사(로시니) 8.리골레토(베르디) 9.피가로의 결혼(모차르트) 10.돈 지오반니(모차르트) 순이다. 1~3위는 거의 변하지 않고, 나머지는 순위가 조금씩 오르내린다.
이상한 것은 ‘오페라의 왕’으로 불리며 30여개의 오페라를 남긴 베르디의 작품은 탑텐에 2개가 올라있으나 ‘베르디의 후계자’로 불리며 단지 10여개를 남긴 푸치니의 것은 3개나 올라있다는 것이다. 왜일까? 이유는 단순하다. 푸치니의 오페라가 더 대중적이기 때문이다. 오페라도 흥행이 중요한 공연예술이기 때문에 사람들이 좋아하는 작품을 자주 무대에 올리게 마련이다.
베르디는 인간의 비극과 운명을 초월적이며 숭고하게 다룬 반면 푸치니는 서민적이고 인간적이며 극적인 스토리와 음악으로 인기를 끌었다. 푸치니 음악의 아름답고 유려한 선율과 세련된 화성은 듣는 사람을 언제나 기분좋게 매혹시킨다. 또한 언제나 비운의 여인이 등장하여 유명한 아리아를 불러대기 때문에 스타 소프라노의 존재감을 느낄 수 있어서 티켓 파워가 보장돼있는 것이다.
LA 오페라만 해도 2012년부터 내년(2016-17시즌)까지 5년간의 프로그램을 훑어보면 베르디의 작품은 매년 각각 다른 5개(‘시몬 보카네그라’ ‘포스카리가의 두사람’ ‘팔스타프’ ‘라 트라비아타’ ‘맥베스’)가 하나씩 공연되고 있지만, 푸치니의 것은 가장 인기있는 3개 오페라(‘나비부인’ ‘라 보엠’ ‘토스카’)만 모두 두번씩 공연해온 것을 알 수 있다.
이번 시즌(2015-16)만 해도 작년 9월 ‘잔니 스키키’(푸치니 작)를 오프닝 공연으로 시작해 지난 달 ‘나비부인’을 했고, 다음 달에는 ‘라 보엠’으로 폐막하게 되니, 메인 프로덕션이 7개밖에 안 되는 한 시즌에 푸치니 오페라를 3개나 무대에 올리는 것이다. 이러한 푸치니 편애현상은 LA뿐 아니라 미국 내 다른 오페라단들도 마찬가지여서 이 3개 오페라는 같은 프로덕션이 여기 저기 돌면서 계속 공연되는 것을 볼 수 있다.
나도 푸치니 오페라 좋아하지만 다양성이 조금 아쉽다. 2,565개의 오페라가 공연되고 있다는 요즘 세상에 해마다 초초상과 미미와 토스카가 울고 짜는 공연만 보고 있자니 새로운 것에 대한 갈증이 있다. 지난해 진은숙의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와 3년전 있었던 필립 글래스의 ‘해변의 아인슈타인’ 때의 흥분이 몹시도 그립다.
한편 ‘라 보엠은’ 5월14일부터 6월12일까지 8회 도로시 챈들러 파빌리온에서 공연된다. 마지막 2회 공연은 구스타보 두다멜 LA 필하모닉 음악감독이 지휘봉을 잡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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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숙희 부국장·특집 1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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